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1일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이자 20세기 가장 탁월한 석학 중의 한 사람인 피터 F. 드러커 박사가 미국 캘리포니아 클레어 몬드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드러커의 평생 화두는 ‘조직’이었다. 그는 조직이 조직다울 수 있는 길, 즉 경영의 인(仁)을 추구했다. 공자의 인(仁)이 사람의 것이었다면, 드러커의 인은 그 사람들이 모인 실체, 즉 조직의 것이었다.
이질적 지식 융합과 소통 제시
드러커 이전에 조직을 보는 관점은 생산, 판매, 회계, 기술, 관리 등 각각의 기능별로 조각조각 갈라져 있었다. 경영자 역시 이를 하나로 묶는 시야가 부족했다. 지금은 너무 상식적인 드러커의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의 개념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목표관리란 조직을 구성하는 이질적인 지식의 융합과 소통을 촉진하는 행위다. 지금은 이런 사고가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드러커가 처음 그 개념을 제시했을 때만 해도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초기 주저인 ‘경영의 실제’(1954)에서 제기된 사상이다.
진정한 의미의 목표관리제가 경영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기업에 어떤 유일한 목표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핵심 기능별로 그 최소한의 성과가 지니는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과거의 경제학자들이 단순히 분석의 단순화를 위해 설정한 명제, 즉 기업의 목표가 이윤 극대화에 있다는 그릇된 신화는 예나 지금이나 횡행하고 있다.
이윤은 조직의 다양한 목표들을 추구한 결과일 뿐 그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드러커의 사상에 따르면, 고액의 스톡옵션을 받은 경영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주가 관리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경영자들이야말로 경영의 본말이 전도된 사람들이다. 드러커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업 현실을 모르는 도덕 선생님 같은 말씀이냐고 비아냥댈지 모른다. 그러나 단기적 공시 실적에 목매는 기업들이 얼마나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는지를 지켜봐온 사람들은 진심으로 공감할 것이다. 드러커가 최초로 강조했던 이해 관계자들(stakeholders)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윤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지엽 단말에 불과한지를 알 것이다.
아내와 함께한 드러커 박사의 말년 모습.
그러나 고객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경영자는 드물다. 마케팅 개념이 바로 여기에서 등장한다. 마케팅을 제대로 할 줄 알면 성공의 절반은 거저 따고 들어간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마케팅에 내로라하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는 사실상 외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드러커가 강조했던 변화경영의 원천은 사실상 조직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 외부, 즉 고객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초점을 두지 않고 내부에만 초점을 둔 변화경영은 십중팔구 실패한다. 성공하는 기업은 성공에 도취하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외부를 멀리하고 내부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때가 진정한 위기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추진하는 개혁은 마치 습관처럼 시선이 내부에만 고정된다. 전가의 보도처럼 구사하는 맹목적인 비용절감과 다운사이징(소형화·감량화)은 가장 흔한 범실들이다.
‘경영의 핵심은 사람’
우리는 그의 사상에서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경영을 오직 돈 버는 기술로만 이해하고 인간이 거기 있음을 망각한 경영술사의 냉혹성은 그와 거리가 멀다. 그는 경영의 인(仁), 즉 씨앗은 사람에 있음을 잊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드러커가 지식사회와 지식노동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과거 산업사회의 기계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의 명령통제형 구조와, 지식을 기본으로 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 간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지식노동자는 이제 더 이상 상사의 감독 대상이 아니다. 오직 성과만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수평적 조직과 권한 위임이 그 자연스러운 귀결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지식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 지식노동자는 불가피하게 평생학습을 수행해야 한다.
이렇듯 지식노동자가 확산되는 것 이외에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연금기금 자본주의(pension fund capitalism)가 보편화되면서 이제 전통적인 의미의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자본가와 노동자, 주주와 경영자의 구분 역시 점점 퇴색하고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 역시 한 사람의 직원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전제주의적 통치 윤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고경영자라는 자리를 일종의 권력으로 착각하고 직원을 교육하고 개조하려 드는 식의 심리적 전제주의를 자행하는 인사들은 아직도 많이 있다.
이제 지식사회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은 더 이상 카리스마형 리더십, 또는 명령통제형 리더십이 아니다. 팀제형 리더십, 또는 관계형 리더십이다. 미션과 비전, 의사소통, 경영진 팀의 유대관계, 동기부여 등을 강조하는 최근의 주류 리더십 이론은 바로 드러커의 지식사회 이론에서 본원적으로 파생돼나온 것들이다.
