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동쪽이 위인 지도(East-Up Map)’. 한반도가 세계 중심이 되는 ‘거꾸로 지도’다. 동아DB
최근 해양과 맞닿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한반도 거꾸로 지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주한미군 홈페이지에 ‘동쪽이 위인 지도(East-Up Map)’를 게시한 것도 한 사례다.
일본 좌청룡, 중국 우백호
이 지도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일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인데, 대만과 필리핀이 지도 오른편에 있다. 주한미군은 브런슨 사령관 지시에 따라 이 지도를 내부 교육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브런슨 사령관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반도는 오랫동안 전방에 위치한 외곽 거점처럼 인식됐지만 (한반도 거꾸로 지도로) 관점을 바꾸면 전략적 중심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의 지리적 위치는 북한, 중국, 러시아에 이르는 여러 경쟁 축에 동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독특한 이점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흥미롭게도 주한미군이 제작한 거꾸로 지도는 한반도가 풍수적으로 동아시아 최고 명당임을 보여준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을 기준으로 삼으면 일본의 본섬 4개는 한반도 왼쪽을 활처럼 감싸는 좌청룡(左靑龍) 모습이다. 한반도 오른쪽에 광활하게 펼쳐진 중국 동남부 지역은 기세등등한 우백호(右白虎) 형상을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뒤쪽의 중국 북부와 러시아는 한반도의 든든한 배후로서 북현무(北玄武), 즉 주산(主山) 구실을 한다. 주산이 튼튼하니 한반도가 외세에 쉽게 꺾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남해 건너 대만은 안산(案山)이 되고, 더 멀리 건너다보이는 필리핀은 조산(朝山)이 된다. 풍수에서 남주작(南朱雀)에 해당하는 안산과 조산은 주산에서 뻗쳐 내려온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외곽에서 불어오는 살기를 정화하는 구실을 한다.
풍수에서 안산과 조산은 주인(명당)을 보좌하고 주인을 향해 예를 갖추는 등 복종하는 형세여야 길하다고 본다. 특히 안산은 모양이 단정하고 안정적인 생김새여야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다. 이런 점에서 안산에 해당하는 대만이 지정학적으로 평화로운 상태일 때 한반도에 도움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지도는 또한 한반도가 지상 최고 자미원(紫微垣) 명당임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자미원은 하늘 별자리를 일정 기준에 따라 구획한 동양 천문도로, 북극성을 포함한 작은곰자리, 큰곰자리, 용자리 등 별무리를 가리킨다. 바로 이곳에서 하늘 최고 신인 천제(天帝)와 그 가족, 신하 등 하늘신들이 살고 있어 ‘우주 최고 명당터’로 설정한 것이다.

도선국사가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전남 화순 운주사. GETTYIMAGES
태평양에 펼쳐진 자미원 명당
하늘의 자미원 명당을 보면 일정 법칙이 있다. 명당 중심에 해당하는 북극성 일대가 동서남북 별들에 둘러싸여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다. 또 방위상 해좌사향(亥坐巳向: 24방위 중 하나인 ‘해’ 방위에 앉아서 ‘사’ 방위를 바라봄)을 하고 있다. 한반도 거꾸로 지도가 이와 비슷하다. 이 지도를 보면 한반도는 사방의 산과 땅(하늘의 별에 해당)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안산에 해당하는 대만을 바라보는 쪽으로 배치된 한반도 자체가 해좌사향이라는 방향 축(軸)을 취한다.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은 저서 ‘성호사설’에서 우리나라가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하고 있다는 풍수론을 소개한 바 있다. 하늘과 땅은 서로 교감한다는 천지감응(天地感應) 원리에 따라 지상에 구현된 자미원이 바로 한반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편 브런슨 사령관은 거꾸로 지도를 보면 한반도가 거대한 불침 항공모함 같다고도 했다. 이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표현이지만, 한반도에서 배 모양을 떠올린 사람이 그가 처음은 아니다. 우리나라 풍수의 비조(鼻祖)로 꼽히는 도선국사는 한반도를 떠다니는 배 모양에 비유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지형이 행주(行舟)와 같다. 태백산과 금강산이 뱃머리이고, 영암 월출산과 영주(한라산)는 배의 꼬리에 해당한다. 부안 변산은 배의 방향키이고, 영남 지리산은 배의 노(삿대)에 해당하며, 능주(화순) 운주사는 배의 복부(뱃구레)에 해당한다.“(‘조선사찰사료’ 중 ’도선국사실록’에서 인용)
도선국사가 우리나라를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한 것은 지도를 거꾸로 봐야 실감이 난다. 한반도가 대양을 향해 뻗어나가는 배처럼 보인다. 도선국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배(‘한국호’)가 잘 항해하도록 비보(裨補) 장치를 해놓았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정조대왕함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해군 제공
만국문명의 중심이 될 行舟
도선국사는 한반도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이라 배가 전복되지 않고 잘 항해하려면 동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서쪽, 즉 배의 복부에 해당하는 운주사 골짜기에 천불천탑을 쌓아 무게중심을 맞췄다는 것이다. 조선 성종 때인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 좌우 산 협곡에 석불, 석탑이 각 1000기씩 있다고 기록돼 있다. 도선국사의 비보 얘기를 마냥 전설로만 치부할 일은 아닌 것 같다.한반도를 배에 비유해 미래를 예언한 시도 있다. 19세기 말 제작된 ‘동학가사’에 실린 ‘남조선뱃노래’의 가사다. 태평양 너른 바다에 두둥실 뜬 남조선 배(미래 한국을 가리킴)가 온갖 풍파를 겪은 뒤 결국에는 만국문명(萬國文明) 중심지로 우뚝 서 지구촌을 이끌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간 한반도는 자미원, 행주형 등 동아시아 최고 명당으로 손꼽히면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특히 해양을 중시하던 고대 삼국이나 고려와 달리 고립주의를 택한 조선은 외세에 국토를 침탈당하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이제 해양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배에 해당하는 한반도가 주목받는 세상이 바짝 다가온 듯하다. 마침 정부도 해수부가 이전한 부산을 북극항로 전초 기지이자 해양강국 중심지로 삼겠다고 선포했다. 이는 지구촌 해양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한반도 행주형 명당이 발복을 맞을 때가 왔다는 뜻일 것이다. 2026년을 맞이한 한반도에 대한 덕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