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는 4월 28일~5월 5일 벤처 강국의 면모를 직접 확인했다. 일주일 동안 두 기자가 7개 기업을 샅샅이 훑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도움으로 전기자동차, 농업기술, 정보기술(IT), 우주·항공, 금속가공,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성공 벤처기업을 선정했다. 군수기업인 IAI(Israel Aerospace Industries)는 이스라엘 최대 기업이지만, 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 포함시켰다.
※ 이 기사에 나온 각 는 KOTRA 텔아비브 지사에서 자료를 제공했음.
01 배터리 교체 시스템 혁신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두각
지금껏 자동차는 화석연료로 굴러갔다. 최근 이 판을 깨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화석연료 대신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 개발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기엔 역부족이다. 전기자동차를 대중화하려면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의 휘발유 차와 비슷한 가격으로 전기자동차를 살 수 있고, 전기 충전도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채우듯 쉽게 할 수 있어야 하며, 휘발유 차와 성능도 비슷해야 한다. 베터 플레이스(Better Place)는 이런 시스템적 접근으로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베터 플레이스는 단순한 회사가 아닙니다. 곧 세상을 변화시킬 곳이죠. 회사 이름처럼 더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책임과 의무로 무장했습니다.”
5월 5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에 자리한 베터 플레이스 본사를 찾았다. 2007년 설립한 젊은 회사답게 건물 전체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벽면 곳곳에는 앙증맞은 하늘색 주유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름을 채우는 주유기가 아니었다. 비슷한 모양의 전기 충전기였다. 베터 플레이스는 이 충전기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 이 회사 홍보 담당자인 줄리 물린스(Julie Mullins) 씨는 “40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세계가 베터 플레이스에 주목한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일본 도쿄의 베터 플레이스 배터리 충전소.
“베터 플레이스는 이 문제를 새로운 개념의 사업 모델로 극복하려 합니다. 첫째, 휴대전화처럼 배터리를 교체하는 배터리 교체형 전기자동차입니다. 배터리 충전은 아무리 빨라도 일정 시간을 필요로 하죠. 급속 충전 기술이 발달해도 주유를 하는 것보다 빠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터리를 교환하는 교체센터를 고안했습니다. 배터리 수명이나 주행 거리를 추정해 방전 전 미리 교체를 알려주는 소프트웨어 시스템도 만들었죠.
둘째, 전기자동차 가격은 자동차 대신 전기를 파는 방식으로 낮출 겁니다. 자동차를 저렴한 가격이나 무상으로 주는 대신, 전기를 판매하는 거죠. 휴대전화 통신료를 내는 것처럼 자동차(기기)와 배터리(통신)를 패키지로 묶은 뒤 사용한 만큼 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베터 플레이스는 지금까지 기술 점검을 마무리하고 이스라엘과 일본에서 전기자동차를 시험 운행했다. 기후, 보험, 국가별 유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시스템도 차별화했다. 올해 말에는 협력사 르노의‘플루언스 ZE’를 이스라엘과 덴마크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내년에는 일본과 미국으로 시장을 넓힌다. 그렇다면 가격 경쟁력은 어떨까. 물린스 씨는 “지역마다 유가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10~20% 저렴하다”고 말하고 설명을 이었다.
“기름은 제한된 연료입니다. 중국, 인도 같은 신흥 개발도상국에서는 한 해 수십만 대씩 자동차가 늘어나는데 기름은 한정돼 있죠. 하지만 전기는 그 반대입니다. 신재생 에너지 시장이 성장할수록 전기자동차 가격은 장기적으로 내려갈 겁니다. 당장은 금전적으로 매력이 크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전기자동차의 경쟁력이 커질 수밖에 없죠.”
