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오타쿠글라스’

2011년에 초연 봤다고? 걱정 마, 완전히 다르니까

뮤지컬 ‘광화문 연가’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8-12-17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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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기자의 ‘오타쿠글라스’

    ※관객이 공연장에서 작품과 배우를 자세히 보려고 ‘오페라글라스’를 쓰는 것처럼 공연 속 티끌만 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자 ‘오타쿠글라스’를 씁니다.

    [사진 제공 · CJ ENM]

    [사진 제공 · CJ ENM]

    ‘효도하고 싶지만 뮤지컬도 보고 싶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뮤덕’(뮤지컬 덕후)이라면 부모에게 본인의 취향을 강요하기보다 대중적이면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안전한’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뮤지컬의 참맛을 알려드리는 게 답이다. 

    본인이 20대나 30대 초반이라면 부모는 젊은 시절 가수 이문세와 고(故) 이영훈 작곡가가 빚어낸 명곡들의 세례를 흠뻑 받았을 것이다. 이영훈의 10주기인 2018년 다시 무대에 오른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온 가족이 함께 보고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 시기가 있었다. 가요계에서 노래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데 가사와 선율이 중요하지 않던 시기. 의미 없어 보이는 단어의 나열, 반복되는 리듬의 중첩으로 그저 정신없이 분위기를 띄우기에 급급하던 노래들이 인기를 끌 때도 있었다. 요사이 대중은 다시 마음을 두드리는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불후의 명곡’은 세월이 지나도 빛을 발한다. 이를테면 ‘사랑이 지나가면’이나 ‘옛사랑’ 같은.



    불후의 명곡을 뮤지컬로

    ‘광화문연가’는 이영훈의 명곡들을 토대로 만든 주크박스 창작 뮤지컬이다. 격변의 시기인 1980~90년대를 배경으로 관객에게 그 시절의 감성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세대 불문하고 누구나 들으면 흥얼댈 만한 이영훈의 곡들이 뮤지컬 넘버로 다시 태어났다. 작품 제목이기도 한 ‘광화문 연가’는 여름에서 겨울까지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담은 서정적인 가사와 가락이 인상적인 곡이다. 

    작품은 중년의 작곡가 ‘명우’가 죽음을 앞두고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기억 여행의 가이드를 맡은 건 인연을 관장하는 미스터리한 존재 ‘월하’. 명우는 그를 따라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첫사랑 ‘수아’를 만나고 추억의 장소들을 돌아본다. 

    이영훈은 1985년 이문세의 3집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통해 대중음악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 앨범은 150만 장 이상 팔리며 한국 가요계에서 최초 밀리언셀러 음반이 됐다. 이후 그는 이문세의 4집(‘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히트시키며 1987년 골든디스크어워즈 대상과 작곡가상을 수상했다. ‘광화문연가’에서 명우와 수아는 잠깐의 만남 후 이별했지만, 이영훈과 이문세는 1985년부터 2001년까지 16년간 8장의 정규 앨범을 만들며 가요계의 신화를 써내려갔다.

    여배우로 볼까, 남배우로 볼까

    [사진 제공 · CJ ENM]

    [사진 제공 · CJ ENM]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뮤지컬은 월하가 기형도의 대표작인 ‘빈 집’을 읊는 것으로 문을 열고 닫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기형도의 또 다른 시(‘질투는 나의 힘’ 중)처럼 사랑을 잃고 쓴 이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첫사랑의 설렘과 질투, 아픈 이별을 넘어 이제는 추억을 보듬는다. 

    2011년 초연을 봤거나 이번 시즌으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한다면 궁금증이 일 것이다. 도대체 월하는 누구일까. 삼신할머니처럼 짝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신적 존재인 월하노인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월하는 작품의 화자 구실을 하는데, 초연에는 없던 인물이다. 배우들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사람’이라기보다 ‘어떤 존재’다. 오랜만에 ‘광화문연가’ 공연장을 다시 찾았다면 완전히 달라진 구성과 넘버 덕에 새로운 작품을 보는 느낌이 들 것이다. 

    올해 초 이 작품은 혼성 캐스팅으로도 주목받았다. 지난 시즌 ‘어떤 역할은 어떤 성별의 배우가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제작진은 정성화(남)와 차지연(여)을 월하 역에 캐스팅했다. 팬들이라면 ‘아, 최소 두 번은 보라는 거군’이라며 제작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으리라. 월하와 등장인물들이 함께 하모니를 이루는 노래는 자연히 여자 배우인가, 남자 배우인가에 따라 편곡이나 느낌이 달라진다. 이번 시즌 월하는 구원영(여)과 김호영, 이석훈 등 총 3명. 이들은 극 전반을 이끌며 작품에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중년의 명우 역할은 안재욱, 이건명, 강필석이, 젊은 명우 역할은 정욱진과 이찬동이 맡았다. 명우의 첫사랑인 중년의 수아는 이은율과 임강희가, 젊은 수아 역은 린지와 이봄소리가 맡았다. 명우의 옆자리를 늘 지켜온 아내 시영 역은 정연, 장은아, 그들의 친구인 중곤 역은 오석원이 연기한다. 

    [사진 제공 · CJ ENM]

    [사진 제공 · CJ ENM]

    CJ ENM은 앞선 3주간 일부 회차의 커튼콜을 배우와 관객이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싱어롱(sing-along) 버전으로 선보였다. 12월 12일 공연이 마지막 싱어롱 커튼콜이었는데, 중년 관객들이 벌떡 일어나 배우들과 노래 부르며 리릭스틱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싱어롱 커튼콜 기간이 짧아 아쉽게 느껴졌다. 싱어롱 커튼콜 공연을 놓쳤다면 12월 18일부터 23일까지 공연을 노려보자. 이 기간 공연에 한해 커튼콜 때 촬영이 가능하다고 하니 배우들의 무대를 ‘내 폰 속에 저장’하고 싶다면 예매가 필수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삶과 사랑은 하늘의 구름과 같이 항상 흘러만 갑니다.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하지만 돌아보면 그사이 먼 곳으로 사라져가 없습니다. 항상 사랑하고 늘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이영훈의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글이다. 사랑과 효도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커튼콜 때 목석처럼 앉아 있는 부모의 손을 잡고 일어나 손뼉 치며 배우들과 함께 ‘붉은 노을’을 부르고 즐겨보자. 공연이 끝나면 “밥은 먹고 다니냐” “회사는 다닐 만하냐” 같은 뻔한 이야기 말고도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으로 시작해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다. “내 기억 속의 ‘빈 집’을 채워줘서 고마워”라는 명우의 대사, 당신은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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