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특집 | 국정농단 STOP, 개헌 START

2016 개헌의 필요충분조건

권력 공백, 국민 여론, 개헌 총리, 대통령 임기 단축 4박자 맞으면 개헌 가능

  •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ankangyy@hanmail.net

    입력2016-11-21 0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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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0년간 숱한 시도에도 개헌이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난마처럼 얽힌 여의도 정치권의 이해관계 조정과 타이밍 포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치가 워딩(말)과 타이밍(시기)으로 이뤄지듯 개헌은 이해관계 조정과 타이밍 포착의 교집합으로 이뤄진다. 개헌에는 국민 여론과 정치권의 의지 외에도 복잡한 조건이 더 필요하다. 지금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에 허탈, 상실, 분노가 넘실대고 있다. 국정이 마비됐고 리더십 공백은 정치, 경제, 사회를 덮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차기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해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하늘이 내린’ 개헌의 적기(適期)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최순실의 절망을 얼마든지 개헌의 희망으로 꽃피울 수 있다. 개헌이 현실화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인지 몇 가지로 나눠 살펴보기로 한다.

    현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과 2016년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먼저 권력 공백인 점이 비슷하다. 강압통치로 일관하던 전두환 군사정권은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한 민주항쟁에 밀리다 급기야 6월 들어 항복 선언을 하게 된다.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표의 이른바 6·29선언이다. 민주주의 퇴행과 불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통령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권위와 품격을 모두 잃고 말았다. 두 번이나 사과했지만 세 번째 사과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1987년 데자뷔 효과

    정치권이 3자 구도로 재편된 점도 유사하다. 1987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36.6%를 얻었다.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는 28.0%,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27.0%를 각각 득표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정당 득표율은 33.5%를 나타냈다. 국민의당은 26.7%,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25.5%였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20% 안팎에 그쳐 압도적 대세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둘 다 이렇다 할 국정운영 성과가 없다는 점도 닮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프로야구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이는 군사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나마 6·29선언과 헌법 개정,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역사로 남았다. 박 대통령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성과는 고사하고 하야 또는 탄핵을 걱정할 지경에 처했다. 설령 남은 임기를 채우더라고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개헌은 박 대통령에게도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



    권력 공백은 개헌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비교 대상이 1987년으로 한정되긴 하지만 절대권력이 와해됐을 때 오히려 개헌은 성사되기 쉽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했을 때 당시 보수의 유력 주자였던 박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개헌을 일축했다. 2012년 대선에서 개헌을 공약한 박 대통령은 2014, 2015, 2016년 초까지도 완강하게 반대하다 권력이 와해되기 시작한 10월에야 비로소 개헌 추진 의견을 밝혔다.

    개헌은 주요 쟁점 사항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1987년에도 6·29선언 이후 4개월 만인 10월 27일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동안 헌법 개정 논의는 충분히 있어왔다. 대통령 임기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쟁점이 남았을 뿐이다. 이 또한 숱한 논쟁과 토론으로 장단점을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권 담판으로 신속한 합의가 가능하다. 따라서 개헌 동의가 이뤄진다면 내년 상반기 내 개정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문제는 임기 말 개헌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다. 이러한 패턴은 과거에도 되풀이됐다. 2007년 1월 시정연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그러나 임기 말 개헌에 대한 국민 여론은 싸늘했다. 그해 2월 세계일보-리서치앤리서치(R&R) 공동조사에 따르면 임기 내 개헌 찬성 응답은 23.1%에 불과했다. 반면 차기 정부 개헌에 대한 찬성 의견은 56.5%에 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9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개헌을 제안했고 당시 이재오 특임장관 등이 개헌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국민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2011년 1월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공동조사에 따르면 임기 내 개헌(36.4%)보다 차기 정부 개헌+개헌 반대(45.7%) 의견이 훨씬 많았다.



    국민이 임기 말 개헌 찬성할까

    임기 말 개헌 추진에 대한 차가운 시선은 당시 유력 대선주자들이 예외 없이 반대한 데다 국민에게 정략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은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레임덕 차단을 위한 국면 전환,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계개편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 것이다.

    10월 24일 박 대통령이 제안한 임기 내 개헌 의견에 대한 여론도 과거와 유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시정연설 직후 실시된 MBN-리얼미터 공동조사에 따르면 개헌 찬성(41.8%)과 반대(38.8%)가 비슷했다. 이후 국면 전환용 개헌 추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고, 국정운영 지지율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임기 내 개헌 찬성 의견은 더욱 줄어들 여지가 있다.

