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시장에서 ‘무순위 청약’ ‘선착순 분양’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전국 평균 1순위 청약률은 7.3 대 1로, 6.7 대 1을 기록했던 2014년 이후 8년 만에 한 자릿수 청약률을 기록했다(그래프1 참조). 올해 들어 분양시장은 2월 현재 전국 1순위 청약률이 3 대 1까지 추락해 본격적인 한파를 맞고 있다. 서울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도 한파를 비켜가지 못했지만, 1·3 부동산대책으로 주력 평형이 예비당첨자 계약에서 완판돼 겨우 숨을 돌렸다.
옥석 가리기 시작한 분양시장
1월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7만5000채를 기록했다. 10년 만에 최대치다. 이 속도라면 올해 상반기 전국 미분양 아파트 8만 채 돌파는 시간문제다. 전국 미분양 8만 채는 수도권 부동산시장이 불황의 한복판을 지나던 2011년 수준이다. 청약률, 미분양 등 분양시장의 모든 데이터는 ‘견본주택을 열었다 하면 완판되던 시절’의 종식을 가리키고 있다. 로또분양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청약에 당첨돼도 동·호수를 꼼꼼히 확인한 후 계약 여부를 고민하는 ‘옥석 가리기’ 모드로 분양시장 트렌드가 전환됐다. 미래가 불투명한 시장에서는 분양시장의 선행지표를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여차하면 아껴둔 통장을 써서 당첨된 아파트가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될 확률이 전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당첨된 단지의 미래 프리미엄을 알려주는 분양시장 선행지표는 무엇일까.분양권 프리미엄 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완판 속도’다. 당첨된 분양 단지가 정당계약에서 100% 분양된다면 해당 분양 단지를 손꼽아 기다린 대기 수요가 공급 세대수의 몇 배가 된다는 뜻이다. 이 경우 향후 분양권이 시장에 나오면 풍부한 대기 수요에 의해 거래가 활발해지고 프리미엄도 붙는다. 반면, 정당계약에서 다 팔리지 못하고 상당수가 미분양으로 전환돼 선착순 분양에 돌입했다면 해당 단지는 ‘미분양 아파트’라는 낙인이 찍혀 계약자의 불안심리가 확산될 수 있다. 심지어 선착순 분양에서도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아 완판 시점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으면 로열층 분양권마저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견본주택 조용하면 괜찮은 물건이란 뜻
그렇다면 ‘완판 속도’를 알려주는 시그널은 무엇일까. 해당 단지를 기다리던 대기 수요 규모를 알려주는 ‘1순위 청약률’ 성적이다. 무주택자격, 청약통장, 청약가점 등 실수요 조건을 갖춰야 하는 1순위 청약자의 수는 해당 단지에 대한 진성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10년 넘게 분양 현장에서 쌓아온 필자의 데이터에 따르면 수개월 내 완판이 가능한 1순위 청약률의 매직 넘버는 ‘5 대 1’ 이상이다. 예를 들어 1000채 규모 단지에서 특별공급 물량을 제외한 700채가 일반공급 물량으로 풀렸고 일반공급 물량의 5배수인 3500명 이상이 1순위 청약에 몰렸다면 해당 단지는 수개월 내 완판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매직 넘버 5 대 1 룰’에도 예외는 있다. 총규모 500채 이하 소규모 단지라면 청약률 계산 시 분모에 해당하는 일반공급 물량이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어 대규모 단지 대비 청약률이 높게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분양 홍보 문구에서 수백 대 1 경쟁률을 자랑하는 경우 해당 단지가 500채 이하 소규모 단지는 아닌지 꼭 확인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 마포구 ‘마포더클래시’는 5 대 1을 훌쩍 넘기는 19 대 1의 1순위 청약률을 기록했다. 이는 53채 초소규모 일반공급 물량에 따른 청약률 착시 현상으로, 마포더클래시의 정당계약률은 적은 공급 물량에도 50%에 그치는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부산의 강남 수영구 남천동에서 분양한 ‘남천자이’ 역시 54 대 1이라는 높은 청약률을 기록했다. 이 또한 57채의 초소규모 일반공급 물량에 따른 착시 현상이었다. 남천자이 역시 37%라는 저조한 정당계약률을 기록했다. 이 두 곳 모두 후분양 단지로, 통상 후분양은 입주 일정을 코앞에 둔 시점에 청약 접수를 받기 때문에 2~3개월 내 분양금 100%(잔금)를 납부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매직 넘버 5 대 1 룰’은 선분양 단지에 한하며 총규모 700채 이상 중급 규모 단지에 적용해야 적중률이 높다.3월 무순위 청약을 시작하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아파트 공사 현장. [뉴시스]
