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9

..

정열, 자유분방한 눈빛을 보아라

셰익스피어의 초상

  • 전원경 문화콘텐츠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4-12-29 11: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정열, 자유분방한 눈빛을 보아라

    셰익스피어의 초상(추정), 작자 미상, 1600~1610년, 캔버스에 유채, 55.2×48.3cm,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 소장.

    아마도 이 초상화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예술가의 초상화가 아닐까 싶다. 영국이 자랑하는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초상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영국 런던에 있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소장번호 1번 초상화다.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는 영국을 빛낸 위인의 초상화와 사진이 10만여 점 소장돼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수집한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위치는 영국의 모든 위인 사이에서도 그만큼 확고부동하다.

    그러나 사실 이 초상화가 셰익스피어의 얼굴을 담고 있다는 확증은 없다. 개연성이 대단히 높은 작품일 뿐이다. 산도스 공작 가문의 수집품이던 전력 덕분에 흔히 ‘산도스 초상’이라고 부르는 이 그림은 턱수염을 기르고 머리가 반쯤 벗어진 남자의 상반신을 담고 있다. 산도스 가문은 1747년 이 초상화를 수집했으며, 그전 소장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 측 설명에 따르면, 이 초상화는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인 1600년부터 1610년 사이에 그려졌다. 1623년 발간된 첫번째 셰익스피어 작품집에는 ‘셰익스피어의 초상’이라는 설명과 함께 석판화 한 점이 실렸는데, 이 석판화가 바로 이 산도스 초상을 모델로 한 것이다.

    이 초상화의 모델이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사실 이 남자의 피부색은 영국인으로 보기에는 너무 어둡다. 영국인보다 남유럽인이나 유대인 피부에 가깝다. 한 비평가는 극작가인 동시에 배우였던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의 유대인 주인공 샤일록으로 분장한 모습을 그린 게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너무 빈약하다는 데 있다. 셰익스피어는 런던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글로브 극장 소속의 극작가 겸 배우였지만, 귀족이나 성직자 같은 지배 계층이 아닌 평민이었다. 이 때문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산도스 초상의 진위를 확인하려 해도 방법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국립 초상화 미술관 측 주장을 들어보면, 이 초상화가 셰익스피어의 얼굴을 담았을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 초상화 속 남자는 수수한 검은색 옷을 입고 모자를 쓰지 않은 채 포즈를 취했다. 특이하게도 금으로 된 귀고리를 하고 있는데, 이는 이 남자가 보통 남자보다 멋 부리기를 좋아했거나 배우같이 특이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검은색 옷은 당시 가장 많은 염료를 사용해야 해 비쌌다. 남자가 입은 검은색 옷은 그가 제법 부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동시에 장식이 없는 수수한 복장과 모자 없이 맨머리를 그대로 드러낸 모습은 이 남자가 귀족이 아닌 평민임을 알려준다.



    초상화 속 남자는 자신만만한 표정과 반짝이는 눈동자로 화가를 응시하고 있다. 이 눈동자는 분명 평범한 이의 것은 아니다. 그 눈 속에는 무언가 꿈꾸는 듯한 정열과 일말의 자유분방함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불타는 듯 정열적인 눈동자를 가진, 이 자유로워 보이는 평민 남자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는 음악가나 배우, 화가 같은 예술 계통 직업에 종사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623년 간행된 셰익스피어 작품집에 실린 석판화의 원본이라는 점이 이 초상화의 신빙성을 높게 하는 요소다.

    이런 이유로 국립 초상화 미술관 측은 ‘이 초상화가 셰익스피어를 모델로 했을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그리하여 작자 미상의 이 초상화는 현재도 ‘셰익스피어의 초상으로 추정됨’이라는 설명과 함께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4번 방 한가운데에 당당히 전시돼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