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법에 따라 사형수를 처형하는 것은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만약 사형당한 죄수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경우였다면? 아니면 사형당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라면? 범위를 좀더 확대시켜, 설령 그들이 사형당할 짓을 했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공개적으로 죽이는 것은 또 다른 살인이 아닐까?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대부분 여기에서 출발한다. 사형제도에 분명한 반대 의견을 개진한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데이비드 게일(원제: The Life of David Gale)’ 역시 비슷하다.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재일교포 차별 문제를 사형제도를 통해 보여준 ‘교사형’,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결코 사형에 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데드 맨 워킹’, 사형당하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선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그린 마일’, 사형수의 부인과 집행관의 사랑을 통해 사형제도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낸 ‘몬스터 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데이비드 게일’은 이전의 영화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동료 교수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복역중인 사형수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 분)을 잡지사 기자 빗시 블룸(케이트 윈슬렛 분)이 인터뷰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6년 동안 복역하면서 그 누구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게일이 형 집행 4일 전에 유독 블룸을 지목해서 단 3일 동안만 인터뷰를 허락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게일이 열렬한 사형제도 폐지론자였다는 점이다. 이제 게일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 대한 진실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잘나가던 대학교수였던 그는 한 여학생의 농간에 넘어가 강간죄로 해고당하고 가족들한테도 버림을 받았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지만 절친했던 동료 교수 콘스탄스(로라 리니 분)의 도움으로 건강한 삶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콘스탄스를 강간 살해한 범인으로 수감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영화가 흔히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현재에서 게일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블룸의 노력과 진실을 보여주는 게일의 회상 장면이 플래시백을 통해 전개된다.
그 사이에 게일의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노력들도 보인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한 어조로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내던 사람이었다. 비록 지금은 사형수가 되어 사형제도의 폐지를 통해 자신의 목숨을 구걸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지만. 물론 그는 자신이 절대 콘스탄스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콘스탄스를 죽인 진범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데이비드에게 누명을 씌운 것일까? 어느 순간 영화는 음모가 도사린 정치영화로 변해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정치적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철저하게 미스터리 수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정통적인 방식으로 강직하게 다루길 바랐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장르영화라는 점에서는 대중적인 흡인력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두 개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알란 파커 감독은 대중적인 호소력을 선택했으며, 그걸 통해서 우회적으로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역설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여느 미스터리 스릴러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마지막 반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가 ‘반전의 제왕’이 되기에는 묘미가 약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극적인 반전이 아니라는 말이다. 장르의 변주보다는 주제의 호소력에 눌려버린 감이 없지 않다. 알란 파커 감독의 이번 영화도 걸작의 대열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단상 하나. 사형제도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사형대에 바치는 행위를 단지 살신성인으로만 볼 수 있을까?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가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한 것인데, 스스로를 죽이는 것 역시 살인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형제도를 폐지시킨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 게 아닐까? 대다수 사람들은 무죄인 그가 억울하게 사형당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재일교포 차별 문제를 사형제도를 통해 보여준 ‘교사형’,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결코 사형에 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데드 맨 워킹’, 사형당하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선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그린 마일’, 사형수의 부인과 집행관의 사랑을 통해 사형제도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낸 ‘몬스터 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데이비드 게일’은 이전의 영화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동료 교수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복역중인 사형수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 분)을 잡지사 기자 빗시 블룸(케이트 윈슬렛 분)이 인터뷰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6년 동안 복역하면서 그 누구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게일이 형 집행 4일 전에 유독 블룸을 지목해서 단 3일 동안만 인터뷰를 허락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게일이 열렬한 사형제도 폐지론자였다는 점이다. 이제 게일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 대한 진실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잘나가던 대학교수였던 그는 한 여학생의 농간에 넘어가 강간죄로 해고당하고 가족들한테도 버림을 받았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지만 절친했던 동료 교수 콘스탄스(로라 리니 분)의 도움으로 건강한 삶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콘스탄스를 강간 살해한 범인으로 수감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영화가 흔히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현재에서 게일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블룸의 노력과 진실을 보여주는 게일의 회상 장면이 플래시백을 통해 전개된다.
그 사이에 게일의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노력들도 보인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한 어조로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내던 사람이었다. 비록 지금은 사형수가 되어 사형제도의 폐지를 통해 자신의 목숨을 구걸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지만. 물론 그는 자신이 절대 콘스탄스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콘스탄스를 죽인 진범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데이비드에게 누명을 씌운 것일까? 어느 순간 영화는 음모가 도사린 정치영화로 변해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정치적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철저하게 미스터리 수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정통적인 방식으로 강직하게 다루길 바랐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장르영화라는 점에서는 대중적인 흡인력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두 개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알란 파커 감독은 대중적인 호소력을 선택했으며, 그걸 통해서 우회적으로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역설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여느 미스터리 스릴러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마지막 반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가 ‘반전의 제왕’이 되기에는 묘미가 약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극적인 반전이 아니라는 말이다. 장르의 변주보다는 주제의 호소력에 눌려버린 감이 없지 않다. 알란 파커 감독의 이번 영화도 걸작의 대열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단상 하나. 사형제도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사형대에 바치는 행위를 단지 살신성인으로만 볼 수 있을까?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가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한 것인데, 스스로를 죽이는 것 역시 살인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형제도를 폐지시킨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 게 아닐까? 대다수 사람들은 무죄인 그가 억울하게 사형당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