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뿐 아니라 지난해 7월 이후 새누리당을 이끌고 있는 김무성 대표와 올해 2월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을 맡고 있는 문재인 대표가 주도하는 첫 전국선거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두 당대표의 운명이 내년 총선 결과와 연동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점을 좀 더 확장해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 재임 5년까지 포함해 9년 가까이 한국 사회를 주도해온 보수 정권에 대한 국민적 평가 의미가 담길 개연성이 높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2007년 대선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두 보수 정권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런 점에서 내년 총선은 차기 대선의 바로미터와도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총선을 통해 차기 주자들의 인물 경쟁력을 검증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대선 구도의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선과 대선의 함수관계
역대 총선과 대선의 함수관계를 살펴보면 대선 직전 치른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주도한 지도자는 대선에서 승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총선 승리 여세를 몰아 그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96년 15대 총선에서 제1야당에 오른 뒤 이듬해 15대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한 뒤 그해 12월 18대 대선에서 이겼다. 2017년 대선을 20개월 앞두고 치를 내년 총선을 ‘대선 전초전’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 같은 총선과 대선의 함수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정치 지망생 사이에서 통용되는 ‘지도자’란 ‘선거 때 함께 찍은 사진을 내걸었을 때 득표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뜻한다. 또한 본선 진출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당내 공천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도 지도자로 인식된다. 공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당권을 쥔 당대표에게 힘이 쏠리는 데는 이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깔려 있다.
20대 총선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연 문재인 대표가 당대표로서 치르는 첫 전국선거다. 다시 말해 차기 대선을 꿈꾸는 두 사람이 자신과 함께 대권가도를 내달릴 동지를 규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정치개혁 바람이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내년 총선 공천에 사상 처음으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아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김 대표는 물론 문 대표까지 원론적으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찬성 의견을 피력해 현실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
새누리당은 4월 9일 의원총회를 열고 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오픈프라이머리 등 혁신안을 추인했다. 김 대표는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당 민주주의 시작은 공천권 행사를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내년 총선 전 여야 합의로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면 한국 정치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전기가 마련된다”며 “동원된 소수 유권자가 아닌 유권자 30%가 각 당 공천에 참여하게 돼 사실상 공천 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질적인 계파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같은 공천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공천 민주화가 이뤄져야 원내 의정활동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말했다.
정당 민주화와 공천 개혁
4월 1일 오후 광주 광산구 광주송정역에서 열린 호남고속철도 개통식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와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같은 정당 민주화와 공천 개혁 등 국민적 관심이 높은 주요 이슈를 선점하고 나섰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의구심을 갖는 시선이 없지 않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당내 지역위원장 교체를 주도하고 박세일 여의도연구소장 영입에 적극 나선 것은 궁극적으로 내년 총선, 나아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고보조금의 20%를 집행하는 여의도연구원(여연)은 총선과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중요한 기구”라며 “여연 조사 결과에 따라 공천 당락이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적극적인 김 대표가 끝까지 소신을 이어갈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새정연의 경우 총선을 1년여 앞두고 당 안팎에서 ‘친노(친노무현) 기득권 지키기’에 대한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대거 공천을 받은 친노계가 문 대표 뒤에 숨어 기득권을 유지하려 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문재인 체제 출범 이후 당내 일각에서 “친노가 당권은 계속 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권을 잡기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4·29 재·보궐선거(재보선)를 앞두고 정동영, 천정배 두 호남 출신 중진 정치인이 이탈한 것을 두고 친노 주도의 새정연 구도에서 활로를 뚫기 어려운 이들이 제 살길을 찾아 나갔다고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새정연에 비판적인 이들은 친노계는 물론 486세력까지 당내 기득권 세력으로 꼽는다. 새정연의 한 당원협의회(당협) 위원장은 “16대 총선 때 ‘젊은 피 수혈’, 17대 총선 때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에 힘입어 대거 원내 진출에 성공한 486세력은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을 거쳐 현재 새정연으로 이어오는 동안 주요 당직을 장악해왔다”며 “15년 전 30대 중·후반의 ‘젊은 피’는 이미 대부분 50대의 ‘중년 피’가 됐고, 그들이 당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새정연에는 더는 젊은 피가 조직적으로 수혈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2년 대선 때 30대 후반~40대 초반 ‘포스트 386’세력과 비운동권 486 전문가 집단이 대거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것은 새정연의 ‘친노+486세력’에 실망한 이들이 대안을 안철수 후보에게서 찾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새정연에 다시 문재인 체제가 들어선 이후 ‘친노+486’ 연합군의 기득권 연장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많다. 4·29 재보선을 계기로 야권 재편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가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양대 정당에 대한 답답함과 한계로 변화 가능성이 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혁신세력이 어떤 형태로 재편돼 나타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