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2

..

미움에 맞서는 얄미움, 르세라핌 ‘스파게티’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5-11-03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곡 ‘스파게티’를 발표한 걸그룹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신곡 ‘스파게티’를 발표한 걸그룹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르세라핌(LE SSERAFIM) 노래를 듣다가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누가 이 사람들을 그렇게나 미워하는 거지?” 다른 아티스트가 아닌 르세라핌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건 그들이 꾸준히 드러내는 주제와 태도 때문이다. 2022년 데뷔 이래 르세라핌의 노래는 늘 자신들이 미움과 질시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펼쳐졌다. 최근 발표한 신곡 ‘스파게티(SPAGHETTI(feat. j-hope of BTS))’도 마찬가지다. 욕하는 것 자체가 소비 방식이니 ‘나’를 그냥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표현 방식도 강렬하다. “말로만 헤이트 잇(hate it)” “오늘도 제 발로 달려온 건 너잖아” “씹어보셔 맛이 좋아” 같은 가사는 뻔뻔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제목이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이빨 사이 낀 스파게티”라는 대목에서는 미운 사람을 거슬려 하는 심리를 지저분하고 그로테스크한 심상과 연결 짓는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지저분한 합성 이미지가 눈에 띈다. 특히 붉은 토마토소스가 가득한, 아마도 맛없게 불었을 것만 같은 스파게티를 중심으로 한 장면들이 꽤나 자극적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이를 ‘이빨’이라고 조금은 저속하게 지칭하고, 노래 중간에 욕설과 비속어를 드문드문 섞은 것도 인상적이다. ‘삼켜버리라’는 뜻의 “잇 잇 업(Eat it up)”이나, 이를 잘라내 “이-에-아”로 반복하는 대목도 얄밉기 그지없다. 정말이지 얄미운 노래를 르세라핌만큼 해내는 그룹도 없다.

    비호감 무릅쓰는 주제의 자극성

    노래는 매력적이다. 르세라핌 멤버들은 도입부부터 거만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후렴으로 향하는 멜로디는 산뜻하고 심플해 좋은 전환을 이룬다. 후렴은 보기 드물 정도로 시원한 타격감을 지닌 비트 위에서 거칠게 비뚤어진 에너지를 매우 좋은 호흡으로 풀어낸다. “사이 낀” “포기해” 같은 대목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발음 연출이 맛깔스럽고, “Eat it up” 반복도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는다. BTS(방탄소년단) 제이홉의 랩은 1절과 2절 사이에서 들을 수 있는데, 분량이 길고 표현도 다이내믹해 상당한 즐거움을 준다. 

    정말이지, 얄미운 노래를 르세라핌만큼 해내는 그룹은 없다. 그리고 비호감을 무릅쓰는 주제의 자극성은 당당한 패기로 노래를 완성한다. 바로 이것이 르세라핌이 ‘미움받는다’는 테마를 지속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미움받고 있다’는 전제하에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표현들로 번뜩이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팝적인 간결함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미움에 맞서는 얄미움 같은 것을 발휘할 수 있다. 

    어차피 여성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미움 앞에 설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 것치고도 과감하게 느껴지는 ‘스파게티’는 르세라핌의 가능성을 대폭 확장하는 계기가 될 만한 작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