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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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는 기차는 고달파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1-14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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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오전인데도 서울 지하철 상봉역은 붐빕니다. 경춘선 승차장에는 춘천에 가려는 승객이 출발 전부터 몰려듭니다. 무임승차권을 받은 65세 이상 노인이 대부분입니다. 승객들에게서는 출발선에서 대기 중인 단거리 육상선수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앉아서 편하게 80분을 가거나, 서서 불편하게 80분을 가야 합니다.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자리에 앉지 못한 노인들은 우르르 내려 20분 뒤에 올 다음 열차를 기다립니다.

    기자는 그 기세에 눌려 멀찌감치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연인은 사이좋게 앉아 갈 희망을 처음부터 버리고 한쪽에 마주 보고 섭니다. 40, 50대 승객이 앉으려면 ‘최대한 늙어 보이기’ ‘잠든 척하기’ 등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앉은 승객 얼굴에는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는 표정이 가득합니다. 그게 힘들다면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야 합니다. 물론 귀를 닫는 사오정이 돼야 합니다.

    갈 때는 참을 만했습니다. 처음 타보는 경춘선이니 신기했지요.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습니다. 서울에서 서서 온 시간을 포함해 3~4시간을 서서 가려니 슬슬 짜증과 피로가 밀려왔습니다. 꾸부정하게 서서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려니 허리도 아파옵니다. 예비 대학생 딸과 함께 선 아저씨는 “무임승차권을 없애버려야지. 매일 서서 학교를 어떻게 다니느냐”고 들으란 듯 소리칩니다.

    춘천 가는 기차는 고달파
    솔직히 서서 오가는 경춘선은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무임승차권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에는 반대합니다. 아픈 두 다리를 참게 한 건 저와 나란히 서서 가는 노인들이었습니다. 경춘선을 타기 전에는 ‘젊은이는 서고 노인은 앉는다’고 생각했지만, 자리를 못 잡은 노인들도 고스란히 80분을 서서 가야 합니다. 빛바랜 ‘참전 유공자’ 배지를 등산 모자에 단 할아버지는 경춘선을 자주 탄다고 하더군요. 춘천에 특별히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자니 돈이 들어 갈 곳이 없고, 춘천에 내려 시내 한 바퀴 걷고 오면 하루가 끝나기 때문이라는군요. 많은 노인이 소일하는 공간이 지하철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우리가 젊다고 모른 척하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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