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젤에서는 점판암도 포도를 기르는 데 중요한 요소다. 점판암은 태양열을 흡수해 포도밭을 따뜻하게 지켜준다. 점판암이 많은 땅은 척박하지만, 19세기 말 유럽을 강타했던 필록세라(Phylloxera) 해충의 피해를 덜 입기도 했다. 그래서 모젤에는 수령이 100년 이상 된 포도나무가 많고, 이런 고목은 맛과 향이 탁월한 와인을 생산해낸다.
칼 뢰벤(Carl Loewe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리슬링 포도밭 막시민 헤렌베르그(Maximin Herrenberg)를 소유한 와이너리다. 막시민 헤렌베르그의 포도나무 수령은 121년에 이른다. 1896년 당시 밭주인이던 칼 슈미트 바그너(Carl Schmitt-Wagner)가 모젤에서 가장 좋은 리슬링만 골라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칼 뢰벤이 막시민 헤렌베르그를 매입한 것은 2008년이었다. 밭을 사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슈미트 바그너 측은 막시민 헤렌베르그를 칼 뢰벤에게 넘겼다. 높은 가격을 불러서가 아니었다. 칼 뢰벤이야말로 밭과 포도나무를 건강하게 지키며 훌륭한 와인을 만들 거라 믿어서였다.
칼 뢰벤은 막시민 헤렌베르그를 유기농으로 운영한다. 제초제와 살충제를 쓰지 않아 밭에는 풀이 무성하고 땅에는 유익한 벌레와 미생물이 가득하다. 와인 양조도 인공 배양이 아닌 포도에 자생한 천연 효모로만 한다. 이 모든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와인이 ‘막시민 헤렌베르그 1896’이다.
막시민 헤렌베르그 1896이 담긴 잔에 코를 대면 농익은 복숭아와 살구향에 감탄이 터져 나온다. 한 모금 머금으면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묵직하게 입안을 채운다. 여운에서 느껴지는 생강의 매콤함은 화룡점정이다. 안주 없이 와인만 느끼고 싶을 정도로 향미가 웅장하고 아름답다.
칼 뢰벤은 다른 밭에서도 고목을 많이 기른다. 독일 관련법은 수령이 25년 이상이면 고목으로 규정하지만, 칼 뢰벤은 50년 이상 된 포도나무만 고목으로 분류한다. 칼 뢰벤의 ‘알테 레벤(Alte Reben)’은 수령이 50~70년 된 리슬링에서 생산한 와인이다. 모젤 전통 양조법으로 만드는 이 와인은 천연 효모로 100일간 발효하고 효모와 함께 숙성시킨 뒤 병입한다.
알테 레벤은 반전이 있는 와인이다. 달콤한 과일과 꿀향이 코를 사로잡지만 맛은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깔끔하다. 여운에서 느껴지는 짭짤함은 입맛을 묘하게 자극해 식욕을 돋운다. 막시민 헤렌베르그 1896이 온 신경을 집중하며 감상하는 교향곡이라면, 알테 레벤은 식사와 함께 우아하게 즐기는 실내악 같다.
칼 뢰벤의 와인 철학은 ‘포도나무에게 최대한 자유를 주는 것’이다. 포도나무를 자연 그대로 유지할수록 밭의 특징이 잘 드러난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다. 그래서인지 칼 뢰벤의 와인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리슬링의 다양한 얼굴을 담아내는 칼 뢰벤은 모젤의 숨은 보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