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이혼해본 여자와 이혼을 숱하게 고민한 아줌마 아저씨, 그리고 너무 흔해진 이혼이 싫어 아예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여자가 모여 처음 꺼낸 화제는 역시 ‘고현정’이었다.
임계성(이하 임): 고현정이 위자료로 15억원 받았다면서요? 재벌가에서 8년이나 산 대가치고는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로 하면 그 여자가 받을 수 있는 돈이 최소한 280억원은 넘는다던데. 아무래도 더 받겠죠?
김별아(이하 김): 그럼요. 아마 곧 재산분할 청구에 들어갈 거라는 말이 많아요.
임: 그러니까 여자들이 너나없이 돈 있는 남자한테 시집가려고 하는 거야.(웃음) 난 예전에 이혼할 때 3년 식모 살아주고 돈 1000만원 받아서 나왔거든요. 결혼하면서 내가 들인 5000만원은 고스란히 두고 나온 거예요. 그때만 해도 정서가 ‘결혼이 장사도 아니고, 투자한 돈 들고 나가는 게 어딨냐’ 하는 거였으니까요. 남편이 주고 싶으면 좀 주고, 주기 싫으면 말고 하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후부터 결혼하는 주변사람들한테 재산은 꼭 공동명의로 하라고 신신당부하죠.
“재산은 부부 공동명의로 … 대책 없이 이혼하면 고생 실컷”
천성관(이하 천): 사실 공동명의로 하면 세금이 절약되니까 남자한테도 좋은 거잖아요. 그런 게 홍보가 덜 돼서 남자 이름으로 하는 거 아닐까요? 나도 알았으면 처음부터 공동명의로 했을 거예요.
김: 아니오. 그건 확실히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남자들이 여자들 모르라고 일부러 홍보를 안 하는 거 같아요.(웃음) 사실 알아도 잘 안 해주거든요. 공동명의로 하는 걸 자기 권위의 상실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제 경우엔 결혼할 때 남편이 돈이 없어서 전부 제 돈으로 했는데도 공동명의로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더라고요. ‘결국은 내가 번 돈으로 먹고사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죠.
임: 일단 시부모부터 방방 뜨잖아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귀하디 귀한 내 아들이 머슴짓하려고 하느냐면서. 그러니까 이혼할 때 되면 다들 돈 문제 때문에 힘들어지죠.
정세진(이하 정): 맞아요. 저희 언니도 이혼했는데 ‘아이는 내가 키우겠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하면서 예물반지까지 빼주고 끝냈어요. 그러고 나니 직업이 있는데도 조카 먹여 살리느라 고생 좀 하죠.
임: 무작정 이혼했다가 물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지금 활동하는 솔로사이트 회원이 2만명이 넘는데, 다들 이혼할 때 제일 고민하는 게 돈 문제예요.
김: 특히 애가 있으면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해져요. 제가 내년에 결혼 10주년이 되거든요. 그런데 한 10년 사니까 진짜 남편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오데요. 솔직히 올 초에 심각한 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가장 먼저 문제 되는 게 돈이더라고요. 나는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는데, 과연 내 새끼가 나와 단 둘이 살면서 제대로 얻어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앞이 깜깜해지더군요. 사실 소설 써선 큰돈 못 벌거든요. 그래서 올 초에 동화만 4권을 썼잖아요. 결국 이혼은 안 하고 그냥 살게 됐지만 책은 잘 나오고 있죠. 벌써 두 권 나왔고 곧 두 권이 더 나올 거예요.(웃음)
김별아, 임계성, 정세진, 천성관 (왼쪽부터 시계 방향)
김: 그러게요. 요새 생각 있는 30대들끼리 만나면 남편이랑 살 때 영어공부를 하든, 제빵기술을 배우든 자식이랑 자기가 먹고살 수 있는 준비는 해놓고, 그 다음에 이혼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고들 하는걸요.
