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열린 ‘배철수의 음악캠프’ 25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DJ 배철수가 소회를 전하고 있다.
‘음악캠프’는 1990년 3월 15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DJ 이름도, 프로그램 제목도 바뀌지 않고 25년, 현재 방송되는 프로그램 가운데 단연 최장수다. 라디오의 황금시대에 출발해 황혼기까지 살아남았다. 그때는 라디오가 음악 선생이었다. ‘황인용의 영팝스’ ‘두시의 데이트’ ‘김광환의 골든 팝스’ 같은 프로그램들로 팝에 입문한 소년소녀 중 일부는 전영혁, 성시완 같은 ‘고수’가 진행하는 ‘마스터스 클래스’로 넘어가곤 했다. 당시 라디오 키드 중에는 시중에서 구하기조차 힘든 음악들을 소장하려고 방송 내용을 통째로 녹음한 후 다시 다른 카세트테이프에 곡별로 정리하던 추억을 간직한 이가 적잖을 것이다.
팝 프로그램 춘추전국시대에 ‘음악캠프’ 의 포지션은 딱 중간이었다. ‘빌보드 톱 40’을 중심으로 최신 팝 경향을 낱낱이 소개했던 것. 한창 음악에 빠진 고교생 시절 필자는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1970년대 이탈리아 아트록을 듣고, ‘음악캠프’를 통해 최신 팝을 배워나갔다. 독서실에서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 워크맨으로 판테라나 너바나를 처음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지금 ‘음악캠프’가 처한 현실은 한국의 음악 소비 패턴과 미디어 지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음악캠프’를 얘기할 때 꼭 따라붙는 수식어는 ‘국내 유일의 팝 전문 프로그램’이다. 라디오에서 팝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1990년대 이후 국내 음악시장 주도권은 가요로 넘어갔고, 라디오에는 음악 대신 수다 위주 포맷이 자리 잡았다. DJ의 필수 덕목은 음악 지식에서 ‘입담’으로 바뀌었다. 연예인이 대거 DJ 부스로 들어오게 된 것도 짧은 시간의 변화였다.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라디오 환경을 급격히 바꿨다. 음악 프로그램 지지자들은 빠르게 인터넷으로 이탈했다. 라디오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소비했다. 현재 라디오의 주된 청취자는 출퇴근길 직장인과 학생이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집안일을 하는 주부다. 적극적인 음악 소비자는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한정적이다. ‘음악캠프’조차 몇몇 코너를 제외하면 새로운 음악을 듣기가 쉽지 않다. 이 프로그램 관계자에게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제이슨 므라즈가 정말 싫어졌어요.” 그의 히트곡 ‘I’m Yours’가 몇 년째 하루에도 수백 번씩 신청곡으로 들어오니 받는 처지에선 그럴 만도 하다. 어느 방송국에서는 라디오국장이 1000곡을 지정하고 이 노래들만 틀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청취율은 오히려 올랐다고 한다).
뉴미디어 시대에 TV는 바이럴의 원천 소스라는 새로운 기능을 얻었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기 프로그램의 재미있는 장면들이 퍼져나간다. 하지만 라디오에는 그런 기능마저 없다. 올드미디어 가운데 뉴미디어 세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대표적 아이콘이 됐다. 물론 라디오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정표 없는 교차로에 서 있는 지금의 라디오는 모바일 시대에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음악캠프’는 과연 배철수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