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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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화살받이’ 노릇 언제까지…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4-06-04 09: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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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머와 비방으로 불명예를 안고,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피해를 짊어지는 건 아티스트다. [GettyImages]

    루머와 비방으로 불명예를 안고,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피해를 짊어지는 건 아티스트다. [GettyImages]

     K팝 문화에서 특이한 것 중 하나는 아티스트 이름을 거론할 때 지극히 조심스럽다는 점이다. 팬들도 아티스트를 거론할 때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 아니어도 아티스트의 별명을 쓰거나 이름의 일부 철자를 바꿔 기입해 검색을 방해하는, 통칭 ‘서방’(서치 방지)을 흔히 한다. 나 역시 이 지면에서 ‘한 신인 보이그룹’ ‘인기 걸그룹의 특정 멤버’ 같은 형태로 다소간 익명화해 쓸 때가 있다. 이런 문화가 K팝 담론을 불투명하고 구전적 세계로 만든다는 불만을 가진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 달을 넘기고 있는 하이브-어도어 분쟁에서는 이 같은 조심성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하이브가 뉴진스보다 르세라핌을 먼저 데뷔시키면서 불화가 발생했다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발화가 그렇다. 그의 입장이 옳든 그르든 설명을 위해 언급할 필요가 있었던 대목이다. ‘모 걸그룹’이라고 에둘러 말한다 한들 사실 크게 의미는 없다. 게다가 여기서 르세라핌은 잘못한 일이 없고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팬들은 이를 “머리채 잡혔다”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실제로 르세라핌 멤버들에게 인신공격과 조롱이 쏟아졌다.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이라 한들 악플과 조롱이 ‘합당’하겠느냐마는, 잘못이 없음에도 욕을 먹는 건 한 편의 부조리극 같기만 하다. 그저 이름이 던져지면 비방이 발생한다. 이 정도로 어긋난 현상마저 발화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K팝 문화의 경험칙은 이 부조리극을 수없이 관람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사태로 입길에 오른 아티스트는 하나 둘이 아니다. 작업물의 유사성 논란으로 언급된 이가 있는가 하면, 특정인이 다른 대형 아티스트를 비하했다는 말 때문에 들어온 이도 있다. 유사종교 연루설 같은 루머가 나돌 때도 여러 아티스트가 호명됐다. 그러나 꼭 필요한 언급이든, 경솔한 발언이든, 여론전의 ‘방패막이’를 위한 발화든, 거짓말이든 결과에 큰 차이는 없다. 아티스트는 거론되면 비난받는다. 그것은 팬덤의 ‘참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타 아티스트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쌓는 이른바 ‘역바이럴’이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집중해야 할 아티스트 보호

    루머와 비방으로 불명예를 안는 건 아티스트다. 자신을 욕하고 있을지 모를 대중의 얼굴을 직접 대하면서 웃고 노래해야 하는 것도 아티스트다. 사태가 심각해져 스타의 ‘가치’가 훼손됐을 때 그 피해를 자신의 인생으로 짊어지게 되는 것 역시 아티스트다. 그리고 현재 가장 첨예하게 입길에 오르고 있는 걸그룹 세 팀은 모두 지금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며 팬과 대중을 직접 접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아티스트를 깎아내리고 조롱하기를 즐기는 대중의 행태가 개선될 수 있을까. 혹은 기업의 간판으로서 ‘화살받이’가 돼 감정노동을 하는 게 아티스트라는, 스타 시스템 자체의 근본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까. 어느 쪽 전망도 암담하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열쇠는 어쩔 수 없이 기획사에게 돌아간다. 이번 분쟁에 연루된 회사들이 입을 모으는 단 한 가지는 아티스트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대중과 팬덤은 그것이 빈말인지 아닌지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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