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케이브, ‘소리 나는 옷’, Mixed Media, 240x65x50
처음 작품을 봤을 때 든 생각은 ‘작가가 아프리카 출신인 것 같다’였는데요, 장식이 잔뜩 붙은 옷이 아프리카의 민속의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죠. 옷에 달린 가면이 그런 확신을 더해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과 달리 작가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흑인이었습니다(근원을 따지자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이겠지만요). 다음으로 든 의문은 왜 제목이 ‘소리 나는 옷’일까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작가는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춤을 추는데, 그때 옷에 달린 장식들이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은 걸까요? 1991년 LA에서 일어난 ‘로드니 킹 구타사건’을 보며 작가는 흑인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땅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보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흑인들을 떠올렸죠. 그는 나뭇가지를 모아 8cm 정도로 자른 뒤 안쪽에 구멍을 뚫고 자신이 디자인한 옷 위에 하나하나 답니다. 완성한 옷이 너무 무거워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기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춤을 추게 됐고, 이때 가지들이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에 매료됐다고 하네요.
자신이 만든 옷 안에서만큼은 피부색이나 성별, 출신 등이 모두 가려진다는 사실에 주목한 작가는 이후 벼룩시장이나 중고숍에서 구한 재료, 예컨대 낡은 옷감이나 구슬, 새나 꽃 모양의 도자기 장식, 병마개, 녹슨 금속, 나뭇가지, 인모 등 ‘쓸모없는’ 재료를 이용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옷들을 탄생시키는데요,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대접받기 일쑤였던 흑인에 대한 그의 희망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원래 패션을 전공한 작가가 흑인 스타일의 춤으로 유명한 안무가 앨빈 에일리(Alvin Ailey)에게서 춤을 배웠다는 사실도 언급해야겠네요.
홀어머니 밑에서 6형제가 가난하게 살았던 환경 때문에, 물려받은 낡은 옷으로 입고 싶은 옷을 만들며 자랐던 그는 놀라울 만큼 정교한 바느질 솜씨로 ‘옷’이자 ‘조각’인 작품을 만들어내고 ‘퍼포먼스’까지 펼치는데요, 특히 작가와 작품이 하나가 돼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는 부두족(Voodoo) 주술사의 춤처럼, 인종차별이라는 악덕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에 준엄한 경고를 내림과 동시에 흑인이 가진 전통이 오늘날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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