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 로봇, 충무, 천국, 마약…. 이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전혀 연관되지 않을 법한 이 단어들은 김밥 앞뒤로 붙는 브랜드 혹은 애칭이다.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돌 정도로 김밥은 우리와 참 끈끈한 인연을 가진 음식이다. 김밥의 유래를 두고 말이 많다. 일본 김초밥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는 설도 있지만, 조선 중기부터 김 양식을 했기에 김으로 밥과 반찬을 싸서 먹는 문화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김을 이용한 요리가 근대화를 맞아 도시락을 만나고 햄, 단무지 등과 어울리면서 우리가 지금 아는 전형적인 김밥 모습이 된 거다.
저렴한 한 끼 메뉴에서 고급화까지
가장 원초적 형태의 김밥은 충무김밥일 터다. 속 재료 없이 그냥 김에 밥만 넣어서 마는 게 전부다. 오징어무침과 깍두기가 반찬으로 따라오지만 꾸미지 않은 담백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포장마차나 떡볶이 집에서 파는 가느다란 꼬마김밥도 속 재료가 별로 들어가지 않지만 맛있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는 마약김밥이라 부르는 아주 강력한 매력을 가진 김밥도 있다. 들어간 게 별로 없어 보이지만 한 번 맛보면 다시 찾게 된다. 복잡할 거 없이 구운 김에 따뜻한 하얀 쌀밥을 싸서 먹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식사가 된다. 김으로 밥을 쌌으니 이 또한 김밥이다. 하여간 우리에겐 소박한 먹을거리로 김밥이 존재한다.
오늘의 작은 사치는 바로 김밥이다. 어떻게 김밥이 사치가 되나 싶겠지만, 요즘 들어 비싼 김밥집이 장사가 잘된다. 물론 여기서 비싸다고 해봐야 대개 5000원 미만이거나 그 내외 수준이다. 다른 음식에 비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지만, 기존 싼 김밥에 익숙한 이들에겐 좀 비싸진 김밥이다. 적어도 ‘김밥천국’에서 파는 것보다 2~3배 비싼 김밥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김밥집은 ‘김밥천국’일 거다. 가난한 이들의 한 끼를 해결해준 공로는 있지만, 김밥을 싼 먹을거리로 인식하게 한 아쉬움도 있다. ‘김밥천국’ 전에는 ‘김가네’ 김밥이 김밥의 대표명사였다. 이런 김밥 프랜차이즈 업계에 새롭게 도전한 업체가 ‘바르다 김선생’이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시작해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등에서 안테나숍 형태로 운영됐는데, 줄 서서 먹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밥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밥은 아주 조금 들어가는 대신 속 재료가 듬뿍 들어간다. 양질의 재료를 써 기존 김밥 프랜차이즈보다 2배 정도 비싸지만 소비자에게는 환영받고 있다.
‘로봇김밥’이란 흥미로운 김밥 브랜드도 있다. 로봇처럼 튼튼해지라는 뜻에서 정한 이름도 재미있고, 고추냉이를 넣은 참치마요김밥은 다른 곳에선 먹어보지 못한 매력적인 맛이다.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고봉민 김밥’도 있고, 1만5000원짜리 고가 김밥을 파는 ‘킴팝’이란 곳도 있다. 이 밖에도 5000원대를 호가하는 김밥집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수년 사이 고가 정책의 김밥집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거다.
사실 김밥이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는가. 무조건 싼 것만 찾는 이도 있지만, 좀 비싸더라도 양질의 재료를 사용한 더 맛있는 김밥을 찾는 이도 꽤 많다. 지금의 물가 수준을 고려하고 식재료를 생각하면 이런 가격대라도 아주 비싼 건 아니다. 뭐든 어떤 재료를 썼느냐에 따라 가격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른 먹거리에 관심을 갖는 이가 늘어나면서 유기농, 무농약을 비롯해 양질의 국산 식재료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좋은 식재료를 쓴 비싼 김밥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아마 가장 비싼 김밥은 집에서 직접 싼 김밥일 거다. 한 줄을 싸든 다섯 줄을 싸든 장 보는 양은 비슷한 데다, 파는 김밥보다 더 좋은 재료를 쓰고 더 정성을 들이다 보니 김밥을 싸려고 장 보는 데만 몇만 원은 들어간다. 심지어 김밥에 스테이크를 넣거나 크랩을 넣는다면 재료비는 훨씬 더 들게 된다. 여기에 노동력과 정성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비싼 김밥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든 김밥이 바로 일상의 작은 사치가 될 수 있다. 꽤나 유쾌하고 즐거운 사치다.
