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 ‘2021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하는 반려동물 양육 인구만큼 반려동물과 이별을 경험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GettyImages]
이학범 수의사는 이런 반려인들의 사례를 안타까워하다 지난해 펫로스 증후군에 관한 저서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을 출간했다. 반려인이 반려동물과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소개하고 새로운 반려동물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다. 일반인뿐 아니라 수의사 중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많은 것도 집필에 영향을 미쳤다. “이별 전후 대처 방법이 중요하다”는 이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바람직한 자세에 관해 물었다.
‘유일한 내 편’ 잘 떠나보내려면
10월 24일 이학범 수의사가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펫로스 증후군’에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조영철 기자]
“반려동물과 이별을 겪으면 슬픈 게 당연하다. 다만 일정 시간이 지나도 감정이 회복되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어렵다면 펫로스 증후군일 개연성이 크다. 펫로스 증후군에 비견되는 정신과 질환으로는 ‘지속성 복합 사별장애’가 있다. 가족, 친구 등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꽤 오랜 시간(성인 기준 1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강도 높은 우울감이 지속되면 이 질환을 의심한다. 펫로스 증후군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표 참조).”
어떤 반려인에게 펫로스 증후군이 나타나기 쉬운가.
“반려동물과 애착 관계가 깊을수록 떠나보내는 과정이 힘들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거나 사회에서 소외당한 경험이 있는 분들 가운데 반려동물을 입양해 키우며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반려인은 반려동물을 ‘유일한 내 편’으로 인식해 더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반려동물의 의미가 남달랐던 만큼 이별 과정에서 기존 질환이 악화되거나 마음을 크게 다칠 수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한다.”
펫로스 증후군을 방치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일반적으로 상실은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 다섯 단계로 진행된다. 펫로스 증후군은 반려동물과 이별을 납득하는 수용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부정, 분노, 타협, 절망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분노 단계에선 가정불화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내가 사람 먹는 음식 주지 말랬잖아’ 이런 식으로 가족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기 때문이다. 더 위험한 건 절망 단계다. 반려동물의 부재에 망연자실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가 실제 있다.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이별의 슬픔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면.
“일단 슬픈 게 정상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 걸까’ ‘감정을 드러냈다가 핀잔을 듣진 않을까’ 생각하지 말고 이별 직후 자신의 속도대로 충분히 슬퍼했으면 한다. 감정을 억누르면 안에서 곪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떠난 반려동물에게 편지를 쓰면 좋다. 글로 마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잘 정리할 수 있다. 반려동물 생전에 찍어놓은 사진, 영상을 본다든가 가족 혹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변 사람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러 방법을 써봤는데도 우울감이 오래 지속된다면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받는 걸 권한다.”
반려동물이 노령이거나 죽음이 다가올 때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펫로스 증후군에는 죄책감, 후회 감정이 크게 작용한다. ‘우리 코코가 어디 가는 걸 참 좋아했는데’ ‘무슨 간식을 잘 먹었는데’ ‘마지막에 외출도 못 하고 처방사료만 먹다 갔네’ 이런 식이다. 후회를 줄이기 위해 반려동물 컨디션에 무리가 안 가는 선에서 평소 좋아하던 걸 다 하게 해주길 추천한다. 또 하나는 반려동물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다. 경황이 없어 사체를 일반폐기물로 처리하고 나면 두고두고 마음에 짐처럼 남을 수 있다. 합법적이면서 정서적으로 납득 가능한 사체 처리 방법인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더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으려 하거나 떠난 반려동물과 닮은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사람도 많은데.
“둘 다 이별 고통이 커서 그런 건데, 전자의 경우 반려동물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추천하는 방법은 첫째 반려동물이 노령견(노령묘)이 됐을 때 유기동물보호소 등에서 둘째 반려동물을 입양해 같이 지내는 것이다. 그러면 둘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서로 위로하면서 슬픔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같은 견종(묘종)의 닮은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건 개인적으로 말리고 싶다. 대체품 찾듯 입양하면 첫째 반려동물과 다른 점이 보일 때 쉽게 실망하고 그런 마음이 파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피는 안 그랬는데 얘는 왜 이러지’ 싶은 생각이 든다는 얘기다.”
시간만이 약은 아니더라
“슬픔을 느끼는 정도는 반려동물마다 다르다. 평소와 완전히 똑같은 반려동물도 있다. 반대로 첫째 반려동물이 떠난 후 식욕이 없어진다거나, 밤에 잠을 잘 못 잔다거나, 첫째가 머무르던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거나 하는 증상을 보이면 마음이 힘든 상태라고 보면 된다. 심할 경우 공격성, 분리불안을 보이는 반려동물도 있다. 이때는 반려인이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첫째 반려동물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게 가장 좋다. 분리불안 같은 증상은 수의사의 진료를 받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사람이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있다면.
“아직까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 제도는 없다. 다만 최근 들어 펫로스 증후군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상담사가 늘고 있다.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반려인 모임도 민간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이런 모임을 연결해주기도 하니 문의하면 된다.”
수의사도 펫로스 증후군을 겪나. 이별을 준비하는 반려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변에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 수의사가 여럿이다. 병든 반려동물을 본인 손으로 안락사한 동료 수의사는 우울증 약을 복용할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 나 또한 이전에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으면서 지나왔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됐다. 수의사도 펫로스 증후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데 일반인은 어떻겠나 싶었다. ‘유난 떤다’는 시선이 여전히 많은 게 사실이지만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분들과 마음을 많이 나누라고 얘기하고 싶다. 아직 반려동물 나이가 어리다면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고, 이미 헤어짐을 맞은 경우라면 마음을 추스른 뒤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해보길 추천한다. 떠난 반려동물이 선물해준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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