텔아비브=이설 기자 snow@donga.com
02 황무지에서 녹지 일군 기적
세계로 수출하는 ‘녹색혁명’
식물은 지기(地氣)와 물을 먹고 자란다. 그중 으뜸은 물인데, 종마다 필요한 물의 양이 다르다. 이 때문에 기후에 맞는 농작물이 따로 있다. 제주도에서는 귤나무, 하와이에서는 야자나무, 프랑스 남부에서는 올리브나무가 잘 자란다. 하지만 이 기술을 활용하면 기후와 상관없이 원하는 작물을 기를 수 있다. 바로 땅속에 파이프를 묻어 식물뿌리에 필요한 만큼의 물만 공급하는 점적관개(Drip Irrigation) 기술이다. 네타핌(Netafim)은 이 기술을 최초로 고안해 세계로 시장을 넓혔다.
이스라엘 현지시간으로 5월 4일 오후 1시경, 텔아비브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2시간을 달렸다. 네타핌 본사가 위치한 네게브(Negev) 사막으로 가는 길이다.
“이스라엘은 북쪽은 습하고 남쪽은 건조하죠. 아래로 갈수록 황색으로 변하는 땅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창밖에 시선을 던진 기자에게 안내를 맡은 스티브 그래이 씨가 말을 건넸다. 그러나 황색 땅은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바닥 곳곳에 슬쩍슬쩍 보이는 호스가 황무지에서 녹지를 일구는 네타핌의 기적을 보여줬다.
네타핌에서 32년 근무한 이치크 인바르 씨.
“네타핌을 알고 싶다고요? 그럼 먼저 이 얘기를 이해해야 해요.”
인사를 마친 그는 “얘기 하나 하겠다”며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늘빛 눈동자에 이끌려 기자도 모르게 몸이 그를 향해 기울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대인이 3분의 1 이상 죽고, 남은 이들은 안전지대를 찾아 이스라엘 땅으로 흘러들어왔어요. 허허벌판에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까 고민하다 ‘키부츠’를 만들었죠. 19명의 남성과 16명의 여성이 11개 그룹으로 나뉘어 ‘공동 생산, 공동 분배’를 원칙으로 한 공동체를 만든 거예요. 네타핌은 인근의 키부츠를 기반으로 탄생한 회사입니다.”
네타핌 본사 곳곳에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입성이 허름한 젊은이들이 통나무를 나르는 모습, 황무지에 덩그러니 남은 집터…. 1946년 키부츠를 만든 주역들의 모습이다. 생존을 위해 똘똘 뭉친 초기의 키부츠는 농업을 기초로 삼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농업조차 쉽지 않았다. 이스라엘 땅은 옥토가 아니어서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키부츠가 생긴 지 13년이 지났다. 혈기왕성하던 젊은이는 나이가 들었고, 경제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그들에겐 혁신적인 농업기술이 시급했다.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키부츠 운영이 가능한, 생산력을 담보해줄 만한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네타핌의 관개기술은 이런 절박함에서 탄생했다. 키부츠에서 태어나 네타핌에서 32년을 보낸 인바르 씨가 “어메이징(Amazing)”이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수자원 과학자인 심카 블라스(Simcha Blass)는 파이프에서 조금씩 새나오는 물을 흡수하던 나무를 보고 점적관개 사업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플라스틱이 일반화한 1960년대에 그는 이 기술을 특허출원하고 네게브 사막 인근 키부츠와 계약을 맺었죠. 훗날 이들의 만남은 ‘윈윈’을 넘어 ‘그린 레볼루션(green revolution·녹색혁명)’을 이루었습니다.”
‘GROW MORE WITH LESS’(적은 양으로 더 많이). 네타핌 공장 복도에 걸린 푯말을 가리키며 인바르 씨가 “이것이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유지해온 우리의 유일한 모토”라고 설명했다. 하체림 키부츠에서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네타핌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적은 양의 관수, 온실 기술, 작물 관리를 주력 분야로 삼고 독보적인 관수 시스템 회사로 성장했다.
네타핌의 핵심은 점적관개 기술이다. 플라스틱 미세관 끝에서 물방울을 똑똑 떨어지게 하거나 천천히 흘러나오도록 만들어, 최소 수량으로 최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 인바르 씨는 “전통적 담수관개의 물 효율은 40∼60%, 스프링클러 관개는 70∼85%인 데 비해 점적관개는 90∼95%다”라고 설명했다.
