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트와이스가 최근 신곡 ‘SET ME FREE’를 선보였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위에서 트와이스는 숨 가쁘고 단단하다.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 버스(verse)가 당김음의 연속으로 아슬아슬하게 탄력적인 리듬을 구사하고, “No no no no…”로 정박에 시작하는 프리코러스(pre-chorus)에서 시간축이 뒤로 밀리며 감성적인 흐름이 되는 듯하더니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간다. “더는 잃을 것도 숨길 것도 없어” 대목은 조금 길어진 대화처럼, 혹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넘어간다는 듯 후렴을 불러온다. 뒷박에서 시작하는 후렴은 여전히 재찬 몸놀림이지만 매우 단호해진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Best of me”로 시작하는 포스트코러스(post-chorus)가 다시 못갖춘마디로 빠르게 치고 들어오며 속도감을 높인다.
트와이스 벗어나는, 트와이스 담긴 뮤직비디오
내용은 여전히 더없는 사랑 노래다. 솔직하게 터놓는 사랑은 사실 데뷔 초부터 트와이스의 주되면서도 거의 일관된 테마다. 다만 곡에 따라 상대의 고백을 독려하거나, 먼저 고백하겠다거나, 멈출 수 없는 연애감정으로 내달리거나 하는 식으로 변주되곤 했다. 그런 관점에서 ‘SET ME FREE’가 인상적인 것은 상대에게 요구하는 바가 간단하다면 간단하다는 점(“넌 그냥 날 안으면 돼”)이다. 나머지는 화자 몫이다. 시선의 위험을 짊어지는 것도, 이를 뚫고 나아갈 결심도, 사랑만 있으면 모든 걸 잃어도 된다는 판단도, “내 맘 끝까지 갈” 것이라는 선언도 모두 말이다. 때로 긴박하고 때로 웅장하며 때로 달콤한 이 질주는 트와이스의 것이다.뮤직비디오는 역시 안무가 두드러진다. 케이팝 전통에 따라 멤버별로 분산되고 다면화돼 있어, 사실 흘려버리기도 어렵지만은 않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채영의 랩이 끝나는 후반부다. 화면이 흑백으로 변하고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케이팝 뮤직비디오 사전이 있다면 드라마타이즈를 위해 뮤직비디오를 끊어가겠다고 하는 공식적 신호로 등재될 만한 장면이다. 조금 기다리면 극장에 앉아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멤버들의 얼굴이 보이고, 이어서 세트장이 폭발하며 노래의 클라이맥스로 돌아온다.
멈췄다 가는 뮤직비디오나 세트장의 폭발 장면 같은 것은 케이팝에서 많이 봐온 것들이다. 하지만 트와이스의 로고와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의 로고, 이를 관람하는 멤버들의 얼굴까지 등장하니 조금 달라진다. 트와이스를 벗어나는 트와이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사가 제약을 넘어 사랑하는 인물의 의지를 그린다면, 뮤직비디오는 부숴야 할 틀의 범주를 트와이스라는 존재로까지 확장한다.
화장을 지우는 티저가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을 연상케 했던 사실에 비한다면야, 보는 이에 따라 모든 게 늘 안온하고 미지근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트와이스’의 선언에는 분명 즐거우면서도 근사한 데가 있다. 트와이스에게 변화란 철마다 콘셉트를 갈아입어 신선함을 제공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의미다. 이미 사랑스러움을 추구하는 걸그룹에서 멋짐을 추구하는 그룹으로 변모해온 시간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