    개헌의 두 번째 필요조건은 임기 내 개헌 찬성 여론이다. 과거와 같이 차기 정부에서 하자는 여론이 높아진다면 정치권의 개헌 추진은 동력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달리 임기 내 개헌 찬성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박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고 국회와 거국내각이 개헌을 주도한다면 개헌 찬성 여론은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야당은 처음엔 거국내각 구성, 박 대통령 탈당과  2선 후퇴 등을 요구했고, 최근엔 ‘조건없는 퇴진’ 등으로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는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하야 또는 탄핵 여론이 여전히 높고 조기 대선을 치르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끝도 없이 파헤쳐지고 있어 분노의 불길은 박 대통령과 친박을 짓치는 상황이다. 11월 5일 비박(비박근혜)계의 비상시국회의와 12일 역대급 촛불집회를 계기로 야당의 요구는 탄력을 받고 있다. 시간문제일 뿐 거국내각 구성, 박 대통령 탈당과 2선 후퇴는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점점 늘어나는 형국이다.

    현재 거국내각 총리로는 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빈번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 2020년 총선과 대선 동시 실시 방안에 긍정적이다. 손 전 고문은 개헌을 통한 7공화국 건설이 정계복귀 명분이다. 이들은 전권이 주어진다면 거국내각 총리를 맡겠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종인, 손학규가 거국내각을 운영하면 ‘개헌 총리’가 될 수도 있겠다. 



    개헌론자의 부상

    임기 말 레임덕에 빠진 인기 없는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면 되레 동력을 잃기 십상이다. 국면 전환용이라는 비난과 정계개편 의혹이라는 꼬리표가 숙명처럼 따라붙는다. 게다가 유력 대선주자는 개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유리한 정치지형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찬성 여론도 형성되지 않을뿐더러 추진 주체도 아예 사라질 공산이 크다. 그러나 거국내각 총리는 다르다. 사실상 최초 거국내각 총리는 집중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할 것이다. 높은 인기 속에서 개헌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거국내각은 개헌을 위한 첫 번째 충분조건이다. 여야에 두루 통할 수 있는 김종인, 손학규가 총리를 맡는다면 금상첨화다. 오랜 정치 경험에서 오는 안정된 리더십으로 최순실에 엎치고 트럼프에 덮친 국정 난맥상을 풀 수 있다는 기대도 많다. 또 이들은 개헌주의자로서 역사상 최초로 개헌 총리로 기록될 수 있다.

    개헌을 추진하다 보면 결국 대통령 임기와 권력구조 개편이 쟁점으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는 국민에게 권력다툼과 정쟁으로 비치게 되고 개헌 찬성 여론이 약화하면서 급기야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새로운 명분과 실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임기 단축과 총선·대선 동시 실시다. 수천억 원의 선거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일치될 수 있어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총선과 대선 시기를 맞추려면 내년 대선 이후 2018년 2월 임기가 시작하는 차기 대통령이 2년 3개월만 재임해야 한다. 21대 총선이 2020년 4월에 있고, 국회의원 임기는 같은해 5월 30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국민을 설득하기에 상당히 미흡하다. ‘대통령이 장난도 아니고 임기 2년 3개월짜리 대통령을 뽑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유력 대선주자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에는 불출마하고 8년 대통령(4년 연임 개헌 시)을 하라는 권유도 통할 리 없다. 또 임기 단축과 차차기 연임으로 최대 6년 3개월까지 집권이 가능하다는 논리도 부족해 보인다.

    박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살릴 수 있다. 내년 상반기 헌법을 개정하고 뒤이어 조기 대선을 실시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개정 헌법 부칙에서 박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임기조항을 두면 된다. 내년 4월 헌법 개정 국민투표, 6월 대선 실시, 8월 새 대통령 취임 같은 과정이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의 임기는 7개월 정도 줄어들고 차기 대통령 임기는 그만큼 늘어 3년여를 집권할 수 있다. 박 대통령도 헌법상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므로 명예를 지킬뿐더러 30년 만의 개헌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동시 임기 단축은 개헌을 위한 두 번째 충분조건이다. 이는 개헌 명분을 더욱 강화할 수 있고 국민에게도 진정성이 전달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한 뒤 1년 3개월이나 과도내각을 운영하는 방안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헌법에 합치하는지도 의문이다. 대의제민주주의가 정착한 대한민국에서 편법적인 비상조치는 짧을수록 좋다. 빠른 시일 내 정상화하는 것이 보편적 이익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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