네타핌은 현재 아시아, 남아메리카, 유럽, 호주, 러시아, 북아메리카 등 5개 대륙 110개국에서 사업을 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어 적대관계인 이슬람 국가에도 진출했다. 이들의 ‘그린 레볼루션’에 이은 ‘넥스트 레볼루션’은 뭘까.
“시장 트렌드와 관계없이 우리 모토는 늘 ‘더 적은 양으로 더 많이’입니다. 전통 가족형 농업에서 기업형 농업으로 바뀌고, 농작물 종류가 바뀌어도 핵심 경쟁력은 이 모토 위에 있죠. 네타핌은 기술을 넘어 노하우와 경영 방식도 판매할 계획이에요. 세계 각 농경지의 기후, 토양, 작물 종류 등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지구 반대편 네타핌 본사에서 정보를 관리하는 거죠.”
네게브=이설 기자 snow@donga.com
03 ‘방화벽’으로 IT 보안 평정
탄탄한 기술로 앞서 뛴다
중요한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과거에는 금고에 넣은 뒤 자물쇠를 채우면 됐다. 인터넷이 발달한 뒤로는 그것으로 부족하다. 개인정보, 기업의 주요 기술 등 인터넷 세상에 둥둥 떠다니는 정보를 보호하는 정보기술(IT) 보안이 핵심 산업으로 떠올랐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본사를 둔 체크포인트 소프트웨어 테크놀로지스(Check Point Software Technologies, 이하 체크포인트)는 대표적 IT 보안 솔루션 기업이다. ‘포춘’지 선정 100대 기업이 모두 체크포인트 보안 솔루션을 사용한다.
5월 5일 오후 텔아비브 외곽에 위치한 체크포인트 본사를 찾았다. 로비 입구부터 분위기가 남달랐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친 청년들이 난간에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사무실 풍경은 더 생경했다. 원색 벽에는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고, 공간 구석구석엔 조각 등 예술품이 센스 있게 자리 잡았다. 마치 갤러리 같았다. 두리번거리는 기자에게 아시아지역 부사장 이치 웨인렙(Itche Weinreb) 씨가 설명을 해줬다.
“벽에 걸린 사진은 전부 체크포인트 창립자이자 현 대표인 길 슈웨드(Gil Shwed) 씨가 찍은 겁니다. IT 전문가인 동시에 문화 애호가죠. 자유로운 사무실 분위기는 직원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복도에 닭장처럼 줄지어 선 사무실은 무방비로 열려 있었다.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직원 두세 명이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눈으로는 모니터를 입으로는 샌드위치를 탐하는 직원, 머리를 쥐어뜯으며 책상에 머리를 박는 직원, 일을 제쳐놓고 사무실 구석에서 체조를 하는 직원…. 이방인의 멀뚱한 눈길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계의 IT 보안을 책임지는 체크포인트 직원은 대부분 25~35세입니다. 젊고, 똑똑하고, 연봉도 높은 멋진 청년들이죠. 이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높은 직급에 올라 일찍부터 중책을 맡게 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출발하는 열정은 지난 18년간 체크포인트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웨인렙 씨에 따르면 길 슈웨드 회장은 지금도 직접 연구에 매진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이런 창업자 정신은 벽면에 걸린 사진을 통해 직원들의 어깨들 두드린다.
