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FA-50 경공격기. [사진 제공 · 공군]
무기 발전으로 획득·유지비 급등
우선 무기체계 발전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면서 전장 상황이 도리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현상을 들 수 있다. 현대 전투기는 최근 10년 동안 급격히 발전한 전자공학 덕분에 엄청난 기술적 진보를 보이고 있다. 일부 최신 기종은 레이더와 전자광학, 적외선 신호를 모두 수집해 데이터를 융합하는 방식으로 1000㎞ 이상 거리의 표적을 탐지할 정도다. 기존 스텔스 기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체 레이더 반사 면적을 급격히 줄이는 것은 물론, 가시광선과 적외선 피탐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차세대 스텔스 기술도 적용되기 시작했다.무기체계 발전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뛰어난 성능의 무기로 전장을 압도하는 전투원으로선 특히 그렇다. 다만 군을 운영하는 최고지휘부로선 우수한 무기를 획득함에 따라 고민도 함께 늘어난다. 무기체계 성능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 무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덩달아 늘어나기 때문이다. 가령 스텔스 전투기의 경우 고성능 센서의 주요 부품을 자주 교체해야 한다. 각 부품의 가격도 매우 비싸다. 스텔스 성능을 유지하려면 주기적으로 큰돈을 들여 특수 코팅도 해야 한다. 정비 소요가 많다는 것은 정비에 필요한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 기체 가동률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미국이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의 비행시간당 유지비는 지난해 기준 3만6000달러(약 47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진이 2개인 쌍발 대형 전투기 F-15E(2만9000달러·약 3790만 원)나 F-16 시리즈의 최신 개량형 F-16V(2만2500달러·약 2940만 원)의 유지비를 훌쩍 뛰어넘는다.
문제는 이처럼 유지·운용에 많은 비용이 드는 전투기가 반드시 ‘고(高)가치 임무’에 투입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미군 전투기의 평시 임무는 대개 중동, 아프리카 지역 테러조직이나 반군 거점에 폭탄 몇 발을 떨어뜨리고 복귀하는 정도에 그친다. 미·중 패권 경쟁이 전면전으로 비화하거나 미군이 직접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해 러시아와 교전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저강도 임무에 F-22, F-35 같은 스텔스 전투기나 현재 개발 중인 6세대 전투기를 투입하는 것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르는 격이다. 찰스 브라운 미 공군참모총장도 지난해 안보 분야 세미나에서 “페라리는 주말에나 타는 것이다. 우리는 마트에 갈 때 슈퍼카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 공군에 고가의 최첨단 기체보다는 더 많은 4.5세대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쓰는 미군조차 이러할진대 다른 나라 사정은 오죽할까.
록히드마틴 F-16V 생산량 월 4대
미국 록히드마틴의 F-16V. [뉴시스]
최근 미국 록히드마틴의 F-16V를 없어서 못 파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비교적 ‘가성비’ 좋다는 F-16V의 대당 가격도 8000만 달러에 육박하고 비행시간당 유지비는 2만 달러(약 2600만 원)를 넘어선 실정이다. 몰려드는 주문 때문에 지금 계약해도 빨라야 4~5년 후에나 기체를 인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 달에 최대 4대 수준인 록히드마틴 그린빌 공장의 F-16V 생산 능력이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다. 2018년 F-16V 14대를 주문한 슬로바키아는 당초 록히드마틴 측으로부터 “2022년 초도 물량 출고가 가능하다”고 안내 받았으나 최근 “내년 하반기에나 출고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2019년 25대를 발주한 모로코는 2027년, 같은 해 16대를 발주한 바레인은 2024년 이후 출고 예정이라고 통보받았다. 2020년 66대를 계약한 대만도 2023년 하반기로 예정됐던 최초 생산분 2대의 출고가 미뤄져 속을 썩고 있다. 대만과 비슷한 시기에 8대를 주문한 불가리아는 2027년에야 F-16V를 받을 예정이다.
