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올해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TSMC]
사상 처음으로 식민지배 일본 추월 가능성
그럼에도 대만인의 반일(反日)감정은 높지 않다. 주민을 수탈했던 청나라와 달리 일본은 대만 ‘근대화’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대만 원주민과 외성인(1945년 이후 본토에서 이주해온 한족), 본성인(명·청 시대 푸젠성 등에서 건너온 이주민 출신 한족) 등 다양한 인구 구성을 가진 대만은 본토인 중국보다 오히려 일본과 가깝다. 양국 정재계와 사회·문화계 인사뿐 아니라, 관광객 등 민간인 교류도 활발하다. 또한 대만은 중국의 무력 통일 위협에 맞서 일본과 안보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위안부 강제 동원이나 영토 분쟁 등으로 식민종주국 일본에 대한 반감도 어느 정도 깔려 있다.현재 대만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가적 자부심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11일 내놓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대만이 올해 1인당 GDP에서 한국과 일본을 모두 제치고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가 예측한 대만의 올해 1인당 GDP는 3만5510달러(약 5080만 원)로, 지난해 3만3140달러(약 4740만 원)보다 7.2% 증가했다. 한국은 지난해(3만5000달러)보다 4.2% 감소한 3만3590달러(약 4800만 원), 일본은 지난해(3만9300달러)보다 12.6%나 뒷걸음질친 3만4360달러(약 4913만 원)로 전망됐다. 2002년까지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높았던 대만은 2003년 처음 추월당한 후 따라잡지 못했는데 이번에 19년 만에 다시 앞선 것은 물론, 사상 처음으로 일본까지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대만이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동아시아에서 1인당 GDP 1위 국가가 될 것”이라면서 “지난해 6.57% 경제성장률을 기반으로 올해도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대만이 가장 높다. IMF가 예측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대만 3.24%, 한국 2.5%, 일본 2.4% 순이다. 특히 대만의 1인당 GDP는 내년에도 한국과 일본을 제칠 것으로 보인다. 쿵밍신 대만 국가발전위원회 주임위원(장관급)은 “대만 1인당 GDP가 한일을 제친 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내년에도 한일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IMF는 내년 1인당 GDP를 대만 3만6834달러, 일본 3만5034달러, 한국 3만4767달러로 각각 전망했다. 3월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도 대만의 올해 행복지수는 6.512점으로 전체 146개국 중 26위를 차지했다. 이는 중국(72위·5.585점)은 물론 일본(54위·6.039점), 한국(59위·5.935점)보다 훨씬 앞선 것이다.
삼성전자·인텔 양강 구도 깬 TSMC
대만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사태 초기 공항에서 승객 신원 등을 등록하고 있다. [CNA]
물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반도체산업의 활약이다. 대만은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된 한국과 달리, 파운드리(위탁생산)는 물론 팹리스(설계·개발)와 후공정 분야까지 강하다. 매출 10억 달러(약 1조4400억 원)가 넘는 반도체업체 수도 28개로, 한국(12개)보다 많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 외에도 세계 3위 파운드리 업체 UMC, 세계 5위 팹리스 업체 미디어텍, 세계 1위 후공정 업체 ASE 등을 보유하고 있다.
대만은 이런 쟁쟁한 기업들을 앞세워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 시장인 중국에서 대만의 시장점유율은 2018년 28.9%에서 올해 1~7월 35%까지 올라갔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24.4%에서 19.6%로 떨어졌다. 왕 부장은 “대만의 대중(對中)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015년 32%에서 2021년 50%로 증가했다”며 “이는 대만 반도체산업의 경쟁 우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또 왕 부장은 “대만은 앞으로도 반도체 제조 공정 기술 수준을 계속 높이고 올해 3㎚(나노미터), 2025년 2㎚ 양산에 돌입해 경쟁력을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TSMC가 3분기 매출에서 한국 삼성전자를 처음으로 추월했다는 것이다. TSMC의 3분기 매출은 6131억4000만 대만달러(약 27조1375억 원)로 전년 대비 47.9% 증가했다. 3분기 순익만 2808억7000만 대만달러(약 12조4313억 원)로, 전년 대비 79.7% 급증했다. 이로써 TSMC는 한국 삼성전자와 미국 인텔의 세계 반도체 시장 양강 구도를 깨고 창립 35년 만에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에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 반도체 기업(IDM)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매출이 많고 최근 재고 축적, 가격 하락 등으로 호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TSMC는 고객사 주문을 받고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재고, 가격, 매출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中 무력 통일 위협에 반도체 동맹으로 맞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건국기념일인 10월 10일 연설에서 반도체산업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대만 총통부]
대만 정부가 현재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중국의 무력 통일 위협이다. 중국 공산당은 10월 22일 폐막된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대만 독립을 단호히 반대하고 억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당헌인 당장(黨章)에 포함시켰다. 공산당 총서기에 3번째 선출된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포기를 절대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대만 통일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클 길데이 미국 해군참모총장은 “중국이 올해나 내년 중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정부 일각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TSMC를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TSMC 시설을 먼저 파괴하고 엔지니어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 정부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미국, 일본 등과 반도체 동맹 구축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만 정부는 국가 흥망이 걸린 반도체산업을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