체크포인트는 방화벽(Firewall),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 Uses Interface·GUI) 등 보안 정책 관리 툴을 제공하는 솔루션을 만든다. 1993년 설립해 3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했다. 현재 88개국 2200여 개 기업의 보안을 책임지며, 전체 직원은 2300여 명.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98%를 포함해 1만 개 기업이 체크포인트 고객이다. 체크포인트의 성공 비결을 묻자 웨인렙 씨는“그건 간단하다. 우리가 먼저‘파이어월-1’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처음 방화벽을 출시한 덕에 시장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죠.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기업에서 방화벽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건 이스라엘인의 DNA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인은 지루한 것을 못 견뎌요. 예를 들어, 일본이 아이디어 구상부터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재능이 있다면, 이스라엘은 개발과 디자인에만 집중하죠. 제조는 단순한 반복 작업이니까요. 이스라엘인은 역동적이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길 즐깁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세계 보안업계의 기술 혁신을 선도한다. 웨인렙 씨는 그 이유를 이스라엘의 불안정한 지정학적 위치와 정치 상황에서 찾았다. 이스라엘은 적대국인 이슬람 국가에 둘러싸인 365일 테러 위험지대. 자연히 군대 및 산업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출발한 탄탄한 보안기술은 글로벌 기업이 연구개발(R·D)센터를 짓도록 유도했고, 이것은 다시 보안기술이 정교해지는 선순환을 이끌어냈다.
IT 보안은 인터넷 트렌드를 따른다. 해커의 공격으로 IT 보안 개념이 싹텄고, 그들로 인한 정보 유출로 기업 보안이 중요해졌으며, 전자상거래 과정에서 돈을 가로채는 범죄가 만연하는 지금은 전자상거래 보안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 체크포인트는 보안 산업을 어떻게 전망할까. 웨인렙 씨는“확실한 건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리라는 것이고, 우리는 그에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말을 이었다.
“모든 새로운 보안기술은 새로운 공격에서 나옵니다. 경계 보안, 정보 중심 보안, 데이터 손실 방지, 클라우드 컴퓨팅 보안 등 인터넷 환경이 다각화함에 따라 보안 영역도 확대될 겁니다.”
체크포인트 본사 전경.
“이스라엘은 동종 기업 간 정보 공유가 활발합니다. 군사 부문 기업은 보안이 철저하지만, 회사 간 정보를 주고받으며 개발해나가는 환경이 조성돼 있죠. 한국은 동종 기업 간 경쟁이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보완한다면 혁신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을까요?”
텔아비브=이설 기자 snow@donga.com
04 절박함 속에 꽃핀 군사기술
이스라엘 수출의 10% 담당
출장 마지막 날인 5월 5일 오전, 이스라엘과 첫 인사한 벤구리온국제공항 근처로 되돌아갔다. 이스라엘 최대 군수기업인 IAI(Israel Aerospace Industries, 이하 IAI) 방문이 목적이었다. IAI는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성장했다. 이스라엘이 허허벌판 불모지에서 하이테크 강국으로 부상하는 동안 IAI는 고물 비행기 한 대로 출발해 항공, 우주, 보안 분야를 아우르는 거대기업이 됐다.
철저한 사전 검열을 거친 후에야 IAI 본사 미팅 장소에 도착했다. 6각형 모양의 탁자가 자리한 엄숙한 분위기의 회의실이었다.
“벽면에 두 사람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특이하죠?”
일행을 안내한 이 회사 홍보담당 로니 파즈(Roni Paz) 씨가 인물사진 2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진 속 인물은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벤 구리온과 IAI 설립자 알 쉼머다. 파즈 씨는 “두 사람을 빼놓고선 IAI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으로 걸어둔 사진”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IAI는 세계적인 군수기업이다. 비행기, 미사일, 인공위성 등 날아다니는 거의 모든 것을 생산한다. 출발은 소박했다. 건국을 목표로 한 전쟁이 한창이던 1930년 중반, 구리온은 비행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영공을 지배하지 않고선 건국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구리온은 미국계 유대인인 항공엔지니어 쉼머에게 고민을 털어놨고, 두 사람은 미국에서 고물 비행기 한 대를 몰고 오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1953년 설립한 IAI는 오늘날 직원 수 1만2000명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IAI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탄생한 기업입니다. 이러한 절박함은 기술을 정교화하는 데 도움이 됐죠. 예를 들어, 인공위성은 원래 오른쪽으로 돌지만, 우리는 아랍국의 영공 제한으로 왼쪽으로 도는 것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기류를 거스르는 인공위성을 만들려고 신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미팅 장소에는 모두 2명의 과학자와 2명의 파일럿이 다녀갔다. 각자 맡은 분야를 설명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들 곁에는 건장한 청년이 동행했다. 인사를 건네도 묵묵히 미소만 짓던 그의 정체는 보디가드. 로니 씨는 “IAI의 엔지니어 상당수가 국가 브레인이라 신변 보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IAI에 소속된 엔지니어는 약 1100명. 전공이 다양한 이들은 통합연구를 통해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개발한다. 마케팅 매니저인 즈비 칼론(Zvi Kalron) 씨는 “IAI는 무기와 항공 분야뿐 아니라, 국가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설명을 이었다.
