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아버지가 시내에 갔다가 굉장히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젊었을 때 양복을 맞췄던 양복점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마침 경조사 등에 갈 때 입을 새 양복이 필요한 참이라 그 양복점에 들어가 양복을 맞췄다. 약 40년 만에 다시 간 양복점이었는데 그때까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버지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요즘은 양복을 거의 기성복으로 사 입는다. 그럼에도 계속 장사를 해온 건 예전에 양복을 맞춰 입은 고객들이 계속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 고객이 계속 찾는다는 건 옷을 잘 만들고 있다는 뜻이니 분명 실력도 좋을 테다. 40년 넘게 이렇게 가게를 유지하면서 고객이 찾고 있는 그분은 분명 장인이다.
한 분야 장인으로서 놀라운 실력을 지닌 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아버지가 보기에 그분이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가게를 유지할 정도이긴 하지만 양복 만드는 기술로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이런 기술 장인이 돈도 많이 버는 사회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많은 돈을 버는 게 맞다. 그런데 현대 경제학은 열심히 일한다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하는 것보다 자본을 운용할 때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즉 돈을 굴려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련해 가장 유명한 책이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경제학 교수의 ‘21세기 자본’이다. 피케티는 부자들의 자본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일명 부자세, 부유세다. 그런데 피케티가 원래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역사적으로 항상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더 높다는 것이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자본수익률과 노동수익률 사이에는 언제나 ‘자본수익율 > 노동수익률’ 관계가 성립한다. 즉 자본을 굴렸을 때 수익률이 열심히 일했을 때 수익률보다 높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더 높으니, 이걸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자본에 세금을 매기자고 주장한 것이다.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은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40년 동안 양복을 만들어온 사람보다 40년 전에 아파트를 구입했던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이것을 한국 사회의 병폐라고 봐서는 곤란하다. 한국 사회가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인간 사회가 그런 것이라고 피케티는 말한다.
왜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을까.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 결과를 제시하지만, 막상 그 이유는 제대로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본은 항상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이동하는데, 노동은 그런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만 이렇게 수익률에 민감해 돈을 움직인다고 하지 말자. 여윳돈이 없는 사람도 어떤 은행에서 금리 1~2%p를 더 준다고 하면 바로 예금을 옮긴다. 그렇게 돈을 옮기면서 어떤 죄책감도 없다. 10년 동안 이 은행 대출을 이용해왔으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금리가 다른 은행보다 더 높더라도 계속 이 은행 대출을 이용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10년 단골 가게라 해도 옆에 더 싸게 파는 가게가 생기면 바로 이동한다. 자본은 그런 식으로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쪽으로 계속 움직인다. 높은 수익률을 예상했음에도 손실을 보는 경우는 많지만, 처음부터 수익이 낮고 손실이 예상되는 곳에 돈을 넣지는 않는다.
반면 노동은 다르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누구나 의사를 할 수는 없다. 요즘 회계사가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럼 나도 회계사 해야지” 할 수는 없다. 자격증이 필요한 노동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경리 일을 해온 사람이 요즘 AI 프로그래머가 돈을 잘 번다는 얘기를 듣고 그럼 “지금부터 AI 프로그래머를 해야지”라고 할 수는 없다. 또 A 회사에서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을 듣고 A 회사로 이직할 수도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직업을 선택할 때는 그래도 선택권이 좀 있다. 하지만 한 업종에서 몇 년 정도 일하고 나면 그 후부터는 직장, 직업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나이가 더 들면 직업을 바꾸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단순노동 업무로는 바꿀 수 있지만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부문,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전직은 어렵다.
노동은 다른 분야가 수익률이 더 높다고 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수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큰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적자는 아니고 어쨌든 그냥 먹고살 수만 있다면 계속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몇십 년 된 양복점 주인은 당시 양복점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양복점 기술을 배우고 양복점을 열었을 것이다. 그때는 분명 그 나름 돈을 벌었을 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 더는 양복 기술로는 돈을 벌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른 기술을 배워 직업을 바꾸기는 힘들다. 수익이 적지만 그래도 양복을 만든다. 수익률이 낮아도 그냥 그 일을 한다. 몇십 년이 지나도 계속 충분한 수익을 내는 직업이라면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은 계속 바뀐다. 노동은 이런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 양복점에 투자했을 때 수익률이 일정 이상으로 나오지 않으면 바로 투자를 접는다. 최소한 은행 이자보다는 높은 수익률이 나와야 한다. 그것보다 낮으면 아무런 미련 없이 돈을 빼내 다른 투자처로 이동한다. 자본은 냉혹하다. 10년 동안 투자해 큰 이익을 보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지금 적자인 기업에 계속 투자해달라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노동에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의리와 정을 생각해 자기가 조금 손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은 아니다. 자본은 그냥 예상 수익률로만 움직인다.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자본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게 자본의 속성이다. 아니, 자본의 속성이 아니라 돈을 대하는 우리의 속성이다.
결국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은 이유는 자본이 수익률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더 많이 찾아다니면서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움직이기 어려운 노동과 계속 움직이는 자본 중에서 자본, 즉 돈이 승자일 수밖에 없다. 좋든, 싫든 이게 노동과 자본의 현실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요즘은 양복을 거의 기성복으로 사 입는다. 그럼에도 계속 장사를 해온 건 예전에 양복을 맞춰 입은 고객들이 계속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 고객이 계속 찾는다는 건 옷을 잘 만들고 있다는 뜻이니 분명 실력도 좋을 테다. 40년 넘게 이렇게 가게를 유지하면서 고객이 찾고 있는 그분은 분명 장인이다.
