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추위 피하고 싶을 때, 태국 끄라비

[재이의 여행블루스] 한국 겨울과 가장 대비되는 휴양지… 바위산, 정글, 석회암 절벽의 매력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6-02-12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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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라비의 상징 라일레이 비치. GETTYIMAGES

    끄라비의 상징 라일레이 비치. GETTYIMAGES

    대한민국은 여전히 겨울 한복판이다. 코끝이 얼어붙는 한파와 잿빛 하늘 아래서 사람들은 본능처럼 따뜻한 곳을 떠올린다. 태국 남부에 자리한 끄라비는 한국 겨울과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는 풍경을 가진 휴양지다. 눈 대신 햇빛이 내리고, 두꺼운 외투 대신 가벼운 옷차림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지독한 추위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이곳은 망설임 없이 떠올릴 수 있는 여행지다. 

    한국에서 끄라비까지는 태국 수도 방콕을 거쳐 국내선을 한 번 더 타야 닿을 수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동이지만 그 여정만큼이나 계절을 건너왔다는 실감도 분명해진다. 공항을 나서는 순간 습기를 머금은 공기와 따뜻한 바람, 강한 햇빛, 그리고 야자수 그림자가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준다. 끄라비 풍경은 한 장면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해변과 바다만 떠올리기 쉽지만 바위산과 정글, 석회암 절벽이 어우러진 독특한 지형을 품고 있다. 바다에서 곧장 솟아오른 석회암 절벽이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숨 쉬듯 일렁인다.

    기암괴석이 외부 소음 차단 

    끄라비를 대표하는 해변 아오낭은 여행 거점이다. 길게 이어진 해변을 따라 숙소와 레스토랑, 마사지 숍이 모여 있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필요한 모든 것이 가까이 있음에도 도시 특유의 번잡함을 찾아볼 수 없다. 바닷가에서는 하루 종일 롱테일 보트가 오간다. 아침에는 조용히 산책하기 좋고, 해가 기울 무렵이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석양이 석회암 절벽에 스며든다. 하루의 끝을 재촉하지 않는 풍경 덕분에 저녁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라일레이 비치는 끄라비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다. 육로로는 접근할 수 없어 아오낭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해변 뒤로 우뚝 솟은 절벽, 바닷물 위로 드러난 기암괴석이 외부 소음을 차단해 라일레이와 프라낭 비치는 마치 하나의 독립된 세계처럼 존재한다. 이곳 해변은 물빛부터 다르다. 얕고 투명한 바다 위로 햇빛이 반사되고, 모래는 발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다. 파도는 크지 않으며, 바다는 오래 바라보고 있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절벽 아래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클라이머들이 바위를 오르지만 그 움직임조차 풍경 일부처럼 자연스럽다. 

    라일레이에서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거나 바다에 발을 담근 채 오래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재촉하지 않는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이곳에서는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삶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다. 



    바다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홍섬, 포다섬, 치킨섬을 잇는 아일랜드 호핑 투어도 괜찮은 선택이다. 각 섬 규모는 작지만 물빛과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 스노클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산호 사이를 오가는 열대어와 잔잔한 물결 아래로 드러나는 바다의 질감, 배 위에서 맞는 바람과 햇빛은 그 자체로 휴식이 된다.

    끄라비의 또 다른 얼굴은 내륙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정글 한가운데 자리한 ‘에메랄드 풀’과 ‘핫 스프링’은 숨은 쉼터다. 석회질이 녹아든 에메랄드빛 물은 햇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따뜻한 온천수는 여행자의 긴장을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관광지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주변은 조용하고 자연스럽다.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이곳에서 휴식은 특별한 연출이 아니라, 자연이 제공하는 그대로의 방식이어서 더욱 좋다. 

    동굴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호랑이 동굴 사원’. GETTYIMAGES

    동굴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호랑이 동굴 사원’. GETTYIMAGES

    휴양이면서 일상 재정비

    끄라비를 찾는 이들이 꼭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인 ‘호랑이 동굴 사원’도 놓쳐서는 안 된다. 동굴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사원까지 이어지는 1200여 개 계단을 오르기는 쉽지 않지만, 흘린 땀과 숨의 수고는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한번에 정리된다. 사방으로 펼쳐진 정글과 석회암 봉우리, 멀리 보이는 바다 등 자연의 거대함과 거룩함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태국에 왔으니 미식 여행도 빼놓을 수 없다. 해변 근처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은근히 시큼하고 매콤한 똠얌꿍 국물에서는 새우 단맛이 살아 숨 쉰다. 코코넛밀크를 베이스로 한 남부식 그린카레는 향신료의 결이 부드럽게 겹쳐진다. 자극적이지 않고 은근하게 깊은 맛이 오래 남는다. 숯불에 구운 해산물 플래터에는 오징어, 새우, 생선이 단출하게 담기고 라임과 칠리소스가 곁들여진다. 갓 구운 해산물에 손으로 라임을 짜 올리는 순간, 식탁은 바다와 맞닿는다. 달콤한 음식을 원한다면 망고스티키라이스를 추천한다. 잘 익은 망고와 코코넛밀크를 머금은 찹쌀밥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태국에서는 어떤 요리든 시원한 맥주와 잘 어울린다. 타이 밀크티나 코코넛워터, 달콤한 아이스티도 더위와 식욕을 동시에 달래기에 제격이다. 

    끄라비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일일이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해변의 그늘, 보트 위에서 맞은  바람, 정글에서 들려오던 자연의 소리 같은 것들만 기억에 남는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만으로도 겨울 끝자락에 이곳을 찾을 이유는 분명하다. 추위를 피해 도착했지만 돌아갈 때는 마음의 온도가 달라진다. 삶의 속도를 다시 배우고 돌아오는 곳. 그래서 끄라비 여행은 휴양이면서 동시에 일상 재정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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