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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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베스트셀링 카의 전기차 변신

[조진혁의 Car Talk] 기아 영국법인, 1996년형 프라이드를 전기차로 선보여

  • 조진혁 자유기고가

    입력2024-11-0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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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얇게 썬 냉동 삼겹살을 먹으며 1990년대를 추억하는 게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먹거리만이 아니다. 듣고 보고 즐기는 많은 소비재가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는 조금 다르다. 자동차 산업에서 언급하는 과거 향수는 밀레니엄 시대나 1990년대가 아닌, 그보다 훨씬 오래된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최근까지는 1980년대 정도일 것이다. 자동차는 다른 소비재에 비해 교체 시기가 긴 만큼 유행 호흡도 길다. 중요한 것은 각 시대를 상징하는 자동차 디자인이 있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는 클래식카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복고 열풍이 그렇듯, 클래식카를 재해석한 콘셉트카가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몇 해 전 현대자동차가 ‘포니’ EV 콘셉트카를 공개하며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70~1980년대 포니 초기 모델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전기차를 설계한 것인데, 옛 디자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포니’ 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브랜드가 소비자의 향수를 공략하는 것은 꽤 영리한 마케팅 전략이다. 자동차 팬에게 자동차는 첨단기술뿐 아니라, 감성적인 부문도 크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감성을 잘 다루는 브랜드는 긍정적 이미지를, 나아가 팬들까지도 모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현대자동차의 마케팅은 성공했으며, 이후 ‘각그랜저’ 등 베스트셀링 모델을 시승하는 프로그램은 물론, 재해석한 신형 모델을 내놓는 등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르노가 1960년대 베스트셀링 모델인 르노 ‘4L’ 해치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순수 전기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4 E-Tech’. [르노 제공]

    르노가 1960년대 베스트셀링 모델인 르노 ‘4L’ 해치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순수 전기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4 E-Tech’. [르노 제공]

    1996년형 프라이드와 외관, 실내가 거의 흡사한 기아 프라이드 EV. [기아 제공]

    1996년형 프라이드와 외관, 실내가 거의 흡사한 기아 프라이드 EV. [기아 제공]

    로노 해치백 전기차 변신

    최근 기아 영국법인이 기아의 첫 번째 영국 판매 모델인 프라이드 해치백을 전기차로 새롭게 선보였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깍두기’로 불린 1996년형 프라이드다. 공개된 프라이드 EV는 과거 프라이드와 비교할 때 외관, 실내가 거의 흡사하다. 기존 플라스틱 범퍼, 네모 난 헤드램프, 12인치 휠 등 옛 요소를 그대로 적용했다. 영국에서는 오래된 내연기관 차량을 EV로 전환하는 ‘EV 컨버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내연기관 차량의 엔진을 뜯어낸 뒤 EV 패키지를 장착해주는 업체도 흔하다. 오랜 자동차 문화를 바탕으로 낡은 차를 정비해서 운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그동안 많은 클래식카가 EV 버전으로 소개됐지만, 기아 프라이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기아 프라이드 전동화 프로젝트는 기아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라고 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르노 콘셉트카

    옛 모델에서 전동화의 미래를 찾는 브랜드로는 르노가 대표적이다. 2021년 르노는 과거 인기 모델이던 오리지널 R5를 참고해 만든 전기차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R5는 1970~1980년대 유럽에서 많은 판매고를 올린 소형차다. 단순한 형태지만 실용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디자인을 갖췄다. 최근 로노는 차량 2대를 공개했는데 우선 르노 ‘4 E-Tech’는 1960년대 르노 베스트셀링 모델인 르노 ‘4L’ 해치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순수 전기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다. 1960~1970년대 프랑스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소형차로,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아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다. 르노 4 E-Tech는 4L 디자인의 많은 요소를 채택했다. 그릴과 헤드램프를 둘러싼 프레임이나, 동그란 헤드램프, 측면 몰딩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4L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잘 가져왔으나 가장 중요한 실루엣은 완벽하게 가져오지 못했다. 옛 모델의 향수를 되살리기보다 현대적인 터치를 가미하는 데 더 힘을 쓴 모습이다.

    양산 차는 현대적이지만, 콘셉트카는 과거에 충실하다. 르노가 ‘2024 파리모터쇼’에서 공개한 ‘R17 일렉트릭 레스토모드’(R17 레스토모드) 콘셉트카는 르노가 1970년대 생산한 스포츠카 ‘르노 17’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기차다. 프랑스 산업디자이너 오라 이토(Ora Ito)와 협업했다. 기존 모델의 형태와 비율, 디자인 특징을 모두 재현해 클래식한 매력이 두드러진다. 또한 클래식한 디자인에 미래적 요소가 작지만 뚜렷하게 자리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대시보드와 센터 콘솔, 헤드램프, 리어램프 등 디지털화된 부품들만 교체하면서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1970년대 스타일의 콘솔 안에 넣어 과거와 현대가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다. 마치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 나오는 아날로그식 미래처럼 과거와 현재가 온화하게 공존한다.

    오늘날 콘셉트카가 클래식카 디자인을 참고하는 것은 클래식카의 매력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간결한 선, 대칭적 형태, 기능적이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대단히 복잡하거나 전위적이지 않은 기본 요소들이다. 또한 소비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 감성을 매만진다는 점, 친숙함과 대비돼 첨단 기능이 더 부각된다는 점, 과거 성공 요인을 재활용해 위험 부담을 줄인다는 점 등 미래 지향적인 콘셉트카가 과거에서 답을 찾는 이유는 이토록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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