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생활 10년차라면 중년 배우를 생각하겠지만, 고등학생 시절인 1999년 KBS 드라마 ‘학교 2’를 통해 데뷔한 김민희는 스물일곱 살이다. 팔다리가 길고 얼굴이 작아 어떤 옷을 걸쳐도 ‘그림이 되는’ 그는 올해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며 N세대의 아이콘이 됐던 이전의 당돌한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의 김민희는 컴퓨터나 인터넷도 잘 하지 않는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보고 연기를 칭찬해주니 용기도 나고 기분도 좋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캐릭터에 욕심이 났다. 정말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개봉 전 국민여동생 원더걸스의 멤버인 소희가 연기자로 데뷔한다고 관심을 모았고, 중년 여배우의 대명사인 이미숙이 출연하면서 시선을 끌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김민희만 눈에 들어온다. ‘김민희가 연기자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 이 영화는 10대와 20대, 40대를 각각 대표하는 세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싱글즈’부터 여성의 속내에 관심을 기울여온 권칠인 감독의 작품이다.
남자인 내가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아는 것이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여전히 안개 속인 게 여자의 마음이다. 여자에겐 절대 들켜서는 안 될 게 3가지 있다고 하는데 주름살과 바람, 속마음이란다. ‘뜨거운 것이 좋아’에 나오는 말이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우리 시대의 영화다. 트렌디 영화는 그 시대가 지나면 유효기간이 소멸되는 단점이 있지만, 가끔 살아남기도 한다. 시대 흐름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했느냐가 관건이다.
“늘 고민하고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앞날을 향해 달려가는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맡은 아미라는 캐릭터는 현실의 내 모습과 닮은 점이 많다.”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은 스물일곱 살의 시나리오 작가 아미(김민희 분)에게서 나온다. 옆방에서 섹스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방음도 안 된 싸구려 여관방에 감독과 함께 틀어박혀 몇 번이나 시나리오를 고치지만 작업은 진척되지 않는다. 아미에게는 남자친구 원석(김흥수 분)이 있지만 그는 비전이 없는 빈털터리다. 그의 전세방에서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발견한 아미는 자신도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고 마음먹는다. 술에 취해 우연히 다시 만난 승원(김성수 분)과는 선본 사이다. 회계사인 승원은 잘생긴 외모에 재력까지 겸비했지만 유머감각은 없다. 다음 날 승원의 침대에서 눈을 뜬 아미는 원 나잇 스탠드로 생각하며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지만 승원은 아미에게 진심어린 프러포즈를 한다.
세 여자의 사랑 이야기 … 너무 자연스러운 연기
아미는 인테리어 아티스트인 언니 영미(이미숙 분)의 집에서 기거하는데, 재력과 미모를 겸비한 영미는 혼자서 딸 강애를 키우며 산다. 조카인 고등학생 강애(안소희 분)는 늘 아미를 구박한다. 후배가 연출하는 연극 작품의 무대미술을 맡고 있는 영미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극단의 20대 배우 경수와 섹스를 하지만, 더는 감정을 키우지 않으려고 그를 차갑게 대한다. 하지만 경수는 밉지 않게 영미에게 계속 들이댄다. 일하는 데 연애를 끌어들이는 게 싫다며 선을 긋는 영미지만 자신에게 폐경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방황한다.
강애에게는 학교 단짝이자 아르바이트까지 함께 하는 친구 미란이 있다. 미란은 브라질로 이민 갔다가 돌아왔다. 강애에겐 한편 3년을 사귄 남자친구 호재(김범 분)가 있다. 하지만 아직 호재와는 섹스는커녕 키스도 못 해봤다. 게다가 호재의 관심은 강애가 아니라 게임과 오토바이다. 용기를 내 호재에게 키스를 시도해보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반면 브라질로 다시 돌아간다는 미란과의 입맞춤은 강애에게 야릇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아미는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 시나리오 수정만 17번째다. 그때 모든 것을 갖춘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는다. 아미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뒤 결정을 내린다. ‘나는 누구인가?’ 이런 고민이 아미의 결정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나도 나 자신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비쳐지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삼류 에로영화 제목 같은 ‘뜨거운 것이 좋아’는 이렇게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3명의 여성의 삶을 미세하게 접근해가면서 트렌디 영화의 장단점을 드러낸다. 장점은 이야기에 구체성과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돈과 능력을 갖췄지만 끌리지는 않는 재력남이냐, 아니면 가진 것 없지만 마음이 가는 옛 남자친구냐.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미의 고민은 넌더리가 날 만큼 상투적이지만, 오락가락하는 내면이 솔직하게 드러나면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또 연하남과의 데이트로 갈등하는 영미의 고민 역시 이미숙이 10년 전 출연했던 ‘정사’ 이후 한 시대의 유행 코드가 돼버린 소재지만, 깔끔하게 마무리돼 있다.
