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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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이기는 ‘협상의 기술’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5-10-17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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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우지 않고 이기는 ‘협상의 기술’
    외교는 협상이고, 협상은 곧 담판이다.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는 협상을 할 때 단 한 번 최선의 양보를 하고 그 이후부터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고 한다. 서양의 점차적인 양보와는 완전히 달랐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도 외교 협상을 할 때, 여러 번 저우언라이의 방법을 사용했고 모두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단, 저우언라이 협상기술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예외는 곧 상대방에게 양보의 여지가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 저우언라이는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판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수많은 타협과 설득, 협상을 통해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담판’은 손자병법을 재해석, 현대인에게 응용 가능한 39가지 협상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리우삐롱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원하는 협상과 전략 전술을 꿰고 있는 전문가다. 10년 넘게 CEO 및 임원, 샐러리맨들을 상대로 한 협상 강의와 중요한 협상 테이블에서 중재자 구실을 했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써내려갔다.

    먼저 협상은 정직하면 안 된다. 속임수가 필요하다. 협상을 할 때 전술상 목표는 B안에 두고 A안을 얻으려는 척하여, 상대방이 A안에 대해 골머리 아프게 싸우도록 만든다. 결국 A안을 포기하는 척하고 B안을 쟁취한다. 이것이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 전법이다. 즉 가까운 것을 목표로 정했으면서 먼 것을 목표로 정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협상에서 가장 금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는 자만이다. 자만하면 신중하게 처신하기 어렵다. 경솔하게 행동하면 실수가 뒤따르게 마련이어서 쉽게 자신의 본심을 들키거나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자만은 가장 큰 내부의 적인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위기로 한반도가 시끄러웠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한다. 켈리는 북한에 “핵무기를 개발했느냐”고 물었는데, 북한의 대답은 뜻밖에도 “개발했소”였다. 미국은 당황했고, 북한 핵무기 위기를 해결할 뾰족한 대책이 없었기에 강경파와 온건파의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에도 북한은 영어와 한국어를 ‘따로 또 같이’ 표현하면서 모순된 정보를 전달하는 전술을 폈다. 북한의 이러한 전술은 손자가 ‘허실편’에서 말한 것과 꼭 맞아떨어진다. ‘적이 급히 추격하여 출격을 할 수 없는 곳으로 진격하라. 적의 의표를 찔러 적이 예측하지 못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대방을 교란하고, 보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걱정하게 해 협상의 구체적인 안을 끄집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협상 상대를 코너에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자칫 판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양보할 이유와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특히 밀고 당기는 노사협상에서는 더욱더 필요하다.

    조직과 협상은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조직이 든든하면 급진파와, 조직이 부실하면 온건파와 협상해야 한다. 조직이 크다면 절대로 온건파를 찾아가서는 안 된다. ‘온건파는 상대를 이롭게 하지 않느냐’는 급진파의 의심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느슨하다는 것은 압력을 행사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협상할 때도 진퇴의 시기를 알아야 한다. 협상의 결과는 혼자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또 협상의 결과는 이기거나 비기거나, 지거나 결렬되는 것 중 하나다. 어떻게 순위를 매겨야 하는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특히 지는 것과 결렬되는 것 사이의 선택은 더 어렵다. 그래서 담판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거란족을 상대로 담판을 벌인 서희 장군은 싸우지 않고 승리를 얻어낸 영웅으로 남은 반면, 사전 준비와 전략 전술 없이 추진한 ‘한일 어업협정’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21세기 협상 전문가는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리우삐롱 지음/ 박종연 옮김/ 이코북 펴냄/ 384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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