유럽제 전투기들의 납기 지연은 더 심각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7년 웃돈을 주고 유로파이터 타이푼 72대를 주문했지만 모두 인수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다. 오만은 2013년 계약한 12대를 2019년에야 모두 인도 받았다. 쿠웨이트는 2015년 계약한 28대 가운데 1대를 6년 만인 지난해 연말에 인수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유럽제 전투기 프랑스 라팔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집트는 라팔 24대를 모두 인도 받는 데 6년, 카타르는 36대를 다 받기까지 8년이 걸렸다.
우크라이나 전황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동유럽 국가들 처지에선 미국이나 유럽제 무기 도입으로는 안보 위기를 타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순간에 폴란드가 포착한 것이 한국 FA-50이었다. FA-50은 당장 전투기가 필요하면서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동유럽 국가들에 그야말로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최단 기간에 납품이 가능하면서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도 탁월했기 때문이다. 최근 폴란드 언론은 “F-35, F-16을 운용하거나 운용할 계획이 있는 나라, 혹은 비무장 훈련기에 지나친 돈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나라가 FA-50을 주목하고 있다”고 유럽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FA-50 도입 후보국으로 슬로바키아·불가리아·크로아티아·루마니아·오스트리아·스위스·핀란드·포르투갈·세르비아 등이 추가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동유럽 항공 전력 빈틈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 공동개발한 유로파이터 타이푼. [뉴시스]
불가리아 역시 전략 퇴역 예정인 MIG-29 전투기 11대와 Su-25 8대, L-39 6대를 대체할 공격기 겸 고등훈련기가 필요하다. 중고 라팔 12대를 구매했지만 유지비 부담에 경량형 전투기 겸 훈련기 도입을 추진 중인 크로아티아, F-35A와 동시에 보조 기체 도입을 원하는 루마니아도 FA-50에 관심을 보인다. 오스트리아는 유로파이터 타이푼 12대를 도입했지만 임무 장비 탑재가 불가능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해당 기체를 중고로 매각하거나 폐기한 후 운용할 염가형 전투기를 찾고 있어 FA-50의 잠재적 고객으로 분류된다. 스위스와 핀란드 역시 전투공중초계와 근접항공지원, 전술훈련입문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FA-50에 관심을 갖고 있다.
뛰어난 경쟁 기종들을 압도할 FA-50의 ‘스펙’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폴란드 국방부의 평가에 따르면 FA-50은 F-16과 호환성이 높아 조종사의 기종 전환이 쉬운 편이다. 획득비용은 다른 4.5세대 전투기의 절반 수준인 6200만 달러(약 811억 원), 시간당 유지비용은 30% 정도인 시간당 3500달러(약 458만 원)에 불과해 경제성이 우수하다. 그럼에도 성능 개량을 통해 고성능 능동형위상배열레이더(AESA)와 전자전 장비, 다양한 정밀 유도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초음속 비행 능력을 갖춘 덕에 동급의 경량 전투기 가운데 공중 기동성이 가장 우수하다. FA-50은 F-16이나 라팔, 유로파이터 타이푼보다 덩치가 작고 구조 설계도 단순하다. 이에 따라 생산성이 뛰어나 폴란드는 2024년까지 48대 물량을 전부 납품 받을 예정이다. 앞서 짚은 것처럼 주머니는 얇지만 당장 고성능 전투기가 필요한 나라 입장에선 FA-50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4개 대륙 전진 기지로 ‘규모 경제’ 실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록히드마틴 그린빌 공장에서 군용기를 조립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록히드마틴]
이처럼 FA-50 계열의 미군 채용이 현실화하면 ‘규모 경제’가 실현될 전망이다. 저렴한 획득·유지비용의 이점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폴란드 수출은 FA-50 비상의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개발한 FA-50이 유럽 생산 거점(폴란드)과 미주 지역 생산 거점(미국 록히드마틴), 아프리카 내 면허생산 거점(이집트)을 갖추면 4개 대륙에 전진 기지를 보유한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 지금 같은 훈풍이 계속돼 FA-50이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퀀텀점프를 견인하는 기념비적 기종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