“처음에는 주력 분야가 무기와 항공이었지만 지금은 IT,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의료기술 등으로 영역을 다각화했습니다. 특히 군수 산업에서 출발한 철통 보안은 오늘날 일상에 필요한 보안 사업의 밑거름이 됐죠. 이스라엘 군수 산업의 특징은 산업과 국방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인데, IAI의 성공으로 이스라엘은 정치·군사적 독립뿐 아니라, 경제적 독립도 이룰 수 있었습니다.”
IAI의 연평균매출은 약 20억 달러로, 이스라엘 전체 수출의 10% 정도를 책임진다. 최대 수출품목인 다이아몬드 가공에 이어, 단일 기업으로는 최고의 효자인 셈. 그룹 산하에는 엘타(Elta), 베덱(Bedek), 군용 항공기 그룹, 민간 항공기 그룹, 시스템 및 미사일 우주항공 그룹 등 5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엔지니어 분야 고급프로그램 디렉터인 슐로모 차크(Shlomo Tsach) 씨는 “군수품을 만드는 데는 각 기초과학 분야의 첨단기술이 필요하다. IAI의 첨단기술력으로 이스라엘 하이테크 산업 전체가 도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텔아비브=이설 기자 snow@donga.com
05 워런 버핏이 선택한 기업
혁신을 멈추지 않는다
세계적인 금속기업 IMC그룹 본사는 레바논 국경에서 10km 떨어진, 이스라엘 북부 테펜에 위치한다. 본사 옥상에 서니 국경에서 가까운 사막지대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아랍인 마을이 훤히 보였다. 2006년 제2차 레바논-이스라엘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에는 공장 코앞에서 포탄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 회사 홍보 담당 라라 만델바움 씨는 “포탄이 떨어지기 10분 전 회사에 경보가 울렸다. 근로자 모두가 건물 지하대피소로 뛰어갔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공장에는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1950년대 창립자 스테프 베르트하이머(Stef Wertheimer)는 많은 사람의 우려에도 이 척박하고 위험한 땅에 IMC의 터를 잡았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남·북부 사막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이 지역에 키부츠(공동 농장)가 많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베르트하이머는 “척박한 남·북부 사막을 발전시키려면 그곳에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아랍인에게 일자리를 줘야 그들이 행복해지고, 그들이 행복해져야 이스라엘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아랍인 마을과 멀지 않은 갈릴리 호수 서부지역에 대규모 공장을 지었다.
현재 IMC 근로자 중 30%는 아랍인이다. 한 아랍인 근로자는 “유대인은 대립 상대가 아니라 내 동료이자 이웃”이라고 말했다. 만델바움 씨는 “공장을 365일 쉬지 않고 가동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3교대로 일한다. 만일 아랍인 근로자가 종교적 이유로 일할 수 없게 되면 유대인 동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아랍인과 유대인이 한 장소에서 근무하지만 갈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IMC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투자한 최초의 외국 회사다. 2006년 버핏이 IMC의 지분 80%를 인수할 당시 많은 사람은 “안전한 투자 성향을 지닌 버핏이 왜 분쟁과 갈등의 나라 이스라엘에 투자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IMC 제이콥 하파즈(Jacob Harpaz) 회장은 “이스라엘에는 갈등이 늘 있지만 위험은 없다”며 “버핏은 투자자로서 IMC의 가치를 판단한 것이고, 그는 지난 5년간의 IMC 경영에 만족한다”고 단언했다.
