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 FA-50 경공격기. [뉴스1]
“폴란드와의 대규모 수출 계약은 단기 이벤트성이 아닌, 오랜 개발과 세일즈의 결과라는 점에서 앞으로 국내 방산주가 성장할 가능성은 더 크다.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일부 조정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세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이동헌 신한금융투자 연구원)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하락장에서 견조한 실적을 내며 연일 주가 연고점 행렬을 이어가는 산업 분야가 있다. ‘K-방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국내 방위산업(방산)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돼 세계 여러 나라가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그간 축적된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고객 관리’를 해온 국내 방산업체들이 기회를 잡은 것이다.
폴란드 방산 수출액 최대 25조 원 전망
한화디펜스 K9 자주포. [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현대로템 K2 전차. [뉴시스]
이동헌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본래 국내 방산업체는 내수산업으로서 자국군 수요라는 안정적 베이스를 갖춘 방어주(株) 성격이 강했다”면서 “최근 수출 실적이 크게 늘어 수출주로서 성격도 갖게 된 만큼 한동안 업황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원은 향후 방산 전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폴란드와의 거래 같은 장기 계약은 10년 이상 파트너십을 지속해야 하기에 신뢰가 중요하다. 이미 물밑에서 국내 업체들이 세계 각국을 상대로 세일즈를 계속해온 것이 이번 실적으로 가시화됐다. 방산 수출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 단계로, 앞으로 실적이 계속 누적될 것이다. 최근 경기침체 우려를 가중하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공급망 차질, 납기 지연 등이 방산 분야에는 비교적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정부 간 계약 성격이 강해 공급망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주가가 생각보다 빨리 오른 측면이 있어 단기적으론 일부 변동 가능성도 있다. 다만 수출 실적 호조로 중장기 주가 전망은 밝다.”
“주가에 중장기 실적 기대 반영”
다만 단기 실적 발표에선 각 업체의 희비가 엇갈렸다. 현대로템의 2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때보다 10.6% 증가한 7858억 원, 영업이익은 99.4% 급증한 314억 원을 기록했다. LIG넥스원의 2분기 실적도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은 63.8%, 영업이익은 11.5% 증가하는 등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KAI의 2분기 매출은 6685억 원, 영억이익은 344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5.56%, 42.61% 줄었다. 기체부품 사업 매출은 늘었으나 완제기 수출사업 매출이 줄어든 영향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동헌 연구원은 “단기적 실적이 중요하진 않다.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 기업 전망에 관한 모든 가정이 바뀐다”고 말했다. 2분기 실적이 안 좋은 편이지만 향후 수출 확대에 따른 중장기 실적에 기대가 크고, 최근 주가도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이 연구원은 풀이했다.역대 최대 규모의 무기 수출이 이뤄진 배경은 무엇일까. 폴란드의 급박한 안보 상황과 여기에 부응하는 한국 방산의 역량이 맞아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폴란드 계약 건을 잘 아는 인사에 따르면 5월 방한한 폴란드 국방장관은 한국 측 인사들과 식사자리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절대 믿을 수 없지만, 방산 협력에 대해선 서유럽 국가도 더는 신뢰할 수 없다. 우리의 선택지는 미국, 아니면 한국”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유럽 무기 개발·생산 생태계가 망가져 폴란드로선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유럽 국가들이 공동개발한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독일제 PzH-2000 자주포 등은 성능에 비해 가격은 비싸고 빠른 수급도 어렵다”면서 “유럽 주요 국가들은 냉전이 끝난 후 대규모 감군에 나섰고, 그 결과 자군 소요가 줄어들어 방산 내수시장이 위축됐는데 이런 여건에선 원활한 후속군수지원을 기대하기 난망하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방산업체들은 꾸준히 전력을 증강해온 한국군과의 거래로 빠른 생산 및 후속군수지원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한국 측이 보인 ‘성의’가 주효했다는 평가도 있다. 