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3월 31일(현지 시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제니차에서 열린 북중미월드컵 유럽 플레이오프 A조 결승전에서 보스니아에 패했다. 뉴시스
이탈리아는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4번이나 들어 올린 전통 강자였지만 최근 월드컵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들의 마지막 월드컵은 2014년이었다. 1934년부터 2014년까지 80년 동안 1958년 스웨덴 대회를 빼고 본선 진출을 놓치지 않았던 강팀의 위기다. 이탈리아 축구는 1990년대 르네상스를 맞았던 세리에A가 점차 퇴조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냉정한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2006년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독이 된 2006년 월드컵 우승

보스니아전 패배로 월드컵 진출이 좌절되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사임한 젠나로 가투소. 뉴시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이내 경쟁력을 잃었고 2010년과 2014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2014년 실패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유로 2012에서 멋진 승부를 펼치며 준우승을 차지한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이 이끈 국가대표팀은 내용과 결과를 모두 잡으며 2010년의 부진을 만회할 것 같았지만 코스타리카와 우루과이에 맥없이 무너졌다.
2018년 월드컵 예선부터는 하늘도 이탈리아의 월드컵 진출을 외면하는 모양새였다. 당시 예선에서 이탈리아는 같은 조인 스페인 탓에 플레이오프로 밀렸고, 거기서는 스웨덴에 패했다. 2022년 월드컵 도전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유로 2020(코로나19 팬데믹 탓에 2021년 여름 개최)에서 우승한 유럽 챔피언 이탈리아가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2018년 월드컵 진출 실패 후 마지막 보루로 이탈리아 사령탑에 임명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국가대표팀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프로팀 같은 조직력을 갖추면서도 선수들 장점을 극대화하는 팀으로 말이다. 그 덕에 선수 구성에 다소 변화가 있어도 시스템과 전술 움직임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탈리아가 유로 2020 우승을 차지한 것은 만치니 감독의 지도력 덕이었다. 2021년 리투아니아와의 월드컵 예선까지 이탈리아의 A매치 무패 기록은 37경기로 늘어났고 이제 월드컵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유로 우승을 정점으로 이탈리아 축구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21년 유로 우승 이후 월드컵 예선 성적은 5경기 1승 4무에 그쳤다. 같은 해 9월에는 확실한 1승 상대로 여겼던 불가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비겼고 이어진 스위스와의 1차전도 무승부로 끝났다. 10월 스페인과의 네이션스 리그에선 길었던 A매치 무패 행진이 끝난 데다, 한 달 후 1위 자리를 다투던 스위스와 다시 무승부를 거뒀고 북아일랜드 원정 경기도 비겼다. 결국 이탈리아는 승점 2점 차로 월드컵 본선 직행에 실패했다. 마지막 기회를 엿보던 이탈리아는 북마케도니아에도 패함으로써 플레이오프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비극을 맞았다.
당시 이탈리아는 월드컵 진출 실패에도 만치니 감독을 신뢰하며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그를 대신할 신선한 인물이 없으니 유로 우승 감독인 그를 믿어보자는 여론이 앞섰다. 그런데 만치니 감독은 2023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 사령탑 제의를 받고 돌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떠나버렸다. “조국을 버리고 돈을 택했다”며 이탈리아 국민의 공분이 이어졌다. SSC 나폴리를 33년 만에 리그에서 우승시킨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이 뒤를 이었지만 대표팀과는 어울리지 않는 몽상가와도 같은 스타일로 연일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도 대안이 없던 이탈리아는 스팔레티 감독을 교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북중미월드컵 예선에선 노르웨이와 같은 조에 속했다. 최근 전력이 강해진 노르웨이를 만나 월드컵 직행이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지난해 6월 노르웨이와의 첫 경기에서 0-3으로 완패하며 전력 차를 실감한 이탈리아는 부랴부랴 스팔레티 감독을 경질하고 대안 마련에 나섰다. 마땅한 후보군을 추리지 못하는 사이 슬그머니 만치니 감독이 복귀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탈리아축구협회는 지난해 6월 젠나로 가투소 감독을 선임하며 월드컵 진출을 자신했다. 하지만 현지 여론은 “월드컵 3회 연속 진출 실패가 가까워졌다”는 분위기였다. 가투소는 AC 밀란, AC 피사, 나폴리, 발렌시아 CF,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등 팀을 거치면서 감독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또다시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미끄러져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12년의 기다림 끝에 “아이들에게 이탈리아의 월드컵을 보여주겠다”던 선수들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탈리아축구협회는 이번에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듯하다. 2018년부터 자리를 지킨 가브리엘레 그라비나 회장부터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세리에A 구단 회장들과 이탈리아 정부, 의회까지 들고 일어나자 그제야 직을 내려놨다. 패장이 된 가투소 감독도 사임했다. 이제 이탈리아 축구는 마지막 변화 기회를 맞았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리그, 세계 추세와 따로 가는 유소년 육성 방향, 젊은 감독과 선수들에게 꽉 닫힌 문호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