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조영철 기자]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9월 20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거듭 강조한 말이다. 경제 주체들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잇따른 매파적 행보에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좀 더 능동적으로 행동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윤 센터장은 “이미 알려진 사실의 경우 심리적·기술적 조정만 거치면 될 뿐 시스템적 위기를 초래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현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헤지펀드계의 전설 조지 소로스 역시 “이미 알려진 것은 무시해버리고 불확실한 데 베팅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센터장은 “오늘날 불확실한 것은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무역 갈등 등으로 세계가 블록화되면서 경제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센터장은 이 과정에서 일정 부분 물가상승을 감내하는 기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유럽은 러시아 이외 나라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할 테고, 미국은 자국 내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할 텐데 이는 비용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월, 잭슨홀 때 힌트 줬다”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기점으로 시장 분위기가 급속도로 바뀌었다.
“많은 충격을 줬다. 여름 동안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있지 않겠는가’라는 기대가 퍼지면서 증시가 상승했다. ‘내년이면 금리가 인하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반영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경고의) 말을 해왔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막상 8월 CPI 발표 후 임대료, 인건비 등에서 구조적 상승세가 관측되자 시장이 패닉에 삐졌다. 돌이켜보면 파월 의장이 잭슨홀 미팅 때 굉장히 짧고 단호하게 ‘물가를 잡겠다’고 이야기하며 힌트를 줬다. 연준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가를 잡겠다’고 말하면서 시장이 겁을 먹은 상태다. 다만 인플레이션 자체는 잡혀가고 있다고 본다.”
인플레이션의 중심이 유가에서 주거비로 이동하고 있다.
“맞다. 다만 두 가지 지점을 짚어봐야 한다. 첫째로 미국 물가에서는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한국은 CPI에서 주거비 비중이 9%에 불과한데 미국은 자그마치 32%다. 근원 CPI에서는 39.9%라는 어마어마한 비율을 차지한다. 주거비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자가주거비(OER)다. 유주택자가 자신이 거주하는 집에 자체적으로 매긴 임대비용을 설문조사해서 산출한다. 즉 주거비는 집값의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주거비는 시차를 두고 점차 내려갈 것이다. 미국의 30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6%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 둔화가 발생하면서 주거비 상승세도 꺾일 전망이다.”
나머지 하나는 무엇인가.
“겨울이 되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가가 배럴당 130~200달러까지 간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어느덧 80달러대로 왔다. 4분기 유가는 배럴당 70달러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마진을 확 줄였다.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준 셈이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러시아산 원유가 대폭 들어오면서 시장을 뺏긴 탓이다.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밀어내기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유럽의 에너지 수입 문제가 개선되면서 천연가스 가격도 최근 반토막 났다. 유로존이 최악의 상태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 일정 수준 용인할 것”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경기침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일자리가 없고 집값도 폭락해야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아서 물가가 잡힌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관건은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연준이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것인지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딥 리세션(deep recession: 깊은 경기침체)이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금융권은 마일드 리세션(mild recession: 완만한 경기침체) 정도지 않을까 전망한다. 중요한 사실은 마일드 리세션에 대한 전망은 이미 증시에 많이 반영됐다는 점이다.”
투자자 사이에서는 기준금리 4% 시대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지 않나.
“금리가 높아도 주식시장은 돌아간다. 금리가 상승하면 아무도 주식투자를 안 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운용 자산이 많은 기관 입장에서는 금리가 굉장히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이다. 하지만 자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다수의 일반투자자와 공격적 투자로 수익 창출을 노리는 투자자는 시장에 남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시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 제어되겠지만 (물가상승률이) 2%대로 돌아가는 것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지난 30년과 달리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구간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을 헤지(위험분산)할 수 있는 자산을 갖고 있어야 한다. 채권보다 주식이 낫다.”
파월 의장이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인 2%로 되돌리겠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잡히면 성장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다. 물론 내년에도 기준금리를 쉽게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금리 이상의 (실적) 상승을 보이는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 때처럼 ‘주식시장이 완전히 붕괴한 후 다시 투자에 나서야지’라고 생각한다.”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보인다.
“현 상황은 앞선 위기 상황들과 차이가 있다. 외환위기가 오기 전 누구도 대우그룹이 망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금융가가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 때도 질병 때문에 전 세계가 이토록 오랫동안 진통을 겪을지 아무도 몰랐다. 이런 것들은 시스템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지금은 연준 일정이 있는 날이면 모두가 매크로 분석에 열중한다. 오히려 ‘매크로 과잉’이 문제일 지경이다.”
입국 전 코로나19 검사 의무화 폐지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한 가운데 9월 1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출국하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동아DB]
“자동차·여행·생필품 산업 주목”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4% 시대를 대비해 포트폴리오 조정이 필요해 보이는데.“앞서 언급했듯이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상수화될 전망이다. 비용 인상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산업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이 지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결국 생산성이 좋고 수요가 단단한 기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아직 소비를 하지 못해 ‘대기수요’가 있는 소비재다. 자동차, 여행 관련 산업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필수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음식료 업종이다.”
기준금리 4%가 목전이다. 투자 선배로서 이 같은 시기를 처음 겪는 투자자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경기가 좋아 보일 때 오히려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한다. 투자자들이 ‘삼성전자가 10만 전자 갈 것’이라고 말할 때 주가가 조용히 내려오지 않았나. 반대로 모두가 망했다고 말할 때 주가 하락에 제동이 걸린다. 주식투자를 할 때는 종말론적 사고나 선형적 사고보다 순환론적 사고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닥이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좋은 기업을 찾아 모아두고 기다린다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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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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