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유럽축구연맹(UEFA)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AC 밀란 선수들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구단주(가운데·현 이탈리아 총리)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국가대표 경기라면 나도 새벽 중계방송을 놓칠까봐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으며 밤을 지새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울시청 광장이나 세종로 네거리를 경기 시작 훨씬 전부터 어슬렁거린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그 열정으로 결혼을 했으면…” 하고 혀를 찬다.
이런 노력이 성가시거나 힘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응원하는 마음가짐에 있다. 이상하게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응원하면 3·1운동 때 만세 부르던 선열들의 심정이 이해된다. 응원하는 팀과 내가 한 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세르조 크라뇨티(70)는 1992년 SS라치오를 인수해 2003년까지 스쿠데토 한 번과 두 번의 이탈리아컵 그리고 슈퍼이탈리아컵을 따낼 정도로 최상의 팀을 만들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분식회계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됐다. 모기업이 휘청거리자 SS라치오는 자금 압박을 받았고, 이를 타개하고자 모든 선수를 이적시장에 내놓았다.
SS라치오의 등불인 파벨 네드베트(38·유벤투스에서 은퇴)와 영원한 캡틴이었던 알렉산드로 네스타(34·AC밀란) 등 SS라치오의 영광을 상징하던 선수들이 떠나게 됐다. 그러자 팬들은 울면서 크라뇨티를 비난했고, SS라치오 본부 앞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폭력시위도 불사했다(필자가 10년 유학생활 동안 로마에서 시위를 목격한 것은 모두 축구와 관련해서다).
SS라치오는 1998년 5월 이탈리아 프로축구 클럽팀 이름으로 주식시장에 상장한 첫 팀이었다. 팬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줄 알면서도 주식을 추가 매수하는 애정을 보였다. 결국 구단주는 2004년 클라우디오 로티토(53)로 바뀌었다. 로티토는 일찍이 크라뇨티가 구단을 인수했을 때 팬들과 경기장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라치오! 넌 혼자가 아니라 항상 나와 함께 있어”란 노래를 부르면서 SS라치오 사랑을 몸소 보여준 인물. 팬들 역시 그가 SS라치오와 함께하리라 굳게 믿었다.
구단주의 이런 모습은 애정을 보내는 팬들에 대한 예의이자 서비스다. 이탈리아 총리이며 AC밀란 구단주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3)는 어릴 때부터 AC밀란의 광적인 팬이었다. 그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늘 팬들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밀란을 응원하던 사람이었다.
지난해 7월 자금 압박으로 AS로마 구단을 팔았지만, 로셀라 센시(39)는 여전히 AS로마의 여성 구단주다. 2008년 8월 그의 아버지이자 전 구단주인 프랑코 센시가 사망했을 때 많은 AS로마 팬은 15년 동안 AS로마를 지키며 동고동락한 센시를 조문하러 휴가지에서 돌아왔다. 6∼7시간을 기다려 조문을 한 뒤 주변 광장을 맴돌며 AS로마 노래를 합창했다. 이탈리아 남성들은 “마누라는 바꿔도 축구팀은 바꿀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런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은 바로 팀과 내가 하나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이탈리아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K리그의 구단주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