돈 많이 벌지 못한 양복 장인
일반적으로 자본투자 수익률이 열심히 일할 때 수익률보다 높다. [GettyImages]
열심히 일한 사람이 많은 돈을 버는 게 맞다. 그런데 현대 경제학은 열심히 일한다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하는 것보다 자본을 운용할 때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즉 돈을 굴려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련해 가장 유명한 책이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경제학 교수의 ‘21세기 자본’이다. 피케티는 부자들의 자본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일명 부자세, 부유세다. 그런데 피케티가 원래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역사적으로 항상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더 높다는 것이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자본수익률과 노동수익률 사이에는 언제나 ‘자본수익율 > 노동수익률’ 관계가 성립한다. 즉 자본을 굴렸을 때 수익률이 열심히 일했을 때 수익률보다 높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더 높으니, 이걸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자본에 세금을 매기자고 주장한 것이다.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은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40년 동안 양복을 만들어온 사람보다 40년 전에 아파트를 구입했던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이것을 한국 사회의 병폐라고 봐서는 곤란하다. 한국 사회가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인간 사회가 그런 것이라고 피케티는 말한다.
왜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을까.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 결과를 제시하지만, 막상 그 이유는 제대로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본은 항상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이동하는데, 노동은 그런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은 이동하기 어려워
자본의 경우 수익률이 낮으면 바로 돈을 뺀다. 그리고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부동산이 좋으면 부동산에 돈을 넣고, 주식이 좋으면 부동산에서 돈을 빼 주식을 산다. 주식 중에서도 바이오가 좋다고 하면 바이오 주식을 사고, 인공지능(AI)이 돈이 된다고 하면 AI에 돈을 넣는다. 주식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폭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그대로 들고 있는 사람은 없다. 카스텔라가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 카스텔라 가게를, 탕후루가 잘 된다고 하면 탕후루 가게를 창업한다. 그러다 카스텔라, 탕후루가 돈이 안 되면 바로 정리하고 다른 아이템으로 갈아탄다.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만 이렇게 수익률에 민감해 돈을 움직인다고 하지 말자. 여윳돈이 없는 사람도 어떤 은행에서 금리 1~2%p를 더 준다고 하면 바로 예금을 옮긴다. 그렇게 돈을 옮기면서 어떤 죄책감도 없다. 10년 동안 이 은행 대출을 이용해왔으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금리가 다른 은행보다 더 높더라도 계속 이 은행 대출을 이용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10년 단골 가게라 해도 옆에 더 싸게 파는 가게가 생기면 바로 이동한다. 자본은 그런 식으로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쪽으로 계속 움직인다. 높은 수익률을 예상했음에도 손실을 보는 경우는 많지만, 처음부터 수익이 낮고 손실이 예상되는 곳에 돈을 넣지는 않는다.
반면 노동은 다르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누구나 의사를 할 수는 없다. 요즘 회계사가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럼 나도 회계사 해야지” 할 수는 없다. 자격증이 필요한 노동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경리 일을 해온 사람이 요즘 AI 프로그래머가 돈을 잘 번다는 얘기를 듣고 그럼 “지금부터 AI 프로그래머를 해야지”라고 할 수는 없다. 또 A 회사에서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을 듣고 A 회사로 이직할 수도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직업을 선택할 때는 그래도 선택권이 좀 있다. 하지만 한 업종에서 몇 년 정도 일하고 나면 그 후부터는 직장, 직업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나이가 더 들면 직업을 바꾸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단순노동 업무로는 바꿀 수 있지만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부문,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전직은 어렵다.
노동은 다른 분야가 수익률이 더 높다고 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수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큰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적자는 아니고 어쨌든 그냥 먹고살 수만 있다면 계속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몇십 년 된 양복점 주인은 당시 양복점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양복점 기술을 배우고 양복점을 열었을 것이다. 그때는 분명 그 나름 돈을 벌었을 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 더는 양복 기술로는 돈을 벌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른 기술을 배워 직업을 바꾸기는 힘들다. 수익이 적지만 그래도 양복을 만든다. 수익률이 낮아도 그냥 그 일을 한다. 몇십 년이 지나도 계속 충분한 수익을 내는 직업이라면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은 계속 바뀐다. 노동은 이런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 양복점에 투자했을 때 수익률이 일정 이상으로 나오지 않으면 바로 투자를 접는다. 최소한 은행 이자보다는 높은 수익률이 나와야 한다. 그것보다 낮으면 아무런 미련 없이 돈을 빼내 다른 투자처로 이동한다. 자본은 냉혹하다. 10년 동안 투자해 큰 이익을 보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지금 적자인 기업에 계속 투자해달라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노동에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의리와 정을 생각해 자기가 조금 손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은 아니다. 자본은 그냥 예상 수익률로만 움직인다.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자본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게 자본의 속성이다. 아니, 자본의 속성이 아니라 돈을 대하는 우리의 속성이다.
수익률에 민감한 자본
결국 노동보다 자본의 수익률이 높은 이유는 노동은 수익률에 민감하게 움직이지 않지만, 자본은 수익률에 민감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돈 때문에 왔다 갔다 하지 않지만, 자본은 돈을 목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 노동을 오래 하면 실력자가 되고 기술자가 되고 장인이 된다. 훌륭한 사람이고 삶의 모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좀 다른 얘기다. 평생 노동수익률은 높지 않다. 자본에 민감하고 수익성 좋은 걸 찾아 이리저리 움직인다면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술자, 장인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노동에서보다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결국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은 이유는 자본이 수익률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더 많이 찾아다니면서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움직이기 어려운 노동과 계속 움직이는 자본 중에서 자본, 즉 돈이 승자일 수밖에 없다. 좋든, 싫든 이게 노동과 자본의 현실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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