미묘한 감성 표현 거의 원톱으로 작품 이끌어
아미와 영미에 비해 강애의 갈등은 새로운 유행 코드인 동성애다. 사춘기 소녀인 강애는 친구인 줄 알았던 미란과의 입맞춤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한다.
영화는 우리 시대의 사랑이 가진 낯익은 코드를 상식 수준에서 접근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름대로 진정성을 획득하며 허공에 떠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소재의 발목을 붙잡는 데 성공한다. 권 감독은 새로운 소재 대신 낯익은 이야기를 택했지만, 그 미묘한 감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영화에서 김민희는 발성에 문제가 있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로 아미 역을 무난히 소화해냈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연기자로 대중에게 다가서게 될 것이다.
안소희도 처음 연기에 도전했지만 성공적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노래보다 연기에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안소희의 연기는 자연스러웠고, 10대 소녀가 갖는 내면적 갈등을 무리 없이 표현했다.
그러나 영화는 세 여성의 일과 사랑을 보여주지만 모든 갈등이상투적인 수준에서 끝난다. 트렌디 영화의 단점을 뚫지 못하고 현실에 안착하는 마무리는 실망스럽다. 가장 대중적인 시선에 머무르며 이야기를 마감하는 결말은, 트렌디 영화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3년간 만나던 이정재와 헤어진 지 벌써 1년. 전에는 고독한 눈빛의 남자가 좋았지만 지금은 편안하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좋다는 김민희. ‘뜨거운 것이 좋아’는 그가 연기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작품이다. 이제 비로소 그는 한 사람의 배우로 출발선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보고 연기를 칭찬해주니 용기도 나고 기분도 좋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캐릭터에 욕심이 났다. 정말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개봉 전 국민여동생 원더걸스의 멤버인 소희가 연기자로 데뷔한다고 관심을 모았고, 중년 여배우의 대명사인 이미숙이 출연하면서 시선을 끌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김민희만 눈에 들어온다. ‘김민희가 연기자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 이 영화는 10대와 20대, 40대를 각각 대표하는 세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싱글즈’부터 여성의 속내에 관심을 기울여온 권칠인 감독의 작품이다.
남자인 내가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아는 것이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여전히 안개 속인 게 여자의 마음이다. 여자에겐 절대 들켜서는 안 될 게 3가지 있다고 하는데 주름살과 바람, 속마음이란다. ‘뜨거운 것이 좋아’에 나오는 말이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우리 시대의 영화다. 트렌디 영화는 그 시대가 지나면 유효기간이 소멸되는 단점이 있지만, 가끔 살아남기도 한다. 시대 흐름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했느냐가 관건이다.
“늘 고민하고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앞날을 향해 달려가는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맡은 아미라는 캐릭터는 현실의 내 모습과 닮은 점이 많다.”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은 스물일곱 살의 시나리오 작가 아미(김민희 분)에게서 나온다. 옆방에서 섹스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방음도 안 된 싸구려 여관방에 감독과 함께 틀어박혀 몇 번이나 시나리오를 고치지만 작업은 진척되지 않는다. 아미에게는 남자친구 원석(김흥수 분)이 있지만 그는 비전이 없는 빈털터리다. 그의 전세방에서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발견한 아미는 자신도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고 마음먹는다. 술에 취해 우연히 다시 만난 승원(김성수 분)과는 선본 사이다. 회계사인 승원은 잘생긴 외모에 재력까지 겸비했지만 유머감각은 없다. 다음 날 승원의 침대에서 눈을 뜬 아미는 원 나잇 스탠드로 생각하며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지만 승원은 아미에게 진심어린 프러포즈를 한다.