IMC 제이콥 하파즈 회장과 이스라엘 IMC 본사.
이스카 중심 공장에는 ‘Where innovation never stops’(혁신이 멈추지 않는 곳)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그만큼 이스카는 연구개발(R·D) 투자가 높다. 이스카의 이란 게리(Ilan Geri) 마케팅 부사장은 “우리는 매년 벌어들이는 비용의 10% 이상을 R·D에 재투자한다”면서 “단순히 R·D팀만 기술개발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원이 R·D에 참여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이스카 본사 2층에 마련된 ‘마케팅 사무실’에는 부서 간 벽이나 칸막이가 전혀 없다. 같은 대륙을 공략하는 팀끼리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열린 공간을 실현한 것.
IMC가 대구텍을 세운 것은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휘청거리던 1998년. 대구텍 초대 사장이었던 게리 부사장은 “당시 많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빠져나갔지만, IMC는 오히려 투자를 확대했다”고 회상했다. 그러한 공격적 투자는 한국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파즈 회장은 “IMC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에도 대구텍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며 “한국인은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늘 발전하리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버핏의 한국 투자 확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꼈지만 “버핏이 두 번 방문한 유일한 회사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며 여운을 남겼다.
테펜=김유림 기자 rim@donga.com
06 농업 유전자 정보를 손안에
지적재산권만 1500개 이상 보유
벤처 왕국 이스라엘에는 ‘트렌드’가 있다. 1970년대는 담수화, 1980년대는 원자력안전기술, 199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 및 보안 프로그램 관련 벤처가 주를 이뤘다. 최근 이스라엘 벤처기업이 주목하는 분야는 바이오다. 환경오염으로 농경지가 준 데다, 농업인구도 감소하고 있어 제한된 환경에서 좋은 질의 농작물을 많이 수확하는 것이 인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기 때문.
세계적인 바이오그룹 컴퓨젠(Compugen)이 2002년 설립한 자회사 에보젠(Evogene)은 바이오 농업 분야의 선두주자다. 에보젠은 농작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을 최대화하는 방안을 연구한다. 또한 농작물의 유전자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농작물에서 에너지자원을 확보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에보젠이 보유한 지적재산권(IP)은 1500개 이상이다.
“처음에는 1층 주차장 옆 두 칸만 사무실이었는데 이제 3층 사무실이 대부분 에보젠 소유예요. 만일 여러분이 10년, 아니 5년 후 다시 이곳을 방문한다면 그때는 건물 전체가 에보젠 소유일지도 몰라요.”
5월 1일 이스라엘 과학도시 레호보트의 에보젠 본사에서 만난 아사프 카센(Assaf Kacen) 부사장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 수입 및 그것을 사용한 식품 제작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한국 역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식품에 사용할 경우 소량이라도 반드시 성분표시를 해야 한다. 카센 부사장은 “그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과 동시에 안전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농산물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 역시 우리의 소임”이라고 말했다.
에보젠은 그린 하우스에서 매년 130여 개 품종으로 유전학 연구를 한다.
에보젠 직원 120여 명 가운데 R·D 분야에만 90여 명이 일한다. 대부분 레호보트의 ‘과학 명문’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또는 히브리대 농업대학 출신이다. 카센 부사장은 “우리 기술의 근원은 대학에 있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 출신이라 교수, 연구원들과 교류가 쉬워 조언도 많이 듣는다. 또한 에보젠은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의 과학자를 매년 ‘기술고문’으로 영입해 기술개발 과정에서 도움을 받는다.