정: 저는 만약에 결혼하면 아예 ‘내 통장은 내 거다.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서약서를 남편한테 받으려고 해요.(웃음) 내 돈이 있어야 당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임: 사람들은 다 이혼하면 대충 살 만큼은 위자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전혀 아니에요. 제 친구가 재판까지 해서 이혼했는데, 양육비로 매달 30만원을 받기로 한 게 전부예요. 요즘 세상에 그 돈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요? 재산분할청구권 생겨서 많이 좋아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보통 사람들 이럭저럭 먹고살고 집 한 채 지닌 정도의 재산이 몇억 되나요? 거기서 30% 받아서 변호사 비용 내고,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몇천만원도 안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김: 그 돈이라도 제대로 주면 좋게요? 남편이 독신일 때야 그래도 돈을 보내죠. 일단 재혼하고 나면 쥐꼬리만한 양육비마저 안 주는 게 보통이잖아요. 남자 입장에서 볼 때는 두 집 살림하는 격이 될 테니 말이에요.
임: 사실 여자 입장에서도 전 남편한테 돈 받아 생활하는 건 부담스럽죠. 제 친구는 이혼한 후 양육비와 생활비조로 매달 170만원을 받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만하면 꽤 좋은 조건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돈에 나머지 생을 저당 잡히는 거예요. 만약 다른 남자를 사귀다가 남편한테 들키면 당장 이 돈이 끊길 테니 아무것도 못하는 거죠. 독신이 애인마저 없으면 얼마나 더 힘든데요. 정말 경제력 없는 상태에서 하는 이혼만큼 비참한 게 없어요.
정: 문제는 막상 이혼할 때는 그런 거 다 따지는 걸 치사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억지로 버티기보다는 ‘내가 벌어서 먹고살 수 있다. 갈라서자’ 이러는 걸 쿨하게 보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요즘 여자들은 헤어지는 마당에 시간 끌기 싫어서 그냥 다 두고 나와버리는 것 같아요.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은 `여러 이혼위기 사례를 통해 가족간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천: 결혼생활이라는 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항상 이혼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저도 당연히 이혼을 생각해봤죠. 하지만 구체적으로 위자료를 얼마쯤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집사람이 아이 둘을 키워야 할 테니 줄 만큼은 줘야지’ 하는 정도였죠.
임: ‘줄 만큼’이 어느 정도인데요?
천: 한 절반이오? 솔직히 그 이상은 어렵겠죠.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이고, 오늘 이야기 나온 것처럼 이혼할 때 아내가 ‘당신 재산 중에 얼마 정도는 내 몫이니 내놔라’ 하고 나오면 솔직히 당황스러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내 재산이 그렇게 되나’ 생각할 거고, 그 다음에는 ‘이 사람이 부부로 살면서도 저렇게 다 계산하고 있었구나’ 하고 무섭다고 느껴지겠죠.
김: 저는 그게 우리나라 가정의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가족을 너무 고귀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는 서로 다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그래서 돈이나 계산 같은 속물적인 것이 개입하면 안 된다고 믿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또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그런거요.
임: 그럼요. 가족에 대한 순진한 믿음, 그건 너무 무모한 거예요. 남자든 여자든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 그러잖아요. ‘이게 뭐 내 건가. 나중에 당신 이름으로 다 바꿔줄게.’ 그런데 둘 사이 나빠지면 그런 약속은 무가치해지거든요. 막상 이혼할 때 보면 그건 이미 다 다른 사람 명의로 바뀌어 있는걸요, 뭐.
천: 사실 평소에는 재테크에 무지한 것 같은 남자들도 마음먹으면 무섭게 돌변하죠.(웃음)
김: 중요한 건 가족이든 누구든 각자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개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 아닐까요. 요즘 참 똑똑해 보이는 20대들조차도 ‘사랑은 무조건 헌신하는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사는 것 같은데 그건 ‘맹한’ 짓이잖아요. 자기가 있어야 상대방도 있는 거죠.
임: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 번은 위기가 찾아오게 돼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전에 충분히 그에 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각자 자신의 모든 조건을 꺼내놓고 실질적인 이혼 시나리오를 써보는 게 ‘덜 주고 많이 받아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죠. 만약 이혼할 수밖에 없다면, 이왕 할 거 잘해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