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직한 지 5년 된 전직 시골 초등학교 교장이다. 여생을 자식들과 보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까지 했지만 자식들은 함께 사는 걸 거부한다. 대안으로 내놓은 게 아파트 단지에 두 채의 아파트를 사서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에 사는 것. 저녁을 차려놓고 아들네를 불러 함께 식사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는다. 어느 날 저녁 우연히 불 꺼진 아들네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돌아 나오는데 앞집 여인에게서 아들네가 촛불을 밝히고 식사 중이라는 사실을 듣고 망연자실한다.” 박완서 씨의 ‘촛불 밝힌 식탁’ 중에서
여성동아 장편소설 당선자들의 모임인 ‘여성동아 문우회’ 소속 작가 18명이 가족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모음집 ‘촛불 밝힌 식탁’(동아일보사 펴냄)을 엮었다.
첫머리를 장식하는 유춘강 씨의 ‘쇼윈도 패밀리’는 게이이자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엄마’라 부르며 사는 딸과 딸보다 더 철없이 산 아버지의 이야기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녀, 아니 모녀의 사연은 사랑으로 이룬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윤명혜 씨의 ‘삼태기골’은 쉰한 살에 재취로 들어갔다 남편의 죽음 이후 의붓자식들과의 의례적인 관계 속에서 껍데기로 남아버린 한 여인의 한 줌 인생과 내적인 고통을 담담히 그려낸다.
우애령 씨의 ‘장달 씨의 희생에 관한 전설’은 소시민 장달 씨의 유쾌하지만 때론 연민이 느껴지는 소소한 일상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그의 일상은 마누라와 밤일도 잘되지 않아 매일 구실 찾기에 바쁘다. 또 권혜수 씨의 ‘굿바이 엄마’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고 통곡하는 딸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자신의 얘기로 받아들일 만큼 생생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밖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김정희 씨의 ‘시간을 태우다’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송은일 씨의 ‘써니를 위하여’ 등 16편의 작품들은 가족의 상처를 숨김없이 드러내거나, 혹은 애써 추억 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낮은 곳에서 행복을 꿈꾸는 보통사람들의 감동적인 삶은 때로는 영화처럼 아름답게, 때로는 현실보다 더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상실의 시대에 가족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시대와 사람은 바뀌어도 가족은 변하지 않는다. 가족의 끈은 그 어떤 것보다 질기고 강하다. 가족과 따로 또 같이 의미를 주고받는 것,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이 아닐까.
여성동아 장편소설 당선자들의 모임인 ‘여성동아 문우회’ 소속 작가 18명이 가족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모음집 ‘촛불 밝힌 식탁’(동아일보사 펴냄)을 엮었다.
첫머리를 장식하는 유춘강 씨의 ‘쇼윈도 패밀리’는 게이이자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엄마’라 부르며 사는 딸과 딸보다 더 철없이 산 아버지의 이야기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녀, 아니 모녀의 사연은 사랑으로 이룬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윤명혜 씨의 ‘삼태기골’은 쉰한 살에 재취로 들어갔다 남편의 죽음 이후 의붓자식들과의 의례적인 관계 속에서 껍데기로 남아버린 한 여인의 한 줌 인생과 내적인 고통을 담담히 그려낸다.
우애령 씨의 ‘장달 씨의 희생에 관한 전설’은 소시민 장달 씨의 유쾌하지만 때론 연민이 느껴지는 소소한 일상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그의 일상은 마누라와 밤일도 잘되지 않아 매일 구실 찾기에 바쁘다. 또 권혜수 씨의 ‘굿바이 엄마’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고 통곡하는 딸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자신의 얘기로 받아들일 만큼 생생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밖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김정희 씨의 ‘시간을 태우다’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송은일 씨의 ‘써니를 위하여’ 등 16편의 작품들은 가족의 상처를 숨김없이 드러내거나, 혹은 애써 추억 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낮은 곳에서 행복을 꿈꾸는 보통사람들의 감동적인 삶은 때로는 영화처럼 아름답게, 때로는 현실보다 더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상실의 시대에 가족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시대와 사람은 바뀌어도 가족은 변하지 않는다. 가족의 끈은 그 어떤 것보다 질기고 강하다. 가족과 따로 또 같이 의미를 주고받는 것,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