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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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조선시대 초상화에 담긴 놀라운 피부의 비밀

  •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8-03-27 11: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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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이성낙 지음/ 눌와/ 224쪽/ 1만8000원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이성낙 지음/ 눌와/ 224쪽/ 1만8000원

    ‘그림1’과 ‘그림2’를 보자. 그림 속 인물은 동일인일까. 2000년대 초 이를 둘러싸고 미술사학계에서 논란이 일었다. 다수설은 ‘그림1’이 할아버지 이재(李縡 · 1680~1746)이고, ‘그림2’가 손자 이채(李采 · 1745~1820)라는 것이었다. ‘그림2’에는 주인공이 이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적혀 있지만 ‘그림1’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故) 오주석 미술사학자는 동일인이라고 확신했지만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아주대 의무부총장 등을 지낸 저명한 피부과 의사 이성낙 박사가 답을 줬다. 

    ‘그림3’과 ‘그림4’를 보자. 두 초상 모두 정확히 같은 부위에 검정콩 반쪽 크기의 납작한 점이 있다. 점은 유전되지 않는다. 또 왼쪽 눈꼬리를 보면 도톰한 지방종이 있는데 역시 유전되지 않는 희귀질환이라는 것이다. 이런 피부병변을 볼 때 ‘그림1’과 ‘그림2’는 이채라는 것이 이 박사의 결론이었다. 

    이 박사가 그림만 보고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 초상화가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르게 그리면 그건 다른 사람이다’라는 원칙 아래 그려졌기 때문이다. 초상화를 그릴 정도의 인물은 대부분 유력자임에도 얼굴 단점을 ‘뽀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린 것이다. 심지어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어진에도 오른쪽 눈썹 위에 작은 혹을 가감 없이 그려 넣었다. 

    저자인 이성낙 박사는 조선시대 초상화 519점 가운데 판독이 가능한 368점을 자세히 조사했다. 그 결과 268점에서 점, 검버섯, 천연두 흉터, 여드름 흉터, 백반증, 만성 간질환에 의한 흑색황달 등 20여 종의 피부병변을 발견했다. 이 책은 그중에서 대표적인 그림 18점을 소개하고 있다. 

    같은 동아시아지만 중국과 일본은 이토록 자세히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 대개 조상 숭배용이나 권력 과시용으로 그렸기에 단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같이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독보적인 조선시대 초상화를 저자는 ‘선비정신의 발로’라고 해석한다. 미화하지 않는 정직함, 얼굴에 담긴 정신까지 표현하려 한 올곧음 등이 이런 초상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초상화의 피부병변에 천착해왔지만 더 심화된 연구를 위해 70대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들어가 2014년 76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책에는 국보로 지정된 ‘윤두서 자화상’(1710)과 유럽에서 세밀한 초상화로 유명한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1500) 중 어느 것이 더 정교했는지를 털의 개수로 비교하는 등 흥미로운 내용이 여럿 들어 있다. 물론 윤두서 자화상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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