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모집 사기에 피해를 보는 건 절박한 마음에 카드를 발급받는 구직자와 사회 초년생들이다.
“삼성 공채 합격자신가요? 삼성그룹 임직원 카드 가입 신청을 받고 있어요. 회사 들어가시려면 꼭 필요합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의 말에 L씨는 깜빡 속아 길거리에 서서 카드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남자는 “정확한 가입을 위해 합격 조회도 해야 한다”며 삼성 채용사이트 ‘디어삼성’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요구했다. 모두 알려주자 남자는 L씨에게 “고맙다”며 현금 1만 원을 주었다. 그런데 며칠 뒤 신한카드 영업직원의 전화를 받고 L씨는 자신이 삼성그룹 임직원 카드가 아니라 일반 신용카드인 ‘신한 Love 카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L씨는 신한카드 측에 따졌지만 “카드모집인의 개인적인 잘못이기 때문에 회사는 어쩔 수 없다”며 “연회비가 발생하기 전에 취소하면 될 것이 아니냐”는 소리만 들었다.
금융감독원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8월 말까지 적발된 카드사의 불법모집은 총 52건. 10월 국정감사에서 미래희망연대 김정 의원은 삼성카드 모집인이 카드 발급 조건으로 짝퉁 명품가방을 제공하고, 외환카드는 가입 경품으로 15만 원 상당의 면세점 이용권과 동반자 포함 건강검진 이용권을 증정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카드사 불법모집의 주요 마케팅 대상이 취업을 앞둔 사회 초년생이나 구직희망자로 확대되고 있다. 구직자들이 공채과정에서 혹은 합격한 후에 신체검사를 받는 점을 이용, 구직자들의 취업 희망 회사를 사칭해 카드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카드 안 만들면 취업 불이익” 거짓말까지
“신체검사 받고 병원을 나서는데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깍듯이 인사하며 봉투를 건네더군요. 저는 면접비인 줄 알고 감사히 받았는데 신한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더군요. 그제야 카드모집인인 걸 알았죠.”
얼마 전 H그룹 신체검사를 받은 고려대 K모 씨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K씨는 “이미 해당 카드가 있어 거절했더니 그가 갑자기 획 하고 봉투를 빼앗았다. 너무 불쾌했다”고 전했다.
카드 판촉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구직자의 애절한 심정을 악용하고 때로는 협박까지 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현대기업 계열사 공채에서 최종면접을 앞두고 신체검사를 받은 H모 씨는 병원 앞에서 삼성카드에 가입했다. H씨는 “직원이 계속 ‘이거 가입 안 하시면 안 됩니다. 인사과에 다 연락됩니다’라고 말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H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입했는데, 내 절박한 마음을 악용한 상술이었음을 알고 나서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카드모집인이 타 회사를 사칭하는 것을 처벌하거나 막을 수는 없을까?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여신전문금융법 개정안을 시행하며 “신용카드 불법모집을 대대적으로 단속, 감시하고 불법모집 행위를 방조한 카드사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금융감독원이 52건의 불법모집 행위를 적발했지만 ‘조치 의뢰’를 한 것은 롯데카드 직원에 대해 한 1건이 전부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방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해당 카드사들도 “사칭은 카드모집인 개인의 문제이고 증거가 마땅치 않아 처벌은 어렵다”고 발뺌하는 상황.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절박한 마음에 카드를 발급받는 구직자 와 사회 초년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