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위고비’를 불법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 운영자가 위고비 구매자로 위장한 기자에게 한 말이다. “처방전 없이 위고비를 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매자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10월 15일부터 국내 시판을 시작한 위고비는 전문의약품으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물이다. 온라인에서 처방전 없이 전문약을 판매하거나 구매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더구나 불법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구매한 약은 위조품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배송 과정에서 약품이 변질될 위험성도 크다.
처방전 없이 ‘효소 사듯’ 위고비 쉽게 구매
10월 24일 위고비 불법 판매 온라인 사이트에 약품 가격 정보가 게재돼 있다(왼쪽). 이름과 연락처, 배송지 정보만 입력하면 위고비를 불법 온라인 사이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임경진 기자]
처방전 없이 위고비를 사는 게 불법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판매자는 “전혀 문제없다”고 답했다. 판매자는 “주문일로부터 5~7일 뒤 배송이 완료된다”고 안내하면서, ‘비회원 주문하기’를 선택한 기자에게 “회원 가입을 하면 1만 원 할인 쿠폰을 지급한다”며 회원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약사법에 따르면 전문의약품을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처방전 없이 불법 구매한 소비자에게는 1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약국이 아닌 곳에서 의약품을 불법 판매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처방전 없이 전문약을 판매할 시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기도 한다.
위고비 불법 판매 온라인 사이트 이용자는 대부분 위고비 처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병원에서 위고비를 처방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위고비는 체질량지수(BMI: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30㎏/㎡ 이상인 비만 환자나 BMI 27㎏/㎡ 이상~30㎏/㎡ 미만 과체중이면서 한 가지 이상 동반 질환(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등)이 있는 환자만 처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저체중인 사람도 효소를 사듯 처방전 없이 위고비를 사서 쓴다”거나 “몸매 좋은 언니들은 위고비를 칼로리 커팅제처럼 쓰더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A 씨는 “키 166㎝에 몸무게 50㎏ 미만인 30대 여성 지인이 모델 같은 체형을 유지하려고 위고비를 사서 쓰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얼마나 감량했는지는 모르지만 지인이 위고비를 투약한 뒤 딱 보기에도 ‘마름’에서 ‘많이 마름’ 상태로 변했다”고 전했다.
약품 얼어서 결정 생기면 큰일
10월 17일 기자가 위고비 불법 판매 온라인 사이트 운영자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임경진 기자]
불법 온라인 사이트에서 구매한 약은 배송 과정에서 변질될 수 있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위고비는 투약 전 2~8℃에서 냉장 보관해야 하고, 냉각제로부터 멀리 놓아 얼지 않게 해야 한다. 위고비 불법 판매 온라인 사이트 운영자는 “해외에서 냉장 택배로 음식을 보내듯이, 덴마크에서 위고비를 구매한 뒤 비행기를 통해 한국으로 보내기 때문에 약이 변질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포장 방식과 배송 과정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재현 한국병원약사회 국제교류이사 겸 삼성서울병원 약제부장은 “위고비가 냉각제에 너무 가까이 놓이면 약이 얼어 결정이 생기게 된다”며 “결정이 생기면 약효가 떨어질 뿐 아니라, 결정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현재 위고비의 온라인 불법 판매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면서 “위고비가 국내 처음 출시된 주(10월 3주)에 위고비 불법 판매 온라인 사이트 2곳 이상을 적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속 차단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드시 의사 및 약사와 상담 후 처방전을 받아 위고비를 투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현 이사는 “위고비는 섭취한 음식이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늦추는 작용을 해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염, 췌장염을 일으킬 수 있다”며 “체중을 줄여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다이어트를 위해 위고비를 투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인슐린 등 기타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위고비를 투약하려면 약물 용량을 조정해야 하는 만큼, 의사에게 자신의 기저질환과 투약 중인 약물을 설명한 뒤 반드시 처방전을 받아 위고비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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