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의 주가 움직임을 보면 삼성전자가 한 해만 오르고 상승이 끝난 적은 없다. 2023년 주가가 42% 올라 7만8500원에서 마무리됐다. 즉 올 연말 삼성전자 주가가 7만8500원 아래에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가 8월 12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의 경우 7만8500원 아래는 안전한 가격대”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는 한화자산운용, 인피니티투자자문 등을 거친 뒤 2021년 체슬리투자자문을 설립한 업계 베테랑이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됐을 때 코스피 3000 돌파를 예측해 ‘동학개미의 스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 대표는 최근 국내 증시의 급격한 하락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테마주와 반도체 기업을 담지 못한 이들을 위한 바겐세일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 [홍태식]
“삼성전자 전 고점 간다”
8월 5일 세계 증시가 폭락한 ‘검은 월요일’은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크게 키웠다. 이날 코스피는 8.77% 급락해 국내 투자자에게 충격을 안겼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삼성전자 역시 10% 이상 하락해 7만1400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연말 주가 (7만8500원)보다 낮은 가격이었다.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꾸준히 상승해 8월 14일 7만7200원까지 올랐지만 투자자들의 우려는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이날 박 대표는 “올해 삼성전자가 전 고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최근 전 세계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변동성이 커진 주된 원인은 미국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팍팍할 정도로 높았다는 점이다. 2022년 주식시장이 고점에 다다랐을 때 S&P500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24배 근방이었다. 당시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1.5%밖에 되지 않았다. 최근 12개월 선행 PER 22배 수준에서 증시가 하락했다. 당시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4.3~4.4%였다. 워런 버핏조차 채권이 애플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보다 투자 매력도가 높다고 봤다. 즉 증시가 임계치에 도달한 상황에서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 뺨을 때린 격이었다.”
한국 증시 하락폭이 미국보다 컸는데.
“전체적으로 한국 시장이 더 많이 빠진 것은 맞다. 다만 종목별로 보면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은 비슷한 비즈니스 구조를 갖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최근 고점 대비 40% 가까이 주가가 하락했다. 미국 인텔은 실적이 부진해 이틀 만에 주가가 30%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단순히 한국 주식은 나쁘고 미국 주식은 좋다는 식의 선입견은 떨쳐버리는 편이 낫다.”
삼성전자는 올해 AI 테마 수혜를 보지 못한 상황임에도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지난해 종가인 7만8500원보다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 10년간 삼성전자가 한 해만 오르고 상승이 끝난 적이 없었던 만큼 올해 7만8500원 아래서 주가가 마무리될 확률은 아주 낮다. 올해 삼성전자는 실적 발표 후 주가가 전 고점을 뚫은 다음 하락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실적 시즌마다 어닝서프라이즈를 발표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의 실적 발표가 남아 있고,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다시 한 번 전 고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조금 무거울 순 있지만 우직하게 올라올 것이라고 본다.”
SK하이닉스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AI 테마 회의론도 커지고 있는데.
“SK하이닉스 주가가 강하게 올라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AI 모멘텀이 자리한다. 최근 AI 모멘텀이 ‘닷컴버블’ 때처럼 과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닷컴버블을 경험한 입장에서 당시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닷컴버블은 1996년 시작돼 5년 동안 지속됐다. 반면 AI 모멘텀은 아직 채 2년도 지나지 않았다. 금리를 고려할 때 조금 과한 느낌을 줄 뿐, 닷컴버블 수준은 아니다. 이번 하락은 그동안 AI 관련 반도체 기업에 투자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장이 주는 깜짝 바겐세일이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반도체 랠리가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현금 확보? 잘못된 조언”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크게 하락한 만큼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주가가 많이 떨어진 상황임에도 많은 투자자가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식을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침체 예측은 대체로 틀린다. 대공황,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시장이 박살 나자 많은 투자자가 주식을 팔았지만 중앙은행의 대처로 주가는 곧 상승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번 증시 하락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지금처럼 주가가 박살 나는 경우 사람들은 비관론자에게 의견을 구한다. 하지만 비관론자들은 (시장이 바닥을 보였던) 2022년 말과 2023년 3월 모두 ‘현금을 확보하라’고 말했다. 주식투자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침체 여부가 아니다. 투자한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살피는 것이다. AI 모멘텀은 짧게는 내년 상반기, 길게는 2029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점 대비 주가가 40% 빠진 현 상황은 놓쳐서는 안 될 대박 세일 기간이다. 이 시점에 현금을 확보하라는 얘기는 코로나19 사태로 충격이 극심했던 2020년 3월 ‘현금을 확보했다가 전 저점을 깨면 다시 들어가라’고 한 것처럼 잘못된 조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 대표는 하반기에 지금과 유사한 변동성이 추가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 시장에서 (지수가) 5%가량 하락하는 조정은 평균적으로 1년에 3.3회 정도 나타난다”며 “올해 4월과 8월 지수가 5% 이상 하락한 조정이 있었고, 미국 대선 직전인 10월에도 비슷한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박 대표는 “지수가 10% 이상 하락하는 조정도 1년에 한 번 정도 나올 수 있는 만큼 이 같은 조정이 나타난다고 반드시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코스피가 8월 5일을 기점으로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8월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 [동아DB]
“주도주 바뀌지 않아”
하반기에 조정이 한 번 더 올 수 있지만 이 역시 매수 기회로 봐야 한다는 것인가.
“10월쯤 변동성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 2019년 3번의 금리인하에도 시장은 상승했다. 다만 금리인하 전후로 지금과 비슷한 움직임이 관측됐다. 2019년 8월 1일 금리를 인하했는데, 5월에 시장이 급락한 것이다. 하지만 금리인하 한 달 전부터 주가는 하락 분을 만회했다. 금리인하 직후인 8월 시장은 경기침체 우려로 다시 요동쳤지만 경제가 서서히 턴어라운드하면서 주식시장도 회복됐다. 올해 역시 (금리인하 직후인) 10월에 큰 변동성이 나타날 수 있지만, 11월 미국 대선이 끝나면 랠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양상이 반복될지 여부가 관건으로 보인다.
“2000년을 기점으로 금리인하 국면이 3번 있었다. 이 중 2001년과 2007년에는 시장이 깨졌고, 2019년에는 전 고점을 뚫으며 올라갔다. 가장 큰 차이는 실업률이 급등했느냐다. 앞선 두 경우 실업률이 6% 이상 급등한 반면, 2019년에는 4%를 넘기지 않았다. 현재 미국 실업률은 4.3%다. 사람들은 ‘향후 실업률이 급등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일자리 수 등 관련 지표를 보면 2019년과 유사한 상황이다. 1년 안에 하드랜딩 시기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정을 좋은 기업을 매수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번 급락을 기점으로 주도주가 바뀌지는 않을까.
“M7(매그니피센트7: MS·애플·아마존·엔비디아·알파벳·메타·테슬라)이 최근 주가 조정을 많이 받았다. 내년까지 이익 모멘텀을 이어나가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미국의 경우 주도주 변경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빅파마 주가 역시 전 고점을 돌파할 수 있다. 한국은 경기 사이클을 타는 주식이 많다. 최근 턴어라운드하는 모습이 관측되는 섹터가 조선주다. 또한 불닭볶음면, 화장품 같은 소비재는 갑자기 (시장 구매 형태가) 확 바뀌지 않는다. 관련 섹터 역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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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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