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국회는 5월 9일 19대 대선 이후 두 달 동안 무슨 일을 얼마나 했을까. ‘주간동아’가 5월 10일부터 7월 9일까지 국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회 의사일정 전체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대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제외하고 의정 관련 활동은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는 5월 10일부터 7월 9일까지 60일 동안 본회의 5번, 28개 위원회에서 95번의 회의를 했다. 28개 위원회 가운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인사청문특위)와 대법관 인사청문특위를 제외한 26개 위원회에서 입법 등과 관련한 회의는 36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59건은 모두 인사청문회 관련 회의였다.
인사청문회를 제외하고 입법 등 국회 의정활동을 위한 회의 시간은 54.3시간에 그쳤다. 결국 새 정부가 출범하고 두 달 동안 국회의원 300명은 국무총리와 헌재소장, 대법관, 국무위원 후보자 등의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것을 제외하고 거의 한 일이 없는 셈이다.
입법 없이 개혁 없다
5월 10일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의욕적으로 업무에 돌입했다. 임기 시작 사흘 만에 역사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했고,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기도 했다. 취임 닷새 만인 14일에는 세월호 사고로 숨진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을, 엿새째인 15일에는 미세먼지 감축 대책을 지시했다. 그리고 22일에는 4대강 사업 감사를 지시했다.
4대강 사업 감사, 역사 국정교과서 폐지 등은 대통령 ‘지시’만으로도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 그러나 민주국가이자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지시만으로 정책이 일사불란하게 집행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일례로 문 대통령은 6월 2일 17부5처16청이던 기존 정부조직을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고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을 독립해 18부4처17청으로 바꾸는 새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 같은 구상을 밝힌 지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정부조직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체제 그대로다. 국회에서 정부조직법안이 통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과는커녕 아직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6월 12일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를 찾아 시정연설을 했다. 11조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에 대한 국회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국회는 입법권과 함께 예산안 심사권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그다음 날인 13일에는 청와대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위원장 및 간사단, 상임위원장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며 조속한 추경안 심사를 요청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상임위와 예결위에서 추경안을 조속히 심사해 (추경의) 하반기 집행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뜻에서 모셨다”고 언급했다. 이날 청와대 오찬에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소속 위원장 6명과 국민의당 소속 2명, 바른정당 소속 1명 등 9명이 참석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위원장은 당 차원에서 청와대 간담회 보이콧을 결정해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 추경안을 설명하고 상임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협조를 요청했지만, 그로부터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7월 12일 현재) 추경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문제가 결부돼 야당이 추경안 심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우원식 원내대표의 눈물
원내에서 야당과 협상을 책임지고 있는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6월 23일 추경안 논의를 거부하는 야당에 대해 “한 달 동안 설득하고 설명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며 울먹하기도 했다. 같은 당 이석현 의원은 “실업난을 해결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일자리 추경을 아예 논의조차 안 하겠다는 게 야당이냐”며 “(추경안) 내용에 수정할 게 있다면 몰라도, 논의조차 안 하는 건 국회가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우 대표의 눈물은 국민의 눈물”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7월 초에는 변화의 바람이 약간 불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에 대한 특혜채용 제보 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고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할 일은 하겠다’며 7월 3일 추경안 심사 등 국회 상임위 활동 복귀를 선언했다. 그 결과 3일 이후 국회는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당일에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에 협조했다. 4일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는 추경안과 고용보험기금운용계획변경안에 대한 논의를 48분간 진행했고, 안전행정위원회에서도 6시간 가까이 상임위를 열어 180개 법안을 상정했다. 국방위원회도 결산 및 추경안을 심사했다. 5일에는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 환노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국방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등 6개 상임위가 문을 열고 추경안과 법안 등을 처리했다. 6일에도 예결위와 국토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농해수위 등이 추경안을 검토하고 법안을 상정하는 등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줬다(표2 참조).
모처럼 ‘일하는 국회’에 찬물을 끼얹은 이는 엉뚱하게도 집권 여당의 추미애 대표였다. 추 대표는 7월 6일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문준용 의혹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 “국민의당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던 박지원 전 대표와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전 의원이 몰랐다고 하는 건 (꼬리 자르기가 아닌) 머리 자르기”라고 규정했다. 그에 앞서 6월 29일에는 제보 조작 사건을 ‘국민의당 대선공작 게이트’로 규정한 바 있다.
추 대표의 잇단 발언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느냐”고 반발한 국민의당은 추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을 계기로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7월 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은) 당에 대한 막말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추 대표는 당 대표직 사퇴는 물론 정계 은퇴를 해야 한다. 추 대표의 사퇴와 민주당의 사과 등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다면 오늘 이후 국회 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며 전면 보이콧을 선언했다. 국민의당은 이날 국회 예결위에 불참하고 이낙연 국무총리와 만찬 회동 일정도 취소했다.
국회 공전, 추미애 책임론
추 대표의 발언으로 국회가 다시 기약 없는 공전에 접어들자 추 대표 책임론이 여권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여권 한 인사는 “추 대표의 머리 자르기라는 표현은 과격하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다만 같은 얘기라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여소야대 상황에서 추경안 통과를 위해 조심스럽게 한 발씩 내디뎌온 시점에서 왜 하필 (추 대표가) 그런 발언을 해 국회를 공전시켰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가 공전하는 사이 추경안 통과가 지연되는 것은 물론, 법안 수천 건도 차곡차곡 국회 한켠에 쌓여가고 있다. 7월 10일 기준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 등은 6229건에 이른다. 안전행정위원회에 가장 많은 996건이 계류 중이고 보건복지위원회(683건), 법제사법위원회(603건), 정무위원회(547건), 환노위(544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527건), 기획재정위원회(515건) 등도 각각 500건 넘는 법안이 쌓여 있다(표1 참조).
국회의 입법권과 예산안 심의권은 정부를 견제하는 권한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국민을 위해 권한을 행사해야 할 의무다. 야당이 국회를 보이콧하는 것에 대해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소야대라는 국회의 특수성을 아주 무시할 수만도 없다. 김상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나를 따르라’는 식의 일방통행으로 국회를 운영하려 해서는 협치는커녕 대치 국면만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협치가 필요한 여당이 먼저 야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지혜로운 협상 태도가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