주간동아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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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냐, 트럼프냐” 美 대선 ‘블루 월’이 정한다

백인 노동자 많은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2016·2020년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8-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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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선에서 맞붙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뉴시스]

    미국 대선에서 맞붙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뉴시스]

    ‘블루 월’(Blue Wall·파란 장벽)은 노동조합에 소속된 블루칼라 노동자가 많아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온 지역으로 미국 북동부 오대호 주변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3개 주를 일컫는다. 세 지역은 1992년 대선부터 2012년 대선까지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고, 이 때문에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을 차용해 블루 월로 불려왔다.

    미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철강·자동차 등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이들 3개 주는 공장 설비에 녹이 슬었다는 의미인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로 변했다. 북동부와 중서부 지역들이 속한 러스트 벨트는 지난 100여 년간 미국 제조업을 주도해 ‘팩토리 벨트’(factory belt·공장지대)로 불렸던 곳이다.

    러스트 벨트 된 블루 월

    미국 대선의 핵심 변수로 꼽히는 러스트 벨트 지역은 북동부 5대호 주변 쇠락한 공장지대를 일컫는다. [GettyImages]

    미국 대선의 핵심 변수로 꼽히는 러스트 벨트 지역은 북동부 5대호 주변 쇠락한 공장지대를 일컫는다. [GettyImages]

    이곳은 당초 자동차·철강·기계·석탄·방직 같은 제조업이 호황을 이끌었지만 공장이 중국 등 임금이 싼 해외로 이전하면서 점차 쇠퇴했다. 이 지역 유권자 중 80%가 백인이며 이들은 대부분 노동자층이다.

    블루 월은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2016년 대선 당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깨고 블루 월에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승리했다. 트럼프는 민주당이 주도한 세계화 때문에 미국이 경쟁력을 잃어 블루 월이 러스트 벨트가 됐다며 클린턴을 공격했고,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2020년 대선 당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역시 블루 월을 탈환하며 승리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퇴출 위기에 몰린 포드와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당시 부통령이던 자신이 역할을 했다며 지역 유권자들을 설득했다.

    블루 월 유권자의 표심이 이번에도 미국 대선의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사퇴한 후 구원투수로 등장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민주당의 아성인 블루 월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2016년처럼 블루 월을 재탈환해 백악관에 입성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두 후보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들의 면면을 봐도 블루 월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월즈 vs 밴스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왼쪽).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서는 J.D. 밴스 상원의원. [뉴시스]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왼쪽).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서는 J.D. 밴스 상원의원. [뉴시스]

    해리스가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친서민·친노동자 성향의 평범한 정치인이다. 1964년생으로 올해 60세인 그는 6·25전쟁에 참전한 부친을 따라 17세 때 주방위군에 입대한 후 24년간 복무했고 2005년 상사로 전역했다. 주방위군은 평소에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매달 주말(2일)에 한 번, 1년에 2주간 소집돼 훈련을 받기 때문에 ‘주말 병사’로도 불린다. 치안 유지와 재해 구난 활동이 주요 업무이며, 때로는 파병 임무도 맡는다. 그는 주방위군 시절 네브래스카주 소재 채드론주립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미네소타주 맨카토의 한 고등학교에서 20년간 지리 교사 겸 미식축구 코치로 일했다.

    월즈는 2006년 미네소타주의 공화당 성향 지역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한 뒤 6선에 성공했다. 특히 2018년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한 이후로는 학교 무상급식과 기후변화 대응, 중산층 대상 감세정책, 노동자의 유급휴가 확대 등 진보 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그는 헐렁한 티셔츠와 야구 모자를 자주 착용하고 주민들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등 서민적인 풍모를 보여왔다.

