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계예술대전의전시장. 벽은 물론 천장과 건물 외벽까지 1000여점의 출품작들이 빽빽하게 전시됐다.
과거와 달리 요즘 신진작가들은 자기 돈 들여 전시를 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개인전을 열기 위해 전시장 대여비, 도록 제작비, 홍보비 등에 큰돈을 써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품성이 뛰어난 작품이면 이미 졸업 전시 즈음 상업 갤러리에서 모셔간다.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면 대안공간에서 전시를 열 수 있다. 공모전도 변했다. 특히 최근 스페이스C에서 열리고 있는 ‘춘계예술대전’은 공모전의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
‘춘계예술대전’은 공모할 때부터 남달랐다. 대개 공모전이라면 공모 가능한 ‘대상’이나 ‘장르’가 한정되게 마련인데, ‘춘계예술대전’은 지원요건에 어떤 제한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공모전에 응모한 작가는 4세부터 67세까지 377명에 이르렀다. 참가자는 최대 5점까지 작품을 낼 수 있었기에 총 응시작은 1026점이었다. 3회에 걸쳐 진행된 심사를 통해 우수작 5명(이경규 추수희 박지원 정주아 이고은)과 심사위원특별상 1명(양길석)이 선정됐다.
4~67세 377명 응모 작품 모두 전시
여기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6명의 입상 전시만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낙선전’이라는 이름으로 출품작 1026점을 모두 전시했다. 전시장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작품들은 전시장 벽을 빼곡히 채우고도 바닥과 천장, 계단, 로비 등에 자리를 잡았고, 심지어 건물 바깥으로 나간 작품도 있었다. 전시장 구석구석까지 닿지 않는 조명에 대한 대안책으로 손전등이 동원됐고, 저 멀리 천장 안쪽에 걸려서 잘 보이지 않는 작품을 위해 망원경이 구비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품 디스플레이에 대해 불만을 가진 낙선작가도 많았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개별의 작품보다 ‘난장판 전시’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오면서 신선함과 충격을 던져준다.
무언가가 ‘빠글빠글’ 모여 있을 때 드러나는 의외의 아름다움과 힘. 바로 작가 최정화가 즐겨 쓰는 조형 어법이다. 이번 공모전의 아트디렉터를 최정화가 맡은 만큼, 377명의 작가가 참여했지만 전체는 하나의 최정화식 작업으로 보인다. 더욱이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 몇몇은 최정화의 작품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하다. 애초 ‘스타 작가 최정화’의 브랜드를 보고 공모전에 참여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미술계 몇몇은 이번 공모전이 ‘워너비 최정화’들이 모여 만든 ‘가짜 최정화 전시’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 최정화도, 이번 전시에 참여했던 이들도 이런 지적에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입선작과 낙선작의 경계도 허무는 판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그저 판이 깔렸으면 즐기면 된다. 시상식 때 최정화가 외친 한마디는 “술 많이 드시고 가세요”였다. 그리고 사실 최정화 역시 신진작가 시절 중앙미술대전에서 ‘추상화’로 입상했다. 전시는 6월8일까지 서울 신사동 스페이스C에서 열린다 (문의 02-547-9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