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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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가난한 나라 여행하고 매일 대화한 지 6개월 만에 극우 유튜브서 구출”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 “10대 남자 아이들, 유튜버가 말 잘하면 ‘멋있는 형’으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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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입력2025-02-0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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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말하는 ‘깨어 있는’ 교육학자인 내가 아들 교육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했겠나. 초등학생 때부터 매일 2~3시간씩 토론하고,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시야도 넓히고, 발레·뮤지컬·미술관 안 데려간 곳이 없다. 이것보다 애들 교육을 더 잘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아들이 극우 유튜브를 보더라.”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권정민 서울교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가 최근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2년 전 아들이 중학생이던 시절이 떠올라 ‘일기 쓰듯’ 올렸다고 한다. 1월 19일 서울서부지법 폭력 난입 사태 후 권 교수가 쓴 이 글은 X(옛 트위터)에서 318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와 초중고교 교사들의 제보도 빗발쳤다. “가정과 학교에서 극단적인 콘텐츠에 빠진 청소년은 셀 수도 없고 20, 30대로 자랄수록 더 극단적으로 변해 고통스럽다”는 토로가 이어졌다. 실제로 서울서부지법 폭력 난입 사태 당시 현행범으로 체포된 90명 중 절반이 2030 남성이었고, 나중에는 10대도 구속됐다. 10대는 왜 분노와 적개심이 가득한 콘텐츠에 빠져들까. 권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권정민 서울교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 [권정민 교수 페이스북 계정]

    권정민 서울교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 [권정민 교수 페이스북 계정]

    극단적 메시지, 글에서 영상으로

    권 교수의 ‘아들 구출 작전’은 2년 전 시작됐다. 아들은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워킹맘인 권 교수는 아들에게 사교육도 전혀 시키지 않을 정도로 ‘방치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 대신 초등학생 때부터 아들과 대화를 자주 나눴다. 질문이 많은 아들을 매일 2~3시간씩 상대하느라 잠을 못 자기도 했다.

    변화는 아들이 중학교에 가서부터 시작됐다. 안 하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여자는 왜 군대 안 가”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해”…. 권 교수는 당혹스러움을 숨기고 아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덤덤하게 되물었다. 아들의 일상도 면밀히 관찰했다. 아들이 자주 보는 콘텐츠, 친구들과 하는 대화 등에 관심을 가졌다.

    문제의 중심엔 유튜브가 있었다. 아들이 보던 몇몇 극우 유튜버는 최근 “계엄은 낭만이다. (계엄 당시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은 건 구질구질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 같은 유튜브가 과거와 비교해 뚜렷한 차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 전만 해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명으로만 올리던 내용을 요즘엔 사람이 직접 등장해 얘기하고 있다. 권 교수는 “인간은 상대의 지능을 그 사람이 하는 말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번듯하게 생긴 유튜버가 얼굴을 내놓고 시원시원하게 얘기하면 계엄의 결과가 어떻든 청소년은 그들을 ‘멋있는 형’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콘텐츠의 논리성·합리성보다 콘텐츠의 형식, 다시 말해 ‘달변’이 청소년을 감화한다는 것이다.

    유튜브 영상은 아들 친구들의 단체채팅방(단톡)에 공유된다. 친구 중 일부가 단톡에 올리면 저마다 한마디씩 얹는다. 아들과 친구들이 들락거리는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정치 주제가 오간다. 게임 얘기를 하다가도 ‘시국이 시국인 만큼’ 정치로 화제를 돌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이 정치 고관여자는 아니다. 정치 뉴스를 자주 챙겨 보지 않고, 탄핵 반대 시위에 나가지도 않는다. 권 교수는 “어떤 신념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라며 “여자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권력에 쉽게 매료되는 남자 아이들에게는 정치 콘텐츠가 일종의 놀이문화”라고 분석했다.

    부모와 대화로 비판적 사고력 길러야

    그렇다고 부모에게서 오랜 시간 양질의 교육을 받은 자녀가 극단적인 콘텐츠로 미끄러질 수 있을까. 권 교수는 그만큼 또래문화가 청소년에게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교육학 전공자인 나도 아들이 청소년이 된 후 그 위력을 실감했다”며 “정말 친구에 죽고 못 산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해당 콘텐츠가 극단적이라고 인식하지만, 단톡에 공유한 친구가 무안해할까 봐 한마디씩 반응을 해준다는 것이다. “동조하지 않으면 소외될 수 있으니 그 나름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극단적인 믿음을 깨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청소년은 입시 공부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기회가 거의 없다. 권 교수는 “수능 국어시험에서 지문을 2번 읽으면 떨어진다”며 “읽은 직후 바로 정답을 맞히는 방식을 반복하면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네 생각이 뭐야”라고 물으면 방금 시청한 유튜버의 주장만 반복했다. 그런 아들이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집에 돌아온 아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고, 휴양지를 마다한 채 일부러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며 아들이 본 적 없는 풍경을 보여줬다. 6개월이 지나자 아들은 “엄마, 내 생각이 틀렸던 것 같아”라고 스스로 말했다. 권 교수는 대수롭지 않게 “그래”라고 답했다.

    권 교수는 지난한 과정을 ‘화장(化粧)’에 비유했다. “화장할 때도 선크림이나 파운데이션을 한꺼번에 퍼 올리면 실패하지 않냐”며 “자녀와 관계도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시시콜콜한 관심사를 관찰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실 나도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아들이 좋아한 팽이 ‘베이블레이드’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어떡하나. 내가 애들을 정말 사랑하니까, 관심이 많으니까 그냥 나도 같이 한 번 보는 것이다.” 권 교수의 후일담이다.

    윤채원 기자

    윤채원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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