    인도계이자 흑인인 해리스는 ‘백인 표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인 남성이면서 트럼프, J.D. 밴스 상원의원과 차별화된 가치관을 가진 월즈를 부통령 후보로 앞세운 것도 백인 부동층의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 언론은 해리스가 미시간 디트로이트,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 위스콘신 밀워키 등 블루 월 도시에 거주하는 백인 남성 유권자와 트럼프가 외면한 교외 및 농촌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것을 기대하며 월즈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 부통령이 월즈 주지사를 선택한 것은 그가 위스콘신과 미시간 등 블루 월에 어느 정도 중요성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밴스는 40세로 러스트 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태어났다. 그는 편모슬하에서 힘든 성장기를 보냈고, 고교 졸업 후 이라크 파병 등 군 복무를 했다. 밴스는 오하이오주립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벤처 자본투자자, 베스트셀러 작가 등을 거쳐 연방 상원의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러스트 벨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의 상실감을 파고든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가 론 하워드 감독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돼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게다가 밴스 의원은 정보기술(IT)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도 탄탄한 인맥을 갖고 있다.

    트럼프가 흙수저 출신인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택한 이유는 백인 노동자층의 표심에 호소해 블루 월을 공략하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WP는 “밴스의 자수성가 스토리가 노동자층의 지지를 끌어올 수 있다”며 “밴스가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세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블루 월 공방전의 핵심은 펜실베이니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펜실베이니아는 경합주 가운데 가장 많은 선거인단(19명)이 배정돼 있다. 이곳에서 승리하는 후보가 백악관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펜실베이니아 표심은 투표 성향이 유사한 위스콘신(10명), 미시간(15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

    미국 선거분석 사이트 270투윈(270 to Win)에 따르면 해리스와 트럼프가 11월 5일(이하 현지 시간) 대선까지 50개 주와 워싱턴DC에서 각각 226명, 251명 선거인단을 우선적으로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대선은 주별 최다 득표자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 독식 구조다. 대통령에 당선하려면 미국 전역에서 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은 통상 주별로 지지 성향이 명확하게 갈리는 편이다. 대선 승패는 경합주에서 사실상 결정되는데, 이번 대선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270투윈이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 해리스는 캘리포니아(54명)를 비롯해 뉴욕(28명)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한 주를 기반으로 총 14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보이고, 트럼프는 12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 민주당이나 공화당 쪽으로 기운 주들의 선거인단을 합치면 해리스가 226명, 트럼프가 251명을 사실상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승리를 확정 짓는 ‘매직 넘버’ 270명까지 남은 선거인단 수는 해리스가 44명, 트럼프가 19명이다. 승패를 가를 중요한 변수가 블루 월 3개 주 유권자의 표심이 된 셈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가 8월 5~9일 블루 월 3개 주의 등록 유권자 19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리스(50%)와 트럼프(46%)는 오차범위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선거인단이 19명인 펜실베이니아가 가장 중요하다. 해리스는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해 미시간, 위스콘신 등 블루 월 3개 주를 모두 석권하면 당선할 수 있다. 반면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 한 곳만 확보해도 승리한다. 결국 두 후보 모두에게 펜실베이니아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필승 지역’인 셈이다. 해리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월즈와 함께 펜실베이니아에서 출정식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곳도 펜실베이니아다. 게다가 이 지역은 트럼프에게 ‘신의 선택’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준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첫 TV 토론도 9월 10일 이곳에서 열린다.

    펜실베이니아 유권자들의 표심은 어느 후보의 손을 들어줄까. 이 지역은 미국 건국의 역사를 담고 있다. 특히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선언서가 서명된 곳으로, 건국 초기 수도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는 사실상 차기 미국 대통령을 결정할 핵심 지역이 됐다. 지역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와 에너지 문제다. 이곳은 미국 에너지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존 D.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도 이 지역에서 시작됐고, 지금도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이 주 국내총생산(GDP)의 6~8%일 정도로 비중이 크다. 동시에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등에선 친환경 및 첨단기술 산업과 의료, 교육 분야가 급성장하고 있기도 하다.

    석유 등 전통 산업 노동자는 트럼프를, 첨단산업 노동자는 해리스를 지지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는 전통 산업과 첨단산업 간 균형,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의 조화 등 미국 사회의 핵심 과제들이 응축된 곳이다. 펜실베이니아 유권자들이 차기 백악관 주인으로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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