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의 한 장면.
수사 결과 이 일당은 2006년 사기도박단을 조직해 최근까지 17회에 걸쳐 전국에서 고른 남성 재력가 5명에게서 10억 원을 뜯어냈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 5명의 피해금액은 1000만 원에서 5억 원까지 다양했다. 이들의 도박 행각을 계획한 총책 김씨는 유인책으로 미모의 여성 2명을 고용했다. 40대 여성은 50~70대 노년층을, 30대인 또 다른 여성은 40대 중년층을 공략했다. 피해자들은 사기도박단의 먹이가 돼 거액을 날린 사실에 허탈해하면서도 자신과 잠자리까지 함께 한 여성조차 사기단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믿지 못했다고 한다. 그 여성도 자신과 같은 피해자일 뿐, 자신을 속였을 리 없다면서. 그만큼 상대의 심리를 파악해 공략하는 범죄 수법이 치밀하고 전문적이었던 탓이다.
마술사를 능가하는 현란한 손기술과 첨단 과학 장비까지 등장하는 사기도박판에서 보통사람이 도박단의 수법을 눈치채고 돈을 잃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법원은 “도박은 2인 이상의 자가 상호 간에 재물을 놓고 우연한 승패에 의해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사기도박과 같이 도박 당사자의 일방이 사기의 수단으로써 승패의 수를 지배하는 경우에는 우연성이 결여돼 사기죄만 성립하고 도박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확립해놨다.
즉, 사기도박에 걸린 피해자는 정해진 수법에 따라 돈을 잃게 돼 있고 도저히 이길 수 없으므로 사기죄의 피해자가 될 뿐 도박죄의 공범이 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도박죄의 공범이 되지 않으므로 범죄자에게도 도박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경위야 어떻든 수차례 도박판에 가담해 게임을 즐긴 피해 남성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일까. 도박은 여러 판이 돌게 마련이다. 사기도박단도 매번 술수를 부리지는 않고, 바람잡이 등을 내세워 돈을 잃어주기도 하면서 일정한 판을 정해 거액을 따내는 수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정상적으로 돌아간 여타의 판에서는 피해자가 돈을 따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적어도 그 판에서는 피해자가 범죄자들과 함께 도박을 즐긴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2010년 2월께 일명 ‘섯다’라는 화투 도박으로 수백만 원을 잃자, 사기도박을 통해 만회할 계획으로 모텔 천장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뒤 상대방의 화투 패를 보는 수법을 동원해 730여만 원을 챙긴 사람에 대해 1, 2심 모두 사기와 도박죄를 함께 인정하고 징역 4월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경우에도 “피고인이 돈을 딴 후 사기도박을 숨기기 위해 얼마간 정상적인 도박을 했다 하더라도 이는 사기죄의 실행 행위에 포함된다. 따라서 피고인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기죄만이 성립하고 도박죄는 따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