그의 이런 학제적, 종합적, 휴머니즘적인 사고를 낳게 한 그의 성장 및 교육 배경을 살펴보자.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자신의 집에 드나드는 비엔나의 지식인들과 10대 시절에 이미 자유로운 만남과 토론의 기회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접촉할 수 있었다. 이렇듯 영민한 드러커였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 졸업 후에 굳이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17세에 곧바로 함부르크의 한 상점에 견습사원으로 취직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누대의 명문가인 드러커 집안에서 그의 이런 취업 결정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하튼 그는 어린 나이의 직업활동을 통해 현장의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은행과 신문사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더욱 넓힐 수 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 강조
그가 대학 문턱을 처음 밟은 것은 신문사 근무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뒤였으며, 박사학위도 정치사상에 관한 것이어서 그의 학문적 출발이 경영학은 아니었다. 그의 휴머니즘적인 사상은 그가 20세기 초반에 목격한 유럽식 전체주의의 참상에서 얻은 교훈에서도 크게 기인한다. 그의 초기 주저인 ‘경제인의 종말’(1939)이나 ‘산업인의 미래’(1942)가 바로 이러한 절대개념이나 전체주의적 사고에 대한 거부의식이 반영된 것들이다. 그러다 그가 조직, 더 넓게는 경영학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수년간 GM의 내부 컨설팅을 수행하면서 그 결과로 ‘기업의 개념’(1946)을 출판하게 되면서부터다. 이후 ‘경영의 실제’(1954)에서 그의 경영사상이 최초로 종합적으로 정리되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대부분의 후기 경영사상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드러커의 시야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한 실마리는 그가 동양의 고미술, 특히 일본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젊은 시절 우연히 비를 피하기 위해 들렀던 런던의 한 박물관에서 동양의 미술품을 접하고 이후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기울이게 된다. 실제로 동양미술 관련 평론도 다수 발표한 그는 이미 그 방면에서도 좋은 글을 많이 남겼다. 드러커의 문장에서 엿볼 수 있는 예사롭지 않은 시적 감각, 회화적인 어휘의 배치, 그리고 전체를 조망하는 여유도 결코 우연이 아닌 듯싶다.
이제 한국 사회에도 CEO형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따금 들린다. 그러나 정작 CEO를 훈련시킬 수 있는 곳은 현장 외에는 없다. 그러나 현장에서만 형성된 능력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다른 차원의 통찰과 그 어떤 당위적인 이상을 지향하는 훈련이 절실하다. 잭 웰치와 빌 게이츠는 평생 경영을 직접 해본 일이 없는 서생(書生) 드러커를 스승으로 삼아왔고, 또 그만큼 어마어마한 성과를 일궈냈다. 학자는 많지만 스승이 드문 현실에서, 드러커는 경영과 리더십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드러커가 수십 년 전부터 기업의 권력적 정당성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산업사회의 새로운 조직형태로서 비영리단체의 가능성과 소임을 강조했다는 데서 우리는 미래학자로서의 그의 통찰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들 문제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특히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최근에 발생했던 회계부정 사태는 기업 이해 관계자의 일각에 불과한 최고경영자의 주식시장 집착증과 권력 남용,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결국 조직이 조직다워져야만 한다는 경영의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병든 기업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드러커 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드러커 관련 필독서 드러커의 생애 및 사상의 소개서
피터 드러커: 현대 경영의 정신, 존 플래허티 지음, 송경모 옮김, 예지(Wisdom)
피터 드러커 평전, 이재규 지음,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드러커 핵심 논저 집성
피터 드러커 미래경영(The essential Drucker), 이재규 옮김, 청림출판
피터 드러커-미래를 읽는 힘, 고바야시 가오루 지음, 남상진 옮김, 청림출판
드러커의 주요 저서
피터 드러커의 21세기 비전-이노베이터의 조건, 이재규 옮김, 청림출판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Post capitalist society), 한국경제신문사 옮김,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21세기 지식경영, 이재규 옮김,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실천하는 경영자, 남상진 옮김, 청림출판
피터 드러커 자서전(Adventures of a Bystander), 이동현 옮김,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기업가 정신-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이재규 옮김,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