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서윤미 대본·연출·작곡) 역시 일종의 ‘어두운 버전의 동화’다. 잘 알려진 ‘메리 포핀스’ 이야기에서 가정교사 모티프만 취해 만든 범죄 스릴러다. ‘메리 포핀스’는 영국의 여성 아동문학가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가 쓴 소설로, 월트디즈니사가 뮤지컬 영화로 제작했으며, 월트디즈니사와 캐머런 매킨토시가 뮤지컬로도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에서 가정교사이자 유모인 메리 포핀스는 마법의 가방에서 온갖 물건을 꺼내고 아이들을 즐거운 곳으로 데려간다. 그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우산을 타고 홀연히 사라진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에서도 메리가 실종된다. 하지만 이유는 전혀 다르다. 1926년 어느 날 저명한 심리학자 그란첸 슈워츠 박사의 대저택에 화재가 일어난다. 그 일로 박사는 죽고, 박사가 입양해 키우던 아이 네 명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가정교사 메리가 전신 화상을 입으면서 아이들을 구해낸 덕분이다. 이상한 건 아이들이 그날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건 다음 날 메리가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공연은 사건이 있은 후 12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한다. 경찰은 이 사건을 접으려 하지만, 당시 화재에서 목숨을 건진 아이 중 한 명인 한스가 변호사가 돼 이 사건에 집착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 네 명이 다시 모이고, 끈질긴 추론 끝에 의식의 저편에 숨은 트라우마를 하나씩 밝혀낸다.
이 작품은 시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그로테스크하고 미스터리한 느낌을 한껏 살렸다. 범죄 스릴러 뮤지컬 ‘쓰릴 미’가 그랬듯, 간간이 3도와 5도 중심의 민속적 음계가 피아노 연주로 이어지면서 옛이야기라는 느낌을 부각한다. 프레임 여러 개를 겹쳐놓은 듯한 무대는 한 꺼풀씩 기억을 벗겨내는 이야기 구조와 잘 어우러진다.
전체적인 연출도 작품 콘셉트를 잘 드러낸다. 프롤로그에서 그림자 인형극으로 전체 내용을 암시하는 장면이나 등장인물이 가운데 회전무대를 중심으로 마치 오르골 위의 인형처럼 움직이는 동선은 기억을 조종당하는 인물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수화를 연상시키는 안무도 인상적이다.

12년 전과 현재가 교차하는 이야기 구조라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배우들이 시간의 흐름과 캐릭터를 잘 살렸다. 정상윤, 장현덕, 전성우, 강하늘, 임강희, 정운선, 송상은, 김대현, 윤나무, 추정화, 태국희 등이 출연한다. 7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