폴란드가 도입할 FA-50 48대 중 12대는 내년에 먼저 인도될 예정이다. 초도 물량의 일부는 당초 한국 공군에 납품할 예정이던 TA-50을 FA-50 사양으로 개량해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36개월 이내 납품’을 주요 조건으로 제시한 폴란드 측에 이런 납품 방식이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규모 군비 증강에 나선 폴란드는 이번 계약 물량 외 추가 수입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주 물량 급증으로 생산 및 납품에 차질이 생길 우려는 없을까. “기존 ‘케파’(capacity·생산수용력)로도 원활한 납품이 가능하다. 폴란드 측이 이미 현장 실사를 통해 국내 방산업체의 역량을 확인하고 계약을 결심한 것” “구체적인 사안은 밝히기 어려우나 현지 생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납기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는 게 국내 방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업계와 시장에선 “7월 27일(현지 시간) 기본계약 이후 폴란드 정부와의 본격적인 계약 진행 상황도 양호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출 판로 확대는 이제까지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방산업체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수혜주가 현대로템이다. 그간 현대로템은 한국군 수요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국내 방산업체로 수출에서는 유달리 약세를 보였다. 2008년 튀르키예(옛 터키)에 K2 전차 관련 기술을 수출한 것 외엔 완제품 수준의 수출 실적이 없다시피 했다. 향후 폴란드는 K2 전차를 최대 1000대 도입할 전망인데, 한국군 납품가 80억 원을 대입해 단순 계산해도 8조 원에 가까운 규모다. 현대로템 방산 부문의 1년 매출 규모가 1조 원이 채 안 되는 점을 고려하면 8년 동안 먹을거리를 확보한 셈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기존에 현대로템은 기술 이외에는 이렇다 할 수출 이력이 없었는데 이번 폴란드와 계약으로 완제품을 대거 수출한다면 주가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방산 분야 실적이 확대되자 그룹 차원의 ‘헤쳐 모여’가 이뤄질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한화디펜스는 그룹 내 ‘빅딜’을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에 흡수합병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정밀기계, 한화파워시스템 등을 매각하는 대신 ㈜한화 방산 부문과 한화디펜스 등을 통합하는 것이 뼈대다. 국내 투자 전문가는 “그간 국내 방산업체엔 비(非)방산 부문이 혼재돼 군수 매출 감소에 대비했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견조한 실적을 바탕으로 그룹 내 방산 부문을 통합하는 만큼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발사체 엔진 기술을 바탕으로 누리호 제작에 참여하는 등 민간 주도 ‘뉴 스페이스’ 산업에서 강점을 보였다. K9 자주포, 레드백 전투장갑차 등 지상전력 분야 기술과 잠수함용 리튬전지체계 기술을 보유한 한화디펜스를 흡수하면 육해공에 걸친 방산 솔루션 업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韓 육해공 무기 두루 성장 가능성”
오늘날 세계 방산시장에서 핵심 상품은 항공기다. 2017~2021년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이탈리아, 영국 등 주요국의 무기 수출에서 그 비중이 적게는 28%(중국), 많게는 62%(미국)에 이른다. 한국의 품목별 무기 수출 비중은 함정(艦艇·68%), 화포(19%), 항공기(12%) 순이었다. 특히 전 세계 화포 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은 39.7%에 달한다. 한국 방산은 함정과 화포에 강점을 가진 반면, 세계 최대 시장인 항공기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것이다. 신인균 대표는 “한국의 무기 개발 및 수출 능력은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두루 성장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한국은 현재 서방 진영에선 미국 다음으로 대규모 지상군을 운영하는 나라다. 군 수요가 많다는 점에서 내수시장이 크고 각 방산업체의 후속군수지원 체제도 신속, 정확하다. 지상무기 개발 및 수출에 강점이 있는 것이다. 최근 해군 함정 분야에선 이렇다 할 수출 ‘대박’ 사례가 없지만 조선(造船)강국으로서 이점을 살리면 한국제 군함도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항공기의 경우도 미국이 손대지 않는 틈새시장, 즉 FA-50 같은 로(low)급 전투기 시장 개척을 지속적으로 노릴 필요가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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