세 여자의 사랑 이야기 … 너무 자연스러운 연기
아미는 인테리어 아티스트인 언니 영미(이미숙 분)의 집에서 기거하는데, 재력과 미모를 겸비한 영미는 혼자서 딸 강애를 키우며 산다. 조카인 고등학생 강애(안소희 분)는 늘 아미를 구박한다. 후배가 연출하는 연극 작품의 무대미술을 맡고 있는 영미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극단의 20대 배우 경수와 섹스를 하지만, 더는 감정을 키우지 않으려고 그를 차갑게 대한다. 하지만 경수는 밉지 않게 영미에게 계속 들이댄다. 일하는 데 연애를 끌어들이는 게 싫다며 선을 긋는 영미지만 자신에게 폐경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방황한다.
강애에게는 학교 단짝이자 아르바이트까지 함께 하는 친구 미란이 있다. 미란은 브라질로 이민 갔다가 돌아왔다. 강애에겐 한편 3년을 사귄 남자친구 호재(김범 분)가 있다. 하지만 아직 호재와는 섹스는커녕 키스도 못 해봤다. 게다가 호재의 관심은 강애가 아니라 게임과 오토바이다. 용기를 내 호재에게 키스를 시도해보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반면 브라질로 다시 돌아간다는 미란과의 입맞춤은 강애에게 야릇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아미는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 시나리오 수정만 17번째다. 그때 모든 것을 갖춘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는다. 아미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뒤 결정을 내린다. ‘나는 누구인가?’ 이런 고민이 아미의 결정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나도 나 자신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비쳐지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삼류 에로영화 제목 같은 ‘뜨거운 것이 좋아’는 이렇게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3명의 여성의 삶을 미세하게 접근해가면서 트렌디 영화의 장단점을 드러낸다. 장점은 이야기에 구체성과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돈과 능력을 갖췄지만 끌리지는 않는 재력남이냐, 아니면 가진 것 없지만 마음이 가는 옛 남자친구냐.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미의 고민은 넌더리가 날 만큼 상투적이지만, 오락가락하는 내면이 솔직하게 드러나면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또 연하남과의 데이트로 갈등하는 영미의 고민 역시 이미숙이 10년 전 출연했던 ‘정사’ 이후 한 시대의 유행 코드가 돼버린 소재지만, 깔끔하게 마무리돼 있다.
미묘한 감성 표현 거의 원톱으로 작품 이끌어
아미와 영미에 비해 강애의 갈등은 새로운 유행 코드인 동성애다. 사춘기 소녀인 강애는 친구인 줄 알았던 미란과의 입맞춤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한다.
영화는 우리 시대의 사랑이 가진 낯익은 코드를 상식 수준에서 접근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름대로 진정성을 획득하며 허공에 떠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소재의 발목을 붙잡는 데 성공한다. 권 감독은 새로운 소재 대신 낯익은 이야기를 택했지만, 그 미묘한 감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영화에서 김민희는 발성에 문제가 있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로 아미 역을 무난히 소화해냈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연기자로 대중에게 다가서게 될 것이다.
안소희도 처음 연기에 도전했지만 성공적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노래보다 연기에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안소희의 연기는 자연스러웠고, 10대 소녀가 갖는 내면적 갈등을 무리 없이 표현했다.
그러나 영화는 세 여성의 일과 사랑을 보여주지만 모든 갈등이상투적인 수준에서 끝난다. 트렌디 영화의 단점을 뚫지 못하고 현실에 안착하는 마무리는 실망스럽다. 가장 대중적인 시선에 머무르며 이야기를 마감하는 결말은, 트렌디 영화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3년간 만나던 이정재와 헤어진 지 벌써 1년. 전에는 고독한 눈빛의 남자가 좋았지만 지금은 편안하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좋다는 김민희. ‘뜨거운 것이 좋아’는 그가 연기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작품이다. 이제 비로소 그는 한 사람의 배우로 출발선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