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뭄바이의 불가촉천민 집단거주 지역. 빈곤층 5000여 명이 세탁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인도는 1947년 독립 이후 오랜 기간 지지부진한 경제성장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91년 시장 개방으로 경제성장에 시동을 건 이후 탄탄한 내수기반과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통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연 8% 이상의 고속성장을 이루며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반면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개인 간 빈부격차 확대, 시장지배자인 독과점 공기업의 비효율성 만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심화 등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리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논의가 최근 쏟아져 나온다.
각 주별로 경제발전 격차 심화
인도 경제는 21세기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전체 인구 12억 명의 약 30%는 빈곤을 면치 못한다. 특히 각 주(州)별로 경제발전 격차가 커짐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이 증가하는 점이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지적된다. 세계은행(World Bank) 자료에 따르면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인구 비율이 2010년 4억 명가량(32.7%)에 달하며, 2달러 이하는 8억4100만 명(68.7%)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거대한 빈곤층의 존재는 이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 남발로 이어지면서 성장 여력을 분산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하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별 경제성장률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증가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가장 자주 거론되는 사례다. 북동부의 서벵골 주는 정권 재창출에만 집중하는 주정부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무능력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오리사 주는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반면 경제적 성과를 거둔 지역의 지도자들은 승승장구한다.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던 비하르 주를 2005년부터 강력한 부패 청산 캠페인을 거쳐 높은 경제성장으로 이끈 니티시 쿠마르 수상의 인기는 가히 절대적이다. 구자라트 주의 모디 수상 역시 극우 성향에도 지역의 높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2014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에서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는 인도에서도 큰 골칫거리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노동법을 운영하는 인도에서는 기업이 인원을 감축하려면 주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규직 직원들의 유연한 고용 시스템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기업들은 사전 통보 없이 해고가 가능하며 동일 작업에도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정책을 널리 운용해왔다. 인도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인 마루티 스즈키의 경우 늘어난 비정규직 직원들의 불만 증가가 한 원인이 돼 2011년과 2012년 대규모 파업사태가 벌어졌고, 이는 극심한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공기업 독과점으로 인한 비효율성 문제는 고질적이다. 2012년 7월 30~31일 이틀간 델리를 포함한 북부 9개 주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겉으로 드러난 직접적인 원인은 몇몇 주가 국가 송전망에서 허용한 전력 이상을 끌어다 썼기 때문이지만, 배후에는 발전 관련 공기업의 비효율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현재 인도는 전체 발전 용량의 67%를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그중 57%가 석탄발전인데, 발전에 필요한 석탄은 국영석탄공사가 95% 이상을 독점한다. 그러나 국영석탄공사의 채광 기술 부족과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적기에 공급되는 석탄 양이 부족해졌고, 여기에 운송을 책임지는 인도 철도공사의 무능력, 전력생산과 배전을 독점한 주 전력위원회의 송배전망 관리 실패 등이 겹치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쉽게 말해 관련 공기업의 비효율성이 결합돼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졌다는 게 현지의 대체적인 비판이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의구심도 단골 소재다. 인도 경제는 성장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력의 상당 부분을 가족기업을 통해 자체 조달해 왔다. 이들 가족기업은 구성원 간 신뢰와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자양분 삼아 경쟁력을 키우며 성장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소수의 경영자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경영함으로써 지배구조가 극히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 사례가 2009년 1월 발생한 사티암 회계부정 스캔들이다. 1987년 라주 일가가 창립한 사티암은 전 세계에 걸쳐 65개국 이상의 기업고객을 확보한 정보기술(IT) 업계 4위 대기업이었지만, 사주의 주식 비중은 8.3%에 불과했다. 라주 일가는 10억 달러 이상의 분식회계와 허위공시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등 갖은 불법 행위를 저질렀으며, 이것이 적발돼 회사는 증시에서 퇴출되고 다른 기업에 흡수됐다. 가족기업의 장점보다 단점을 극명하게 부각시킨 이 사건을 계기로 릴라이언스 그룹이나 인도 부동산 최대 기업인 DLF 등 다른 가족기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포괄적 성장만이 유일한 답
이렇듯 인도가 급속한 성장을 통해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이면에는 다양한 갈등 혹은 위험요인이 잠복해 있다. 최근 여러 사건을 계기로 그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정치권도 다양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인도 정부는 불공정 거래 행위를 종식하려고 경쟁법을 재정비하고, 법적 권한을 부여한 경쟁위원회를 통해 기업 간 공정거래를 강화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공기업 독과점이 야기한 비효율성을 줄이려고 규제완화 정책과 더불어 외국기업의 투자를 허용하고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을 서두르기도 한다.
인도 정부는 빈부격차를 줄이려는 새로운 빈곤퇴치 프로그램으로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아드하르(Aadhaar)’ 제도를 도입해 은행계정으로 직접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하면 중간에 누수되는 금액(추계로는 국내총샌산의 5%에 해당하는 5689억 루피에 달한다)을 줄이고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인도 정부 측 설명이다.
외부 시선으로 보자면, 이렇듯 강력한 정책 추진과 함께 각종 규제를 풀어 각 주체들을 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대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직된 노동법을 개정하고, 기업들과의 협의 하에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보상책도 강구해야 할 시점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시장에서 기업 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유도하고 개인별 격차를 줄여나가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인도의 경제민주화 노력이 비로소 성과를 거두게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이가 잘살 수 있는 포괄적 성장만이 경제민주화를 위해 선택 가능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