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과 유사한 일본 돈부리에는 반찬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
1990년대부터 비빔밥은 한국 대표 음식이 됐다. 임금이 먹던 음식이라는 둥 하면서 예부터 고급한 음식인 양 포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밥 위에 반찬 올려 비벼 먹던 것이 비빔밥의 유래다. 한 그릇의 비빔밥에는 고기도 있고 채소도 들었다. 밥-탄수화물, 고기-단백질, 채소-식이섬유의 구성을 보면 이 한 그릇의 비빔밥으로 영양 균형을 맞춰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차려내기도 좋다. 간편식이다. 패스트푸드다.
비빔밥을 두고 패스트푸드라 하면 어색해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체로 패스트푸드는 건강에 안 좋은 음식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건 알 수 없는 음식재료로 만든 패스트푸드를 말하는 것이지, 모든 패스트푸드가 나쁜 것은 아니다. 미리 조리해둔 음식재료로 간편하게 빨리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패스트푸드이니, 미리 만들어놓은 밥과 반찬으로 한 그릇의 비빔밥을 뚝딱 만들면 이도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의 대표적 패스트푸드인 햄버거와 비교해보면 빵-탄수화물, 패티-단백질, 토마토 등 채소-식이섬유의 영양 구성도 비슷하다.
일본인의 밥상 구성이 한국인의 밥상 구성과 비슷하다. 밥과 반찬, 국으로 이뤄졌다. 두 나라 밥상을 나란히 놓고 서양인에게 한국 것과 일본 것을 구분해보라 하면 헷갈려 할 정도다. 그러면 일본에도 비빔밥과 국밥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들도 여러 사정에 따라 밥+반찬 또는 밥+국으로 된 한 그릇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문화란 참 묘한 것이 일본에서는 밥+반찬은 아주 흔한데 밥+국은 (거의) 없다. 일본인은 밥을 국에 말아 먹는 일을 극도로 기피한다. 밥 먹는 예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 문화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렇다. 그 대신 밥을 차에 말아 먹는 전통은 있다. 이를 오차즈케라 한다. 반면 밥+반찬 구성은 가정식만이 아니라 외식업계에도 널리 퍼졌다. 돈부리다. 한국말로 옮기면 덮밥이다.
돈부리는 한 그릇의 밥 위에 대체로 한 종류의 반찬이 오른다. 돼지고기 반찬, 쇠고기 반찬 따위가 밥 위에 오르는 것이다. 이를 먹을 때는 비비지 않는다. 위에서 파내려가듯 밥과 반찬을 한 입씩 먹는다. 음식 때깔이며 먹는 방법이 달라도 밥+반찬이라는 구성에서 비빔밥과 돈부리는 같은 계통의 음식이라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는 돈부리 전문점이 많다. 대체로 도심에 있다. 월급쟁이들의 점심으로 돈부리가 인기다. 값이 싸고 빠른 시간에 간단히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부리 달랑 하나에 맑은 된장국, 채소절임이 조금 나온다. 일본 돈부리가 따로 여러 반찬을 내놓지 않는 것은 ‘밥 위에 올려진 것이 반찬’이라는 관념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음식인 듯 보이지만 돈부리 종류가 워낙 많아 끼니마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한국 비빔밥은 밥+반찬으로 한 그릇이 차려진 음식인데도 그 옆에 너댓 종류의 반찬이 또 깔린다. 밥 위에도 반찬이 있고 밥그릇 밖에도 반찬이 있다. 비빔밥을 비벼 밥과 반찬을 한 입에 넣고 나서 또 입에 반찬을 넣는 식으로 음식을 먹는다. 이 중복된 반찬 섭취는 밥 위에 올려진 것이 반찬이라는 관념이 없어서다. 그런데 이 ‘밥 위의 반찬’ 관념이 애초부터 없었느냐 하면, 꼭 그렇지 않다. 가정에서는 비빔밥을 먹을 때 그렇게 반찬을 많이 깔지 않는다. 한국 식당 비빔밥에 반찬이 여럿 나오게 된 까닭은 비빔밥의 유래를 임금님 밥상 같은 데서 찾으면서 생긴 일일 것이다. 비빔밥 옆에 잔뜩 차려지기는 하지만 거의 먹지 않는 반찬들을 보면, 일본 덮밥의 예를 따라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