에보젠에서 나온 모든 연구 데이터는 중앙 컴퓨터에 저장한다. 연구원들은 그린 하우스에 있는 모든 농작물을 하루에 한 번씩 매일 검사하며, 특수 카메라를 통해 24시간 변화를 관찰한다. 이렇게 에보젠은 매년 130여 개 품종으로 유전학적 연구를 진행한다. 에보젠이 현재 보유한 데이터 저장량은 204TB(테라바이트). 1TB는 1024GB로, 이스라엘 국회도서관의 정보가 100TB 정도다. 카센 부사장은 “모든 것을 컴퓨터화해 언제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어 연계 연구가 쉽다. 우리가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정보는 전 세계 파트너에게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 상업화 과정은 몬산토, CIARD, 파이오니어 하이브리드(Pioneer Hi-Breed) 등 세계적인 식품유통회사와 협력해 진행한다. R·D부터 상용화까지 모두 도맡아 하는 한국 대기업과는 다른 모습이다. 카센 부사장은 “우리는 ‘기술 제공자(technology provider)’일 뿐이다. 우리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비즈니스는 우리 파트너의 몫”이라고 말했다.
레호보트=김유림 기자 rim@donga.com
07 폐수 재활용에 전기까지
기술력만큼 자부심도 최고
이스라엘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 나라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물이다. 이스라엘은 늘 물이 부족하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수자원은 북쪽에 있는 갈릴리 호수다. 국토 왼쪽 옆구리에 자리한 사해(Dead sea)는 염분이 너무 높아 산업용수로도 쓸 수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 국토의 60%에 해당하는 남부 대부분은 연간 강수량이 50㎜도 안 되는 사막이다. 이러한 환경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물 관련 기술이나 과학이 발전하는 토대가 됐다. 2008년 설립한 에메프시(Emefcy)는 이미 한 번 사용한 폐수를 재활용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수자원이 부족한 이스라엘은 70%의 폐수를 재활용한다. 스페인이 폐수의 40%를 재활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하지만 폐수를 처리하려면 에너지와 돈이 많이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폐수 처리에 들어가는 전기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2%에 이른다.
에메프시 부사장 엘리 코헨.
전체 폐수 가운데 41%에 해당하는 산업 폐수에는 유기물이 상당히 많다. 에메프시는 특수 제작한 ‘미생물 연료 전지’에 폐수를 담고, 그 안에 박테리아를 주입한다. 박테리아가 플랑크톤 등 유기물을 먹는 과정에서 전기에너지가 발생하고, 물도 깨끗해진다.
한편 전체 폐수 가운데 56%를 차지하는 가정용 폐수에는 유기물이 많지 않다. 이 역시 박테리아가 유기물을 섭취하는 자연적인 방법을 이용해 폐수를 처리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비용으로도 정수가 가능하다.
한편 정수 후 폐수의 유기물이 사라지면 슬러지(찌꺼기)가 80% 이상 줄어든다. 엘리 코헨(Ely Cohen) 부사장은 “우리의 기술을 이용하면 슬러지 처리 비용이 80%가량 감소한다는 의미”라면서 “반면 에너지는 오히려 늘어나 폐수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이 개발한 ‘미생물 연료 전지’ 역시 신기술을 고스란히 담았다. 공기는 통하지만 물은 통하지 않는 특수 재질로 만든 이 기계의 소재는 플라스틱이다. 지금도 정수처리 시설 대부분은 금속으로 만든다. 플라스틱은 15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데다 비용이 저렴하고 부식도 심하지 않아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코헨 부사장은 “정수기술을 가진 회사 가운데 에메프시의 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에메프시는 직원 18명이 일하는 작은 회사지만, 올 1월 세계적인 SCI 저널 ‘폴루션 엔지니어링 매거진(Pollution Engineering Magazine)’에서 ‘10대 기술’로 선정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코헨 부사장은 “2012년 4m 규모의 미생물 연료 전지를 보유한 공장을 짓고 미국, 유럽, 아시아 순으로 진출할 계획”이라며 “세계에서 음료, 식품을 만드는 데 쓰는 폐수 가운데 딱 1%만 우리 기술로 가공한다면 우리 기업은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이사라=김유림 기자 r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