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목표요?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도록 돕는 거죠.”
강양석(38·사진) 셀바스 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빅데이터 시대 AI의 목표를 ‘지식의 큐레이션’으로 압축했다. 큐레이션이란 보통 넘쳐나는 정보를 보기 좋게 혹은 선택하기 쉽게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얼핏 연관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싱거운 대답이다.
“신용카드 회사나 구청 민원실을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소비자는 뭔가 풀고자 하는 애로가 있으니 전화를 했을 테죠. ‘원하는 바가 특정’됐기 때문에 빅데이터로 유형화가 가능하고,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알파고가 바둑 고수인 것처럼, 특정 업무에 한정해선 인간보다 똑똑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셀바스 그룹 계열사 중 ‘셀바스AI’는 최근 자체 AI 플랫폼 ‘셀비 프리딕션’을 기반으로 개발된 ‘셀비 챗봇’ 엔진을 강남구청 주·정차 민원 인공지능 챗봇인 ‘강남봇’에 공급했다.
그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0년 가까이 전략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컨설팅에서 일하며 데이터 읽는 눈을 키웠다. 3년 전 모바일오피스 기업 ‘인프라웨어’로 들어와 현재 셀바스 그룹 전체의 경영기획을 맡고 있다. 그는 “데이터를 읽는 사회 전반의 눈이 높아져야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이 빨라진다”고 말한다.
AI, 모든 소프트웨어 회사의 목표
현재 전 세계가 AI의 위력을 깨닫고 앞다퉈 그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압도적인 데이터베이스(DB)와 기술력, 고급 인력을 가진 구글, 애플, 아마존이 선두에 나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애플의 AI ‘시리’와 아마존의 ‘알렉사’는 전 세계에서 사용자의 온갖 기괴한 질문을 처리하면서 실전 능력을 높이는 중이다.빅데이터를 학습한 IBM의 AI ‘닥터 왓슨’은 암 진단율이 대장암 98%, 직장암 96%, 자궁경부암 100%를 기록해 인간 의사보다 정확하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왜소한 한국 소프트웨어업체의 미래는 구글, 애플 등에 밀려 도태되는 운명에 처한 것일까.
“물론 위기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모든 것에 만능인 AI 개발은 아직 먼 미래의 일입니다. 게다가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한국적인 상황을 무시할 수 없고요. 우리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튼실한 성’을 쌓는 것이 절실합니다.”
셀바스 그룹 전체 직원 600명 가운데 70% 이상이 소프트웨어 전문가다. 셀바스 그룹은 한국시장 수성을 위한 전략 거점을 ‘메디컬 헬스케어’ 산업으로 잡았다.
셀바스AI는 메디컬 헬스케어 시장용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에, ‘셀바스 헬스케어’는 체성분 분석기, 점자정보 단말기 등 기존 하드웨어 기술력에 계열사들의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제품 라인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셀바스AI의 의료 녹취 서비스 ‘셀비 메디보이스’는 음성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진료과별로 최적화된 기능도 갖춰 의사들의 업무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셀비 체크업’은 개인의 건강검진기록을 기반으로 폐암, 간암 등 6대 암을 비롯해 심·뇌혈관질환, 당뇨, 치매 등 주요 성인병의 3년 이내 발병 확률을 예측해준다.
“순수 기술만 있다고 성공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하드웨어와 결합해 적절하게 상업화에 성공한 상품을 만들어야 재투자할 수 있고 장기 생존도 가능합니다. 그 중간 단계로 우리는 메디컬 헬스케어 산업을 택한 거죠. AI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더 치열해질 것입니다.”
소프트웨어업체는 ‘데이터양’에 집중하기 쉽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게 데이터를 바라보는 시각과 상황에 맞게 해석해내는 전략이다. 수집된 데이터를 AI가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지도 해당 문화권과 기술자의 철학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는 것. 즉 애플과 구글이 발견하지 못하는 답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데이터양, 그리고 설득력”
“맛있는 와인 20개를 추천해주면 소비자는 선택하기 더 어렵습니다. 각 소비자의 취향과 경제력, 숨겨진 욕구를 분석해 3~4개로 압축해야겠죠. 그게 AI의 최선이고, 결국 선택에 대한 책임은 다시 소비자의 몫입니다.”
미래를 묘사한 영화는 AI가 인격화돼 다시 인간을 위협한다는 내용이 태반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낮다. 결국 학습이 가능한 기계는 인간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그 기계의 판단력은 설계자의 인사이트에 달렸다는 얘기다.
“큐레이션의 목표는 소비자조차 알지 못하던 숨겨진 욕구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당연히 해석의 여지가 많고 소비자의 행동 양식은 각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소비자의 욕망을 잘 해결하는 시스템은 우리 기업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의 ‘알렉사’나 애플의 ‘시리’ 등 AI 최전선에 있는 회사들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AI는 어떤 데이터로 훈련하느냐에 따라 능력이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목적에 맞게 데이터를 쌓아 연구한다면 높은 진입 장벽을 넘어 ‘한국형 AI산업’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알렉사의 선전이 두드러진 이유는 애플이 음성 데이터양에 집중할 때 알렉사는 ‘가정 내 음성 데이터’라는 특정 목적에 집중했기 때문. 예를 들어 사용자가 “어머니가 우울하니 음악을 들려달라”고 주문할 때 시리는 전 세계 엄마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주지만, 알렉사는 그날 집 안의 분위기를 고려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형 AI산업을 만드는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데이터양 자체가 아닌, 어떤 목적에 맞게 어떤 데이터를 잘 쌓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차세대 AI의 핵심 고민 지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통신사들도 앞다퉈 TV에 AI를 설치해 날씨 확인이나 음식 주문 같은 간단한 요구사항을 처리하는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런 기술이 진화하면 우리는 더 효율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정확한 사실 여부나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은 데이터가 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겠죠.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인간이 해야 하는 이치입니다. 해석 방향은 무한하니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설득력일 것입니다. 경영인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셀바스(Selvas) 그룹은… 셀바스는 아마존 유역의 열대우림을 뜻하는 말. 셀바스(대표 곽민철)의 모기업인 ‘셀바스AI’의 옛 사명은 ‘디오텍’이다. 국내 대표 모바일오피스 제공사인 ‘인프라웨어’의 계열사였지만 지난해 7월 헬스케어 분야의 인공지능을 그룹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자 자회사 디오텍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