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 ‘햄릿’.
올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연극올림픽(Theatre Olympics)’은 연출가와 극작가로 구성된 13인의 국제위원이 이끄는 범국제적인 행사다. 1995년 그리스에서 시작돼 일본, 러시아, 터키를 거쳐 국내에 상륙했다. 5회째를 맞이한 이번 축제의 주제는 ‘사랑’과 ‘휴머니즘’. 그리고 프로그램의 경향은 텍스트를 ‘재현’하는 작품보다, 이를 창조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한 ‘포스트드라마’적인 작품과 매체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퍼포먼스를 지향한다. 이는 동시대 공연예술의 패러다임을 반영한 것이다.
개막작인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는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을 이미지 연극의 대가인 로버트 윌슨이 재구성하고 직접 출연한 작품이다. 시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인물의 내면과 정서를 묘사했다. ‘바보각시’는 한국의 대표 연출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윤택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의 고대 설화를 소재로 현대사회의 이면을 조명했는데 일종의 ‘넋굿’을 연상케 하는 한판 놀이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배우 트레이닝 메소드’로 잘 알려진 스즈키 다다시의 ‘디오니소스’는 에우리피데스의 고대 그리스 비극과 일본의 전통적인 공연 양식을 일부 결합한 무대를 선보였는데, 절제된 움직임 속에 거대한 에너지를 품은 배우들의 연기로 좌중을 압도했다. 독일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햄릿’은 아비뇽 페스티벌에서도 각광을 받은 작품으로, 원작의 텍스트를 살리면서도 상호 소통하는 영상과 사회자 등의 장치를 활용해 작품을 새롭게 연출했다.
그런가 하면 10월과 11월에 공연할 작품 중 이비차 불랸이 연출한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 하이너 뮐러의 텍스트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 작품은 작은 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둥근 무대에서 끊임없이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잔혹하면서도 방탕한 느낌을 강조하는데, 이는 폭력의 역사를 담고 있는 하나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루지아의 리반 출라제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인형극으로 연출한 것으로 정교한 인형술과 조명 등의 비주얼은 원작이 담고 있는 낭만주의적이고 환상적인 부분을 잘 살려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원작 사무엘 베케트), 오태석 연출의 ‘분장실’ ‘춘풍의 처’ 등 국내 원로 연출가들의 작품성 있는 연극도 만날 수 있다. 극단 노뜰의 ‘보이체크’(원영오 연출), 백남영 연출의 ‘반호프’ 등도 무대에 오른다. 11월 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아르코예술극장, 국립극장,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 등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