1년에 두세 번은 김밥을 싸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김밥 가운데 가장 맛있는 건 내가 직접 싼 김밥이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렇게 얘기한다. 심지어 김밥집을 차려도 되겠다고 하는데, 원가를 말해주면 다들 “장사하면 망하겠다”고 한다. 좋은 재료를 듬뿍 넣는데 맛이 없을 수 있겠나. 내 식으로 만들어 판다면 한 줄에 1만~2만 원은 넘어야 할 거다. 전혀 경제성 없는 김밥인 셈인데, 가족끼리 먹을 때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좀 비싸더라도 그 가치를 누리는 것이 작은 사치가 아니겠는가. 아빠표 김밥, 엄마표 김밥에는 맛 이상의 가치가 있다.
가족 위한 따뜻한 사랑의 한 줄
요즘 요리 배우는 남자가 늘었다. 특히 3040세대, 즉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 가장인 이들이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들에게 요리의 목적은 가족과의 관계 도모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만들어 가족과 함께 먹겠다는 의미다. 이런 목적으로 요리를 배우는 남자가 가장 먼저 배워두면 좋은 음식이 미역국과 김밥이다. 가족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가족 나들이 때 빠지지 않는 게 김밥이기 때문이다. 다른 걸 제대로 못해도 이 두 가지만 확실하게 할 줄 안다면 순식간에 우리 집 요리사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모든 연령대가 김밥을 먹는다. 그리고 다들 좋아한다. 김밥에 대한 기억은 세대에 따라 다르다. 40대 이상에겐 김밥이 자주 먹을 수 없는, 소풍 가서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당시 김밥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이나 소시지, 맛살, 어묵 등이 들어갔다면, 요즘에는 각자 취향에 따라 스테이크나 삼겹살, 돈가스를 넣기도 한다.
가장 전형적인 김밥은 고슬고슬 지은 밥에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고, 분홍색 소시지와 노란색 단무지, 달걀지단, 삶은 시금치 등을 기본 속 재료로 한 것이다. 아마 1970년대에도 있었던 가장 오래된 김밥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치즈나 참치를 넣은 김밥은 90년대 이후 산물이다.
김밥에 대한 로망은 나이든 사람일수록 크다. 요즘 10, 20대에게는 ‘김밥천국’과 편의점 김밥, 출근길 지하철역 입구에서 파는 은박지로 포장한 김밥 탓에 싸고 흔한 이미지를 갖게 된 김밥이 그리 로망을 가질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고급 김밥집의 등장으로 김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학교 급식이 시작되면서 도시락이 사라지고 김밥 도시락을 싸줄 기회도 사라졌다. 소풍이나 운동회에서도 김밥 말고 다른 먹을거리가 많다. 다들 맞벌이로 바쁘기에 음식을 해먹기보다 사먹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여전히 김밥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다. 가족을 위해 이번 주말에는 직접 김밥을 싸보면 어떨까. 음식으로서 김밥이 아닌, 사랑과 소통의 도구로서 말이다.
저렴한 한 끼 메뉴에서 고급화까지
가장 원초적 형태의 김밥은 충무김밥일 터다. 속 재료 없이 그냥 김에 밥만 넣어서 마는 게 전부다. 오징어무침과 깍두기가 반찬으로 따라오지만 꾸미지 않은 담백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포장마차나 떡볶이 집에서 파는 가느다란 꼬마김밥도 속 재료가 별로 들어가지 않지만 맛있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는 마약김밥이라 부르는 아주 강력한 매력을 가진 김밥도 있다. 들어간 게 별로 없어 보이지만 한 번 맛보면 다시 찾게 된다. 복잡할 거 없이 구운 김에 따뜻한 하얀 쌀밥을 싸서 먹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식사가 된다. 김으로 밥을 쌌으니 이 또한 김밥이다. 하여간 우리에겐 소박한 먹을거리로 김밥이 존재한다.
오늘의 작은 사치는 바로 김밥이다. 어떻게 김밥이 사치가 되나 싶겠지만, 요즘 들어 비싼 김밥집이 장사가 잘된다. 물론 여기서 비싸다고 해봐야 대개 5000원 미만이거나 그 내외 수준이다. 다른 음식에 비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지만, 기존 싼 김밥에 익숙한 이들에겐 좀 비싸진 김밥이다. 적어도 ‘김밥천국’에서 파는 것보다 2~3배 비싼 김밥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김밥집은 ‘김밥천국’일 거다. 가난한 이들의 한 끼를 해결해준 공로는 있지만, 김밥을 싼 먹을거리로 인식하게 한 아쉬움도 있다. ‘김밥천국’ 전에는 ‘김가네’ 김밥이 김밥의 대표명사였다. 이런 김밥 프랜차이즈 업계에 새롭게 도전한 업체가 ‘바르다 김선생’이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시작해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등에서 안테나숍 형태로 운영됐는데, 줄 서서 먹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밥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밥은 아주 조금 들어가는 대신 속 재료가 듬뿍 들어간다. 양질의 재료를 써 기존 김밥 프랜차이즈보다 2배 정도 비싸지만 소비자에게는 환영받고 있다.