청약 성적이 그레이존에 머물 경우 결국 무순위 청약(선착순 분양)이 해당 단지의 프리미엄 여부를 결정할 분기점이 된다. 그레이존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단서는 분양 현장, 즉 견본주택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선착순 분양에 돌입해 고가 경품, 주말 방문 이벤트 등 대대적인 이벤트를 개시한다면 해당 단지는 정당계약 후 상당한 수준의 미분양이 발생했으며 선착순 분양에서도 완판이 어렵다는 징후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미분양이 심각하면 선착순 분양 개시 후 영업사원이 대폭 충원될 것이다. 영업사원 확충 여부는 견본주택 ‘주차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보통 평일(특히 월요일)에는 견본주택 방문객이 드물지만, 만약 해당 시점에 주차장이 꽉 차 있다면 새로 출근하는 영업사원이 충원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미분양이 심각하다면 전화상담 시 적극적으로 견본주택에 방문할 것을 어필한다. 부동산은 결국 사람들이 직접 방문해 입지와 타입별 유닛을 확인하고 영업사원의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져야 미분양 소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미분양이 ‘소량’ 남아 수개월 내 완판 가능성이 큰 분양 현장의 전화상담은 대부분 ‘단답형’이다. 대대적인 영업사원 충원도 없고, 주말 이벤트도 소극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분양 단지 홍보를 위한 현수막도 덕지덕지 붙어 있지 않아 견본주택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즉 그레이존 청약 단지의 성공 예감은 역설적이게도 선착순 분양 후 ‘조용한 견본주택’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선착순 분양 당일 ‘줍줍’ 인파가 견본주택에 모일 텐데 연령대가 30, 40대가 아닌 50대가 많을수록 선착순 분양의 성공 가능성은 크다. 집값을 잘 추종하는 심리지수인 한국은행의 주택가격전망CSI 패턴을 분석해보면 일반적으로 30, 40대보다 50대가 부동산에 보수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생애주기상 주택 매수 경험이 풍부하고 ‘부동산의 쓴맛’도 경험해본 50대가 부동산의 리스크를 냉정히 대한다는 증거다. 보수적인 50대가 ‘줍줍’까지 한다는 것은 분양 리스크를 감안해 선착순 분양에 참가했다는 뜻이고, 그만큼 실제 계약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인근 실거래량 증가는 호재
완판 속도 외에 분양권 프리미엄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시그널은 분양 단지 인근 신축의 실거래 추세다. 1월 들어 수도권 실거래량은 지난해 12월 대비 34%나 증가하며 거래절벽에서 벗어나고 있다. 정부의 세제 완화에 따라 거래절벽 현상이 해소돼 실거래 추세는 앞으로 더 중요한 분양권 프리미엄의 단서가 될 것이다. 둔촌주공 분양 성적의 힌트가 될 수 있는 ‘고덕그라시움’ 전용면적 84㎡는 둔촌주공 분양 직전 17억 원에 거래되던 것이 13억9000만 원까지 하락해 위기감을 조성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14억 원 중후반대를 회복하며 둔촌주공 계약률 상승에 힘을 실었다. 또한 둔촌주공과 올림픽공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파크리오’ 전용면적 84㎡ 역시 1월 한 달에만 17억 원대 실거래가 10건이나 성사되며 둔촌주공 주력 평형의 계약 마감을 짐작하게 했다. 장위4구역을 분양한 장위자이 역시 무순위 청약 개시 시점에 인근 ‘래미안장위포레카운티’ 전용면적 84㎡가 역대 최저 거래가인 7억 원에 거래되며 충격을 안겼으나, 선착순 분양이 한창이던 2월 들어 8억7000만 원 실거래가를 기록했다. 장위뉴타운의 ‘래미안장위퍼스트하이’ 전용면적 84㎡ 역시 최근 9억 원에 실거래되며 장위자이 선착순 분양에 힘을 실었다.본격적인 미분양 시대가 열렸다. ‘1순위 청약률’ ‘선착순 후 견본주택의 영업 분위기’ ‘인근 신축의 실거래가 추세’ 등 3가지를 꼼꼼히 확인하면 프리미엄이 확실한 집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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