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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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탈북 외교관, ‘김정은 비자금’ 실체를 폭로하다

[책 읽기 만보] 류현우 전 주(駐)쿠웨이트 북한대사대리,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출간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25-10-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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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우 전 주쿠웨이트 북한대사대리. 지호영 기자

    류현우 전 주쿠웨이트 북한대사대리. 지호영 기자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동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등 리스크 관리와 북·중·러 협력 견제를 노리는 반면, 김정은은 대북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을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개인 비자금을 관리하는 북한 비밀조직 실체가 처음 공개됐다. 류현우 전 주(駐)쿠웨이트 북한대사대리가 최근 펴낸 책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노동당 39호실장 전일춘 딸과 사위 증언’를 통해서다. 김정은의 비자금은 유엔과 미국의 주요 대북제재 대상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비밀 금고에 대한 제재를 과연 풀어줄까.

    김주애 까르띠에 시계는 어디서 흘러오는가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에 따르면 김정은의 비자금 관리 비밀조직은 ‘국무위원회 36국’이다. 그동안 김정은의 비자금 관리 기관으로 알려졌던 ‘노동당 39호실’이 ‘당 자금(공적 비자금)’을 다룬다면, 36국은 ‘혁명 자금(사적 비자금)’을 관리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비밀조직은 해외 주재 대사관의 당 조직 통제선 밖에서 움직이고, 이들이 평양으로 보내오는 물품·화물은 운송 수단을 불문하고 ‘최우선’으로 처리된다. 김씨 일가의 방탄 차량과 사치품부터 특정 식료품, 의류·향수 같은 생활 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이 이런 방식으로 평양에 반입된다. 김정은의 딸 주애가 손목에 차는 까르띠에 시계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혁명 자금은 어디에서 발생하며, 어디에 은닉되고, 어떻게 관리되는가. 핵과 미사일에 쓰이는 자금은 어느 주머니에서 나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풀어낸다. 이야기는 단선적이지 않다. 다층의 비공식 경제, 우회 거래, 대외 네트워크, 조직 간 ‘교차 회계’를 통해 재원이 이동하며 그 과정 전체를 쫓는 일은 권력 내부 문법을 해독하는 일과 맞닿는다.

    책은 크게 세 갈래로 구성돼 있다. 파트(PART) 1 ‘핵보유국의 꿈’에서는 핵·미사일 개발을 둘러싼 외교 공방과 제재 환경, 중동·아프리카에서의 무기·외화 네트워크, 국제기구·과학행사 무대에서의 ‘외교적 위장’ 시도를 현장감 있게 복원한다.

    파트 2 ‘백두혈통’에서는 본부서기실과 조직지도부, ‘36국·81과’ 같은 서기실 라인의 실체, ‘영도전화기’로 상징되는 직통 보고체계, 그리고 장성택 숙청 등 공포정치의 메커니즘을 내부 증언과 문서 흐름으로 재구성한다.

    파트 3 ‘나의 이야기’에서는 저자의 탈북과 한국 정착기, 그리고 “왜 지금 이 증언을 기록해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를 고백한다. 이 삼중 구조 덕분에 독자는 자금·권력·폭력이 어떻게 서로를 정당화하며 순환하는지, 그것과 인간의 서사가 어떻게 얽히는지 보게 된다.

    서술의 신뢰도는 ‘접근’에서 나온다. 이 책은 노동당 39호실장을 지낸 전일춘 딸과 사위의 증언, 즉 최상층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들의 관찰을 통해 폐쇄된 체제 내부를 해부한다. 단편적 풍문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관찰과 경험, 전화·문건의 흐름, 각 조직 간 보고체계를 통해 그림을 맞춘다.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라는 제목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는 “누가 돈을 움직이고, 어떤 창구로 오가며, 누가 장부를 보는가”라는 질문을 따라가며 확인할 수 있다.

    ‘장성택 화형 숙청’의 전모 공개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노동당 39호실장 전일춘 딸과 사위 증언’/ 류현우 지음/ 432쪽/ 2만3000원/ 동아일보사 동아DB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노동당 39호실장 전일춘 딸과 사위 증언’/ 류현우 지음/ 432쪽/ 2만3000원/ 동아일보사 동아DB

    읽는 재미도 크다. 특히 남한 사회에 최초로 공개되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장성택 ‘화형(火刑)’ 숙청과 김정남 암살 테러의 전모를 복원하면서 공포정치가 어떻게 ‘돈의 통로’와 맞물려 작동했는지, 그 결과 조직 전체가 어떤 계열의 정비에 들어갔는지 보여준다. 장성택 사건 이후 당 행정부 해산과 전당·전사회 단위의 반종파 투쟁, ‘비판서 쓰기’ 캠페인 등 잔재 청산 과정에서 피해 인원이 수천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주쿠웨이트 북한대사관을 탈출했던 저자가 왜 지금 이 기록을 세상에 내놓았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고백에서 출발한 이 책은 가족과 고향을 뒤로한 탈출 이후 한국에서 생활, 그리고 ‘침묵’과 ‘증언’ 사이 내적 갈등을 담담하게 전한다. 

    류현우 전 주쿠웨이트 북한대사대리는 누구?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외국어학원(중고교 6년제), 평양외국어대(아랍어과)를 졸업했다. 조선인민군 공군에서 군복무를 마친 후 외무성 중동과에 배치됐다. 주쿠웨이트 북한대사관 대사대리로 일하던 2019년 9월, 아내·딸과 함께 탈북해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아내는 ‘김씨 일가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북한노동당 39호실 실장 전일춘의 외동딸. 장인 집에서 17년간 처가살이를 했다. 처가는 현철해, 박재경, 김양건, 오극렬, 박남기, 강석주, 김계관을 비롯한 당과 군부 최고위층이 거주하는 평양 대동강구역 ‘은덕촌’이라는 60평형대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2024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21기 상임위원으로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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