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뜨거운 사람이다. TV 시사토론 진행자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첫 출근길에 ‘복장 검열’에 걸리더니, 정치 입문 후 진행자에서 패널로 바뀐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도끼와 단검이 쏟아져나왔다. 이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구구절절이 맞는 말을 하는데도 감성적으론 호감을 얻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고, 한국 사회에서 호불호가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정치인이 됐다.
바로 이 점이 정치인 유시민의 자산이자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진면목을 미디어에 비친 모습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좋든 나쁘든 미디어라는 거울에 비치는 얼굴과 실제 얼굴이 일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인들이 쓴 책은 진면목을 간파하는 중요한 코드다. 적지 않은 정치인이 책을 내지만, 그들의 무의식에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포부와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는 대개 나르시시즘에 기인한다. 원론적으로는 정쟁 때문에 생긴 오해와 왜곡, 그로 인한 의도적 비하로 불운해진 정치인들이 기탄없는 견해를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정치인이 드골이나 처칠의 자서전처럼 의미 있는 책을 낸 기억은 없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참여정부 정통성의 중심에서 공과(功過)를 걸머진 처지라 할 말이 없을 리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가 책을 낸다면 ‘유시민류’의 거침없는 주장이 가득한 통렬한 내용의 회고록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야인으로 돌아가 첫 번째로 낸 책은 의외로 ‘청춘의 독서’(웅진 펴냄)다. 상투적인 기대에 대한 의외의 일격일 수도 있고, 유시민다운 정교함에서 나온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제목부터 그러하다. ‘청춘의 독서’는 다분히 중의적이다. 일견 이 시대의 청춘에게 권장하는 도서목록으로 읽힐 수도, 정치인 유시민이 청춘기에 마주한 독서일기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펴 읽어보면 유시민이 품고 있는 포부와 정치적 지향을 독서라는 코드로 치환한 자서전의 성격이 짙다. 그가 청년기에 읽었던 책을 다시 돌아보며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독서’라는 매개를 통해 우회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달라진 유시민의 모습이 여기에도 숨어 있는 것이다.
과거의 그였다면 분명 ‘나는 말한다’와 같은 제목을 달고 거침없는 논리를 전개했을 터. 하지만 그는 책에서 저자의 생각과 사상을 빌려 자신의 견해를 녹여나가는 소프트한 방식을 들고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은 정치인 유시민의 수상록 혹은 정견록이라고 해도 좋다. 한 시대의 풍운아로 살아온 정치인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만하다. 언뜻 한 지식인의 독서 체험을 쓴 것 같지만, 사실상 자신의 논지를 독자에게 설파하는 정치인의 책을 써낸 것이다. 이 책은 일단 이런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볼 수 있다. 논지를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정치인 중 스스로 책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은 역량이 부족하고, 두 번째는 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이 둘을 모두 가진 사람이고, 그는 스스로 이 장점을 알고 활용한 셈이다.
책으로 돌아가보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출발해 ‘공산당 선언’ 등 총 14권의 독서 체험을 다뤘다. 목록만으로도 유시민이 이 책을 단순히 독서 혹은 책읽기에 대한 에세이로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숙독하다 보면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우선 책 자체의 매력이 크다는 점, 다시 말해 그의 지적 역량과 인식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날카로운 사람인지를 간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책은 일단 읽기 쉽고 편하다. 또 이 책을 읽은 다음 굳이 원전을 따로 읽지 않아도 될 만큼 전달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 책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유시민은 한 사람의 지식인이기 전에 이미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지자로서 읽는 사람은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 모르나, 중립적 위치에서 읽는 사람은 스스로의 중심을 잡고 비판적으로 읽기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유시민은 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스스로를 발가벗긴 셈인데, 어쩌면 자서전을 쓴 것보다 더 분명하게 벗긴 것이니 앞으로 그의 행보와 이 책의 일치점을 교차해 바라본다면 재미있는 관찰이 될 듯하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바로 이 점이 정치인 유시민의 자산이자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진면목을 미디어에 비친 모습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좋든 나쁘든 미디어라는 거울에 비치는 얼굴과 실제 얼굴이 일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인들이 쓴 책은 진면목을 간파하는 중요한 코드다. 적지 않은 정치인이 책을 내지만, 그들의 무의식에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포부와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는 대개 나르시시즘에 기인한다. 원론적으로는 정쟁 때문에 생긴 오해와 왜곡, 그로 인한 의도적 비하로 불운해진 정치인들이 기탄없는 견해를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정치인이 드골이나 처칠의 자서전처럼 의미 있는 책을 낸 기억은 없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참여정부 정통성의 중심에서 공과(功過)를 걸머진 처지라 할 말이 없을 리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가 책을 낸다면 ‘유시민류’의 거침없는 주장이 가득한 통렬한 내용의 회고록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야인으로 돌아가 첫 번째로 낸 책은 의외로 ‘청춘의 독서’(웅진 펴냄)다. 상투적인 기대에 대한 의외의 일격일 수도 있고, 유시민다운 정교함에서 나온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제목부터 그러하다. ‘청춘의 독서’는 다분히 중의적이다. 일견 이 시대의 청춘에게 권장하는 도서목록으로 읽힐 수도, 정치인 유시민이 청춘기에 마주한 독서일기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펴 읽어보면 유시민이 품고 있는 포부와 정치적 지향을 독서라는 코드로 치환한 자서전의 성격이 짙다. 그가 청년기에 읽었던 책을 다시 돌아보며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독서’라는 매개를 통해 우회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달라진 유시민의 모습이 여기에도 숨어 있는 것이다.
과거의 그였다면 분명 ‘나는 말한다’와 같은 제목을 달고 거침없는 논리를 전개했을 터. 하지만 그는 책에서 저자의 생각과 사상을 빌려 자신의 견해를 녹여나가는 소프트한 방식을 들고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은 정치인 유시민의 수상록 혹은 정견록이라고 해도 좋다. 한 시대의 풍운아로 살아온 정치인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만하다. 언뜻 한 지식인의 독서 체험을 쓴 것 같지만, 사실상 자신의 논지를 독자에게 설파하는 정치인의 책을 써낸 것이다. 이 책은 일단 이런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볼 수 있다. 논지를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정치인 중 스스로 책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은 역량이 부족하고, 두 번째는 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이 둘을 모두 가진 사람이고, 그는 스스로 이 장점을 알고 활용한 셈이다.
책으로 돌아가보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출발해 ‘공산당 선언’ 등 총 14권의 독서 체험을 다뤘다. 목록만으로도 유시민이 이 책을 단순히 독서 혹은 책읽기에 대한 에세이로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숙독하다 보면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우선 책 자체의 매력이 크다는 점, 다시 말해 그의 지적 역량과 인식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날카로운 사람인지를 간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책은 일단 읽기 쉽고 편하다. 또 이 책을 읽은 다음 굳이 원전을 따로 읽지 않아도 될 만큼 전달력도 뛰어나다.
박경철<br>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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