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환 돌고 대표. 지호영 기자
10월 22일 인터뷰 중 이승환 돌고 대표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나눔이 필요했던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선사업에 뛰어들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대표는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외손자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5촌 조카다. 이른바 ‘재벌 3세’다. 그는 2017년 5년간 재직하던 SK에서 퇴사해 2018년 정보기술(IT) 기반의 기부 플랫폼 돌고를 창업했다.
올해 누적 기부금 40억 돌파 예상
돌고는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이후 누적 기부금이 큰 폭으로 증가해 올 연말 40억~5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이 대표의 ‘발로 뛰는’ 경영이 영향을 미쳤다. 그는 돌고의 수혜 단체, 유명 고액 기부자 등과 컬래버레이션 해 직접 회사를 홍보하고 있다.“아무래도 비용 때문이죠. 사생활이 공개되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스스로 회사 아이콘이 되는 게 마케팅 등 비용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거든요. 또 기부는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영역이라서 직접 가치관과 비전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다만 누적 기부금, 기부자 수 증가가 곧 수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돌고의 운영 방침 가운데 하나는 ‘기부금 100%를 기부한다’이다. 기부자가 신용카드 등으로 기부하면 카드 수수료 3%가 발생하는데, 이를 이 대표가 사비와 대출 등으로 부담한다. 더 많은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한 방편이다. 기부 물품을 공동 구매하는 방식으로 적자를 메우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부금이 많아질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당장 내일부터라도 적자를 안 내려면 안 낼 수는 있다”면서 “어차피 돌고는 IT 서비스라서 인력을 줄이고 회사 규모를 줄이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국내 기부시장 전체를 효율화하고 발전시키겠다는 당초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카카오 플랫폼 벤치마킹해 세계로
이 대표는 기부시장의 불투명성에서 사업 기회를 발견했다. 의도적 횡령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비영리단체는 인력 등 여건상 기부금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부자로부터 오해를 사거나 “국내 단체는 믿을 수 없다”며 상당수 기부금이 해외로 나간다. 그는 “IT 발전에 따라 기부시장의 패러다임과 방법론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수혜 대상을 어떻게 선정했는지, 어떤 물품을 어떤 기준으로 구매해 전달했는지 등 기부 이후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돌고가 인력을 투입해 그런 행정을 대리하고, 비영리단체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돌고는 기부금 오용을 막고자 ‘현물 지원’ ‘기부금 집행 1달 내 사용 내역 업로드’ 등을 원칙으로 한다. 이 대표는 기부 물품 구매 기록을 투명하게 남길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물품 구매’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돌고가 단기 목표로 삼는 건 카카오 같은 플랫폼이다. 기부금 모금 및 집행 자체는 영리사업이 아니지만 이를 기반으로 커머스, 핀테크(금융+기술), 교육 등으로 플랫폼을 확장해가겠다는 것이다. 더 궁극적으로는 글로벌을 노린다. 스페이스X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비효율에 착안했듯이 유엔 등을 효율화한 형태로 700조~800조 원대 글로벌 기부시장에서 활동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돌고는 지난달 ‘기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요약되는 ‘나만의 재단 설립’ 서비스를 론칭했다. 이어지는 이 대표의 설명이다.
“진짜 중요한 건 기부에 담긴 사람들의 스토리와 정신이거든요. 누군가 자신의 재단을 만들고 기부 행위를 기록하면 그 메시지와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하고 싶어질 거예요. 서로에게 영감이 되고 그렇게 모인 마음이 사회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거죠. 언젠가 돌고에서 ‘노벨재단’ 같은 재단이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이 대표는 플랫폼 영향력이 커지고 그것으로 수익이 생기면 다시 기부에 쓰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데스밸리를 지나는 것에 대한 계산은 이미 해놨기 때문에 초기 비용보다는 확장 가능성을 더 얘기하고 싶어요. 파타고니아는 설립 때부터 매출의 1%씩을 기부했어요. 저희는 좀 더 나아가 아예 기부에서 출발했죠. 먼 얘기일 수 있지만, 수익이 발생하면 우리와 협력하는 비영리단체에 일정 부분 발전 기금으로 돌려드리려고 해요. 그렇게 ‘이승환의 돌고’가 아닌, ‘사회의 돌고’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이 대표는 “최태원 회장 등 가족들도 돌고에 기부를 하고 있느냐”는 마지막 질문에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하고 있기는 한데 사람들이 기대하는 고액 기부는 전혀 아니다”라며 “사실 가족에게 기부금을 유치할 생각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SK의 돌고’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그는 “가족에게는 내가 이미 많은 것을 기부 받았다고 생각한다”면서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내가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삼촌이 그 중요성을 많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적·지적 자산, 소프트웨어를 돌고 성장에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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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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