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을 이끌어가는 건 난쟁이 찰리와 빅이다. 어린 시절부터 공주들이 나오는 동화를 읽으며 꿈을 키운 찰리는 무도회에서 공주를 만나 난쟁이 신분에서 벗어나는 게 꿈이다. 무도회장에 가려던 찰리는 과거 백설공주를 모셨던 늙은 난쟁이 빅과 함께 소원을 이루고자 인어공주에게 다리를 줬던 마녀를 찾아가지만, 마녀는 목소리나 머리카락 대신 돈을 요구한다.
동화 속 주인공에게 현실의 때가 듬뿍 묻었다면 이런 모습일까.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등 익히 알려진 고전 속 공주들이 하나같이 예상을 깨는 언행으로 재미를 준다. 왕자와의 잠자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백설공주는 힘 좋고 잠도 없는 난쟁이가 더 멋진 남자였음을 깨닫는다. 신데렐라는 결혼한 왕자가 생각보다 돈이 없다는 걸 알고 헤어져 또 다른 ‘물주’인 다른 나라 왕자를 찾아 무도회장을 전전한다. 원작에서 사랑을 이루는 데 실패한 인어공주는 물질만능주의의 ‘난쟁이들’ 세계에선 ‘호구’ 같은 캐릭터로 나온다.
‘난쟁이들’은 충무아트홀이 2013년 젊고 재능 있는 신진 창작자를 대상으로 국내 창작 뮤지컬을 개발하고자 기획한 ‘뮤지컬하우스 블랙 앤 블루’의 최종 선정작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1회), ‘라스트 로얄 패밀리’(2회)에 이어 지난해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아무도 입 밖으로 말하진 않지만 변하지 않는 세상의 법칙/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 누가 봐도 매력 있고 집안 좋은 남잔 누가 봐도 어딜 가도 아쉬울 게 없지/ 끼리끼리 끼리끼리 만나/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나.’ 세 이웃나라 왕자들이 독특한 안무와 함께 부르는 ‘끼리끼리’는 작품 최고 히트곡.
만 15세 이상 관람 가능한 ‘어른이 뮤지컬’이라 해서 19금을 기대하면 실망할 것이다. 야한 내용은 대사로 처리하거나 그림자로 나온다. 이 작품이 ‘어른이 뮤지컬’인 이유는 현실 세태를 적나라하게 풍자하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용이 나지 않는 개천, 인생은 한 방이라는 현대인의 허상을 유쾌하게 꼬집으며 객석에 B급 웃음을 선사한다. 4월 26일까지, 서울 중구 퇴계로 387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