‘로봇김밥’이란 흥미로운 김밥 브랜드도 있다. 로봇처럼 튼튼해지라는 뜻에서 정한 이름도 재미있고, 고추냉이를 넣은 참치마요김밥은 다른 곳에선 먹어보지 못한 매력적인 맛이다.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고봉민 김밥’도 있고, 1만5000원짜리 고가 김밥을 파는 ‘킴팝’이란 곳도 있다. 이 밖에도 5000원대를 호가하는 김밥집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수년 사이 고가 정책의 김밥집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거다.
사실 김밥이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는가. 무조건 싼 것만 찾는 이도 있지만, 좀 비싸더라도 양질의 재료를 사용한 더 맛있는 김밥을 찾는 이도 꽤 많다. 지금의 물가 수준을 고려하고 식재료를 생각하면 이런 가격대라도 아주 비싼 건 아니다. 뭐든 어떤 재료를 썼느냐에 따라 가격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른 먹거리에 관심을 갖는 이가 늘어나면서 유기농, 무농약을 비롯해 양질의 국산 식재료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좋은 식재료를 쓴 비싼 김밥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아마 가장 비싼 김밥은 집에서 직접 싼 김밥일 거다. 한 줄을 싸든 다섯 줄을 싸든 장 보는 양은 비슷한 데다, 파는 김밥보다 더 좋은 재료를 쓰고 더 정성을 들이다 보니 김밥을 싸려고 장 보는 데만 몇만 원은 들어간다. 심지어 김밥에 스테이크를 넣거나 크랩을 넣는다면 재료비는 훨씬 더 들게 된다. 여기에 노동력과 정성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비싼 김밥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든 김밥이 바로 일상의 작은 사치가 될 수 있다. 꽤나 유쾌하고 즐거운 사치다.
1년에 두세 번은 김밥을 싸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김밥 가운데 가장 맛있는 건 내가 직접 싼 김밥이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렇게 얘기한다. 심지어 김밥집을 차려도 되겠다고 하는데, 원가를 말해주면 다들 “장사하면 망하겠다”고 한다. 좋은 재료를 듬뿍 넣는데 맛이 없을 수 있겠나. 내 식으로 만들어 판다면 한 줄에 1만~2만 원은 넘어야 할 거다. 전혀 경제성 없는 김밥인 셈인데, 가족끼리 먹을 때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좀 비싸더라도 그 가치를 누리는 것이 작은 사치가 아니겠는가. 아빠표 김밥, 엄마표 김밥에는 맛 이상의 가치가 있다.
가족 위한 따뜻한 사랑의 한 줄
양질의 재료를 써서 좀 비싸더라도 고급스러운 김밥을 찾는 이가 많다.
모든 연령대가 김밥을 먹는다. 그리고 다들 좋아한다. 김밥에 대한 기억은 세대에 따라 다르다. 40대 이상에겐 김밥이 자주 먹을 수 없는, 소풍 가서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당시 김밥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이나 소시지, 맛살, 어묵 등이 들어갔다면, 요즘에는 각자 취향에 따라 스테이크나 삼겹살, 돈가스를 넣기도 한다.
가장 전형적인 김밥은 고슬고슬 지은 밥에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고, 분홍색 소시지와 노란색 단무지, 달걀지단, 삶은 시금치 등을 기본 속 재료로 한 것이다. 아마 1970년대에도 있었던 가장 오래된 김밥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치즈나 참치를 넣은 김밥은 90년대 이후 산물이다.
김밥에 대한 로망은 나이든 사람일수록 크다. 요즘 10, 20대에게는 ‘김밥천국’과 편의점 김밥, 출근길 지하철역 입구에서 파는 은박지로 포장한 김밥 탓에 싸고 흔한 이미지를 갖게 된 김밥이 그리 로망을 가질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고급 김밥집의 등장으로 김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학교 급식이 시작되면서 도시락이 사라지고 김밥 도시락을 싸줄 기회도 사라졌다. 소풍이나 운동회에서도 김밥 말고 다른 먹을거리가 많다. 다들 맞벌이로 바쁘기에 음식을 해먹기보다 사먹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여전히 김밥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다. 가족을 위해 이번 주말에는 직접 김밥을 싸보면 어떨까. 음식으로서 김밥이 아닌, 사랑과 소통의 도구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