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b> 강수돌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188쪽/ 6800원
비록 큰 위기를 겪었지만 21세기 초입에는 너나없이 노력하면 부자가 될 것 같았다. 부자 아빠, 10억 만들기, 종자돈 모으기, 노후 대책, 부동산, 펀드, 경제와 투자론 등을 다룬 부자서가 상종가를 쳤으니 말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성공이란 담론은 수그러지고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공 우화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라’고 속삭이지만, 그것은 자족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말과 별반 다름이 없어졌다. 이제 인간은 영악스러울 정도로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됐다.
책 시장이 이 정도로 변했으니 세상살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과거에는 동네 골목대장만 돼도 살 만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 시민과 경쟁해야 하는 잔혹한 세상이 됐다. 시골마을 이장이면서 고려대 교수이기도 한 강수돌은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에서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쟁사회를 ‘팔꿈치 사회’라는 말로 표현한다.
먼저 고지에 오른 사람이 다음 사람이 올라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세상이니 가지지 못한 사람은 더욱 고지에 오르기 어렵다. 그런데도 세상은 늘 줄을 세운다. 그 줄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사람들은 일에 중독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은 늘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가정은 또 어떤가. 가정은 이제 더 이상 사랑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잘 가동되는 냉장고가 놓인 ‘버스정류장’에 불과하다. 직장을 ‘가정사의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로 여길 정도다. 아이들은 노동하는 어른들과 삶의 의미나 행복을 나눌 시간이 없다. 그저 정류장에 간간이 내려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만 챙겨 먹고 바삐 떠난다. 그렇다면 학교는? 하루하루 배움의 즐거움과 깨우침의 행복을 느끼는 곳이 아니라 야간 자율학습의 고통스러움과 시험 점수, 입시 경쟁의 비참함을 감수해야 하는 현장일 뿐이다.
본질적 사태가 이런데도 사람들은 연대하거나 단결하지 않고 경쟁과 분열의 패러다임 안에서 오로지 ‘더 높은 사다리 오르기’ 게임, 즉 경쟁의 내면화에 열중한다. 자본이 강제하는 생존경쟁을 마치 삶의 논리인 듯 굳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엄청난 폭력 앞에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무릎 꿇고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는 ‘강자와의 동일시’를 일상화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참된 내면과 점점 멀어진다. 겉으로는 부, 권력, 명예, 외모, 건강을 과시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불만족에 시달리는 표리부동의 삶을 살게 된다.
저자는 상품경쟁, 생존경쟁, 시장경쟁은 결국 우리를 합리적으로 분열시키는 메커니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런 경쟁에서는 ‘누가 일등을 하는가’와는 무관하게 모두가 권력과 자본의 지배에 종속된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생존에 대한 두려움, 강자와의 동일시, 경쟁의 내면화가 초래하는 자기소외나 자기고립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관계적 존재’로 다시 서려는 소통과 연대를 통해 ‘함께, 당당히’ 나서 문제 상황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
소통과 연대를 담아내는 밑그림의 기저에는 ‘부자 되기’가 아니라 ‘소박하게 살기’가 삶의 새로운 비전으로 공유돼야 한다. 저자가 그린 밑그림의 핵심은 공정한 시장에 맡겨야 할 것과 민주적 정책에 맡겨야 할 것의 명확한 구분을 비롯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사회적 자원의 민주적 재분배를 통한 재원 조달, 일자리 내용의 변화, 경제·경영 분야의 구조혁신 등이다. 밑그림을 잘 그려야 ‘부유한 임금노예’에서 벗어나 이웃이나 동지와 더불어 대안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전들은 개방화, 탈규제화, 민영화,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노선을 걷는 현 정부의 정책들과 정면 배치된다. 하지만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비춰볼 때 어떻게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시골 마을에서 주민들과 ‘소박하게 살기’를 실천하는 한 학자가 제시하는 비전들을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삶의 호흡을 한번 조정해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